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반전체주의를 넘어서는 반거대담론을 주장함.
하루키가 절대 철학이나 인생, 철학, 세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그저 눈 앞의 초콜릿만 탐하는 것은 과거 일본이 저질러왔던 세계2차대전 같은 것들이
전체주의와 반개인주의로 인간의 가치를 협소하게 만든 탓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것의 예로 아침에 체조하는 이상한 애를 노르웨이의 숲에 등장시키면서 그런 인간형을 희화화한다.
근데 문제는 이것이 반전체주의를 넘어서 반거대담론, 즉 정치, 철학, 세계에 대한 어떠한 탐구도 거부하고
눈 앞의 달콤한 초콜릿만 좇게 되는 반지성주의의 반열에 발을 담군다는데 있다.
실상은 내 눈 앞의 초콜릿 상자만 가지고 달콤한 것 부터 꺼내고 있으면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내 초콜릿을 훔쳐가는 사람도 있고, 초콜릿을 나눠주지 않으면 범죄자로 만드는 세상이 도래한다.
결론 : 하루키 소설은 저급함.
그런 기준으로 저급과 고급이 갈린다면 그건 철학이지 문학이 아님
문학도 대체로 이러한 기준으로 갈림
문학에서 대체로라는 건 있을 수가 없음. 그런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체계 내에서만 저급일 뿐임.
문학은 어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고 그 목표를 위한 하나의 기준으로 급을 나눌 수도 없는 문제임
고전들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임. 애매해서 그것을 무엇이라고 분석하기 어렵겠지만 그런 기준으로 따졌을 때, 하루키(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만 읽음)의 작품들은 그 기준에 한참 미달됨.
이는 내가 하루키를 좋아해서 옹호하려고 하는 말이 아님. 난 하루키 소설 놀숲 하나만 읽었고 나 역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작가임. 하지만, 어떤 문학이 반지성주의라서 저급이다 라는 식의 평가는 전혀 문학을 평가하는 기준이 못된다는 말을 하는 것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음. 반지성주의적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문학작품을 말해주면 이해할 수 있을 듯.
그리고 니가 지금 고전이라는 단어를 언급함으로써 니 말은 설득력을 바로 상실함. 왜냐면 하루키와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지금 이 동시대를 살면서 니가 하루키를 고전이 어쩌니 관통이 어쩌니 하고 평가하는 건 말이 안 됨. 시간의 검증은 니가 지금 할 수가 없는 것임. 그런 평가는 한참 뒤에나 가능함.
하루키 올려치기가 꼴사나워서 내 생각 정리해서 말하는거지.
너무 강한 말은 쓰지마...
ㄱㅊㄱㅊ. 바보취급 받아도 됭...
근데 문제는 이것이 반전체주의를 넘어서 반거대담론, 즉 정치, 철학, 세계에 대한 어떠한 탐구도 거부하고 눈 앞의 달콤한 초콜릿만 좇게 되는 반지성주의의 반열에 발을 담군다는데 있다 이 부분이 이해가 안되는데, 하루키가 거대 관념이나 사회적 테제를 내포했던적은 없지만(초기작품들에선) 그것이 세계에 대한 탐구를 거부하는것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라도 이것이 눈앞의 초콜릿에 급급한 반지성주의의 소설이라기엔 너무 급작스러운 비약아니냐. 차라리 하루키 소설들의 자폐적 특성부터 시작했으면 어느정도 수긍했겠다만
거기에 대한 충분한 예시를 소설 내에서 찾아주셈. 그럼 인정할 수 있음.
나는 노르웨이의숲, 해변의 카프카 읽고는 못찾음.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고전소설을 읽는 취미도 그냥 유희수준이지 그게 삶에 미치는 영향은 하나도 소설 내에서 보여지는게 없음.
개소리 자제 좀
조정래야?
반지성주의가 왜 저급함?
반지성주의가 저급하다는 확신 이것이야 말로 반지성적 행태 아닐까?
그냥 고상한 척하는 남성향 소설이라 수준낮으니 보기싫다하면되지 뭘 이리 현학적으로 쓰냐
독갤 비추 없어진게 아쉽노
우우 다른 사람을 틀을 통해서만 바라볼 줄 아는 인간 우우
어우 이건 뭐야 ㅋㅋㅋㅋ...틀이 없으면 판단을 할 수가 없는데... 그냥 아무 틀도 가지지 말구 아무것도 가치평가 하지 않으면서 살거야?
