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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 친구 S가 내게 한 말이 기억이 난다. "너는 그래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러냐." S와의 대화 중 8, 9할이 시시껄렁한 대화이고 아마 S도 무슨 큰 의미를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 말 한마디 만큼은 언제 어디서 했는지 똑똑히 기억이 난다.
나는 나름대로 못나지 않은 대학을 나와 못나지 않은 직장에 취업을 하는 평탄한 삶을 살았다. 학업이나 직장에 있어서 큰 실패를 겪은 적도 없었다. 실패하지 않는 길로만 기가 막히게 걸어온 이유도 있겠으나, 어쨌든 커다란 풍파는 없었다. 이 정도면 나름 행복한 것 아닌가? 나는 왜 이렇게 연애니 짝사랑이니 실연 같은 것으로 고민을 하는가? 그 이후부터 진정한 고통이란 조금 더 숭고하고 비참한 것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은연 중에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쨌든 고통은 실재했다. 아무리 남들 앞에서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농담을 하다가도 마음 속은 늘상 전쟁 중이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아 차라리 몸이 괴로웠다면 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왜 괴로워야 하는가? 사람은 왜 괴로워야 하는가...... 어쩌다 우리는 고통받을 권리 마저 빼앗기고 말았을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통은 실재한다. 어떻게 있는 고통을 없는 셈 치라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사람의 마음이란 가장 어렵고 불가해하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가장 지독한 희망이다. 타인의 마음은 물론이고 나의 마음 조차 그렇다. 사람의 마음을 다룬 모든 문제란 가장 숭고한 문제이다. 얼마나 무겁든 가볍든 간에 사람의 마음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은 충분히 괴로울만하다. 하물며 사랑의 문제는 어떻겠는가? 모든 사람은 사랑과 명예를 위해 살아간다. 나는 충분히 고통받을 권리가 있다. 이토록 고통받았기에 맘 놓고 사랑할 권리도 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마저, 사람의 마음마저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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