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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생동감이다. 실감이 넘친다. 나는 보통 고전을 읽을 때 등장인물을 캐릭터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작가가 사용하는 일종의 장치로써 취급하고 읽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만큼은 로지온을 로지온으로, 라주미힌을 라주미힌으로, 소냐를 소냐로 받아들이며 읽었다. 특히 로지온의 끊임없는 발작과 고뇌, 그리고 돌발적인 행동들은 작품을 읽는 나의 시선이 느슨해질 즈음이면 불쑥 튀어나와 자세를 고쳐잡게 만들었다.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모두 입체성과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디자인의 정점은 주인공 로지온이다. 예전에 신형철의 책을 읽다가 '나쁜 소설가는 인물을 납작하게 표현한다'는 구절을 본 적 있었는데, 그 구절의 반대편 끝자락에 있는 소설가가 바로 도스토옙스키가 아닐까 싶다. 그의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은 종이에 갇힌 텍스트가 아닌 실제의 인간처럼 살아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며 인물 자신의 의지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처럼 <죄와 벌>이 무시무시한 흡입력을 지니게 된 이유는, 도스토옙스키가 작품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빚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인물의 입체성을 텍스트로 표현하는 능력 역시 정점에 다다른 작가이기 때문이다.
로지온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 직후 도망치기까지의 장면, 자묘토프와 우연히 마주친 로지온이 그를 붙들고 지껄이는 장면, 로지온이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장면, 스바드리가일로프가 두냐에게 거부당하고 권총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쏴버릴 때까지의 장면...... 작가의 묘사력이 폭발하는 지점마다 이 작품은 동시대는 물론이고 모든 시대의 소설을 통틀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의 경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내가 제시한 장면들 외에도 수많은 명장면들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주로 세련된 문장을 쓰는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왔고 세련된 문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작품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편견임을 깨달았다. 문장이 길고 복잡하면 뭐 어떠냐? 아름다운 어휘를 구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결국 독자의 가슴에 꽂히는 것은 작가의 문장이 지닌 매력이다. 어떤 매력은 지나치게 독보적이어서 독자의 가슴에 덧씌워진 편견조차 꿰뚫고 심장에 직격하기도 하는 법이다.
<죄와 벌>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한 남자가 살인을 저질렀다가 자수한다'고, 어렵게 말하자면 '인간이 자신의 사상만으로 삶을 지탱할 수 있는가?'이다. 아니, '이다'는 아니고 '생각한다'가 어울릴 것 같다. 이 글의 최상단에 올려진 사진은 죄와 벌 하편의 구절인데, 로지온이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어렴풋하게 소냐가 이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냐가 이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소냐가 이길 것이다. 왜? 로지온과 소냐 두 사람 모두 살인을 저질렀지만(로지온은 노파와 리자베타를, 소냐는 자기 자신을)로지온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고 있고 소냐는 굳건하게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소냐가 자신을 지탱하는 근거는 신앙임은 말할 것도 없다. 소냐는 자신이 지닌 신앙과 완전히 배치되는 매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소냐는 살인을,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써 살아가는 사람이다.
실제로도 이 장면에서 로지온은 '왜 이렇게 독실한 사람이 그런 일로 먹고 살면서 자살하지도, 미쳐버리지도 않았지?'라고 독백한다. 이 장면이야말로 <죄와 벌>의 주제를 함축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사상만으로 도덕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도덕을 부정한 뒤 뒤따라오는 죄의식을 이겨내고 굳건하게 자신의 두 발만으로 일어설 수 없는 존재다. 작중 내내 로지온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 살인을 저지른 직후, 그리고 자수하기까지 끊임없이 고뇌한다. 그 모든 순간들은 인간이 자신의 사상만으로 도덕을 뛰어넘기 위해 벌이는 저항이며 이런 저항 속에서 로지온은 차츰 부서지고 미쳐간다. 로지온의 몸부림은 작품을 아우르는 테마다. 그의 처절한 몸부림은 작품의 에필로그 끝자락에서 비로소 결말을 맺게 된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 이제 소냐 이야기를 해보자. 소냐는 착하다. 너무할 정도로 착하다. 풀헤리야가 두네치카를 두고 '그 애는 천사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사실 그런 찬사는 두네치카보다는 소냐에게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물론 두네치카도 정말 헌신적이고 상냥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로지온도 지적했듯이 미쳐버리거나 자살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소냐는 이성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선량함을 지켜내기까지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소냐는 하느님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그렇게 가르쳤기에 선량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냐는 매춘을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살인자 로지온을 끌어안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로지온이 인간의 이성을 대변하는 존재라면 소냐는 신의 도덕을 대변하는 존재다. 그리고 로지온은 작품의 결말부에서 소냐의 사랑과 헌신에 마침내 고뇌를 끝마치고 구원받는다.
개인적으로 결말을 읽은 직후 웹툰 <더 복서>가 생각 났다. <더 복서>도 결말 직후 "이렇게 끝나버린다고?" 하는 반응이 많았고, 나 역시 두 작품의 결말을 접했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비논리적인 결말이다. 다만 <더 복서>와 <죄와 벌>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다. 죄를 향한 논리적 저항은 이미 로지온의 행보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결말이 비논리적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논리와 이성으로 도덕을 뛰어넘고자 했던 인간 로지온의 저항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대답은 사랑과 헌신, 즉 신이 인간에게 가르친 미덕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도덕이다. 이 구도를 승자와 패자의 구도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순수한 교훈으로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확실한 것은 로지온의 저항과 소냐의 사랑 모두 인간이 지닌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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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22
글 존나 늘어지네 짧게 좀 써라 페이지 타령 하지 말고
야이새끼야 늘어지는글도 있고 뭐 그런거지 그런갑다 해라 이시발새끼야
감상문은 개추. 글을 요점 위주로 간결하게 쓰면 좀 더 좋을 듯.
미시마 금각사 말고 혹시 추천하시는 거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