창작자는 틀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지 않잖아. 사람들이 판단(스스로의 판단)의 편의성을 위해 만든 틀이니까. 하루키는 고전 작가들과 ‘다른’ 타입일 뿐.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 담론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사랑? 죽음? 외로움? 상실?
창작자가 독자들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른 가치평가를 생각하면서 쓰지 않는다고 주장할 거라면 내가 하루키를 과소평가 하는것도 받아들이길 권함.
정치, 철학 등에 무관심하고 결과적으로는 반지성주의다 라는 것도 억지로 틀에 끼워맞추는거고 소설이 저급하다고 말하는 근거도 하루키는 현실에서 눈돌리기 때문이라는건데 그렇게치면 정치 철학 다루는 사람들은 당장 그런 실질적이지 않은 문학에 대한 사유가 없으니 반인문학적이므로 반지성주의라고 틀에 우겨넣을 수 있지
난 적어도 자기가 생각해서 가치평가하는 사람이라면 가치평가를 당연하게도 받아들이는데 본인이 무슨 소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은 생각이 아니라 앵무새 떠드는 것 같아서 듣기 싫어하는 것
근본적으로 너 글 존내 못쓰는데 그 원인은 생각이 얄팍해서 그렇다는 말을 하는거야. 너도 내 가치판단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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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답변하라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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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취향에 안 맞아서 싫다까지만 하면 될 걸뭘 저급하니 어쩌니까지 하며 뇌절을 치노
반지성주의라는 말 남용하는 건 개념사를 모르는 반지성주의임
중간까지는 어느정도 일리는 있는데 반지성주의라고 까지 하는건 너무 나간거 같음
전체주의와 반개인주의를 거부하고 개개인의 내면에 집중하자는게 왜 눈앞의 달콤한 초콜릿만 쫒는것이며, 반지성주의임? 반지성주의가 뭔지는 알아? - dc App
전체주의와 반개인주의를 거부하고 개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게 눈 앞의 달콤한 초콜릿만 쫒는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는 것인데 왜 그러냐라고 하면 할 말은 없구, 반지성주의가 세계에 대한 이론, 법칙, 지식을 거부하고 지 내면의 감성, 권위에 의존, 관성만으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라고 봤을 때, 지 내면과, 몇 몇 개인의 삶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세계와 법칙에 대한 눈을 가리고 있고, 이게 인간을 우민화 한다는 점에서 반지성주의자라 한거임.
그게 게임이 애들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이랑 뭐가 다름...?
개인의 내면을 중요시여기는 감성을 촉진한다 - 반지성주의자들은 내면의 감성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려든다 - 고로 이 작품은 반지성주의로 이끈다??? 그럼 네 주장대로라면 김소월도, 헤르만 헤세도, 카잔자키스도 반지성주의고 모든 예술가들은 반지성주의가 되잖아
스님들 반지성주의행 ㄷㄷ
그렇게 이야기하려면 하루키 소설에서 그 어떤 "지성"에 대한 명확한 배척이 드러나야하는데? 지성에대한 감정의 의도적 선호가 아니라, 이성 자체에대한 불신과 혐오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게 반지성주의인데 하루키 소설에서 그런게 나옴?? 그게 무슨 흑백논리임? - dc App
전 하루키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삶의 양태가 지속된다면, 그리고 하루키에서 희화화하는 삶의 양태들이 계속 배척받는다면 그 결과는 반지성주의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님 말씀대로 지성에 대한 명확한 배척은 드러나지 않지만, 세계와 내가 가지는 관계, 세계와 내가 서로 침투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경시하는 하루키의 소설에서 나오는 거대담론 배척의 경향성을 위험하다
고 인식하고 있어요
그 반지성주의라는 단어를 제멋대로 정의하는게 오히려 반사회적이고 반지성적인거 아닐까요? 더군다나 하루키는 이유없이 님이 말하는 그 거대담론을 배척하고 혐오하는거라기보단, 동아시아 특히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 일종의 전체주의적 경향성이 되려 개인을 망가뜨리는 시간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러한 세태에대한 풍자 혹은 우회에 더하여 인간에대한 본질적 탐구에 더 천착하는 작가라고 보는데, 오히려 이런 시도가 사회가 극단으로 치닫는걸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지요? - dc App
얘는 왜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냐 의견은 낼 수 있는 거지만 맨날 하루키는 거품이고~어쩌고저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