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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매력적인 작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약간 괴담에 가까운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다루는 솜씨가 참 특이하게도 인상적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단편 <드러누운 밤>은 인터넷에서 유명한 엘리베이터 괴담이 연상되는데, 이러한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모티브의 섬뜩함은 참 다양한 방식으로 인터넷 괴담에 족적을 남겼는데, 특이하게도 그 방식이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글쓰기 방식과도 어느 정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포의 대상이 흐려지는 효과에 대한 이야기다.



일찍이 괴담들을 접한 적이 있으면 알겠지만 원래 괴담은 두려워할 대상이 뚜렷했다. 그것이 불운에 의한 죽음이든, 호랑이와 같은 맹수든, 현대적으로는 귀신이나 특이한 괴물이든,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좀 더 모호한 괴담에서조차 '내가 아직도 엄마로 보이니' 와 같이 불길한 말을 하는 대상이 명시적으로 등장하며,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더라도 두려워할 대상이 그것임은 분명하다. 기실 공포 영화나 게임에서도 이 달아나야 할 대상의 존재는 당연한 공식이라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걸 굳이 언급하는 게 이상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꼭 그렇진 않다. 소위 '나폴리탄'이라 불리는 괴담들을 시작하여 영문 모를 공포,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 모르기에 상상 속에서 최악을 상상하는 '매뉴얼 괴담'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드러누운 밤>은 뻔뻔할 정도로 당연하게 현실과 꿈이 섞여 들어가 꿈 속에서 주인공이 현실의 지식을 전혀 갖지 못한 채 그 세계 속의 언어로-이를테면, 쇠 칼의 존재를 몰라 반짝이는 무언가를 들고 있다고-생각하는 것과 함께 이 독립적인 세계에서 주인공이 점차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을 긴장 가득한 문체로 보여준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주인공 역시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하다가 점차 꿈꾸기를 두려워하고, 결국 최후의 꿈에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이상의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긴장 가득한 미지로의 붕괴는 <시내버스> 단편에서도 볼 수 있는데, 모두가 꽃을 하나씩 갖고 있어 그렇지 않은 영문 몰라 하는 주인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점차 적의를 표하는 장면은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공포 게임 속의 한 장면 같다. 차이가 있다면, 끝까지 그 원인을 모르면서도 어느새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꽃을 갖고 있지 않던 청년이 주인공과 함께 꽃을 하나 사들고 간다는 것이다. 분명히 무언가를 두려워해야 하지만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까? 이러한 적극적인 은닉은 장르적인 연출과 어우러지며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남부고속도로>로,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차를 버리고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물과 식량을 공유하고 교류하며 집단을 이루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며 사는 이야기다. 이러한 장소 설정 및 전개 과정은 약간 비틀린 생존물 같지만, 이것이 생존물로 끝을 내리려는 순간 정체가 해소되며 다시금 미친듯이 달려나가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섞이며 무한한 질주 속에 새로이 갇혀버린다. 아마 이 글은 하나의 SCP로 작성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SCP-1733>, NBA 경기 테이프 속에 갇혀버린 사람들 - 혹은 밸러드의 <콘크리트의 섬>) 현대성 속에 갇히는 이야기는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 당황스럽게 만들다가도, 저런 상황 속에서 우리 역시 실제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불길한 공포 속에 휩싸이게 된다.



다시 엘리베이터 괴담으로 돌아와보자면, 이 공포는 여전히 기존의 공포와 연결되어 있다. 많은 괴담은 들은 순간보다는 홀로 놓여 이 괴담을 떠올릴 때, 스스로가 괴담 속의 주인공과 겹쳐져 보일 때 본격적으로 생명력을 가진다. 나폴리탄 류 괴담들은 단지 이 참여도를 훨씬 더 높여 우리가 괴담을 활성시키는 순간이 보다 더 포괄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희석된 셈이다.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글 역시 그런 식이다. 이 구멍 가득한 이야기들은 어떤 것이든 흡수할 수 있어, 어딘가에서는 그것의 의미를 찾는 철학적인 단상이 될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는 <환상특급>과 같은 TV 에피소드에 나오는 스릴러가 될 수도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