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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에도 감명 받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애석하게도 내게 긍정적인 반응은 아닌 것 같다. 지인이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길 "이론화된 우울증"이라고 하며 비슷한 예시로 베네타의 반출생주의 논증 등을 들었는데,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쉽다"는 문구를 보고, 책에서 분석하는 후기 자본주의 세계의 고질적 문제점과 공산주의의 문제점이라고 주로 지적되는 문제점들 사이의 공통점을 생각하며 공감하는 데에는 정말로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진 않다. 그보다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이 뭔가 문제가 있고, 스스로가 고갈되고 있다는 느낌에 대한 원인을 요구하는 자세가 필요할 테다.


비록 <자본주의>가 개인의 정신병리학적 문제들을 말 그대로의 개인의 것으로만 귀속시키는 문제가 후기 자본주의 세계가 문제 가득한 '현실'을 정상화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지만, 사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그 정신병리학적인 문제다. 독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 현실, 자본주의가 너무나 당연해져 꼭 공산주의가 아니더라도 이외의 대안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된 현실, 그 현실의 종말을 꿈꾸는 생각. 기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그런 메말라가는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치는 비명에 가깝다. 이것이 지적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일 뿐이다, 라는 기저의 마음가짐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정말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적 전제는 경제사를 비롯한 척도를 통해 모든 자원들이 말 그대로 교환 가능하지는 않은 게 당연했던 시대를 우리의 눈에서 지우고, 그렇지 않았던 시대의 끔찍함을 최대한 부각하곤 한다. (그러니까, 명시적인 화폐의 등장 이후에조차 돈이 있어도 특정 자원에 접속할 수 없었던 시기가 너무나도 일반적이었다는 것 따위의 사실들) 슬프게도 그것은 정말로 끔찍하다. 나는 <자본주의>가 지적하는 바로 그 상상력이 고갈된 독자로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동감함에도, 이성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는 형식과는 전혀 달리 감성적인 에세이다. 세 번째로 이 책이 읽고 싶어지는 날이 오지는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