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학 속 철학 찾기 – 해리포터와 사랑의 묘약
서론 (귀찮으시면 건너 뛰세요)
안녕하세요.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독서 갤러리 여러분들이 좋은 고전과 철학책들을 많이 읽으시는 것을 보고, 단순히 대중문학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걸 읽다가 오신 분들은 좀 어려워 하실 것 같아서 대중문학 속 철학 찾기 연재를 해보려고 합니다(반응 보고)
본론
해리포터에서는 사랑의 묘약이 꽤 흔하게 사용됩니다. 작중 묘사에서 사랑의 묘약들은 전부 강렬한 열망이나 집착 같은 것을 불러일으키는 것 뿐이지,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호러스 슬러그혼 교수 역시 '어떤 마법이나 약으로도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라고 말하고요.
그런데 강렬한 집착이나 열망과 사랑을 어떻게 구별할까요?
네이버 사전에서 사랑의 정의는 이렇게 나옵니다.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집착이나 열망 또한 그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게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훈련병이 담배 한 개비라도 생기면 몹시 소중히 여기면서 손가락이 데일 때까지 피는 것처럼 말이죠. 담배를 소중히도 여길 거고 귀중히도 여기면서 즐길겁니다. 우리가 담배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에 단순히 네이버 사전으로는 집착과 사랑을 구별해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자 분들에게 여쭈어 봅시다!
1. 고대
플라톤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He whom Love touches not walks in darkness.
- Plato.“The Works of Plato: The Trial and Death of Socrates”, p.324, Cosimo, Inc. -
사랑을 만져본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는다.
나쁘지 않은 답변이군요. 집착과 열망이 아름답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말입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에서 인간은 실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실체에 대한 아름다움이 절차적으로 발전하면 형태의 아름다움으로 바뀌게 되고, 이것이 더 발전하면 추상적 아름다움으로 발전하게 되고 마지막에 이르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비 감각적인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의 발전이라고 볼수도, 사람의 내면을 보게 되는 성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2.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To love is to will the good of the other." - Summa Theologica
사랑한다는 것은 남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다.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격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은 유비라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쉽게 말하여 6:3=4:2라는 비례식이 있다면, 6과 3 사이의 관계와 4와 2 사이의 관계는 비례적으로 같습니다. 이때 4:2는 하나의 뜻이면서도 6:3을 표현할 수도 8:4를 표현할 수도 있으니 유비인 것입니다.
조금 더 일상적인 예로는 다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A는 얼굴이 예쁘다"와 "A는 마음씨가 예쁘다"에서 두 문장의 '예쁘다'라는 말은 완전히 동일한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며, 서로 다르면서도 어떤 같은 근거 때문에 같은 표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유비'라고 합니다.
모든 자연의 대상들은 신의 속성을 분유하고 있으며, 신은 불완전한 대상들 속에서 유비적으로만 드러나고, 불완전한 대상들은 실제로는 신이라는 유일한 대상에 대한 유비라는 말을 했으므로 사랑의 의미를 찾는 저에게 사랑 역시 신의 유비라고 말씀하실지도?
3. 현대
니체 작가님께서는 조금 특이한 말을 남겼는데요
Love is a state in which a man sees things most decidedly as they are not
사랑은 사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가장 확실하게 보는 상태이다.
니체작가님은 대부분의 생각들이 본능에 의해 인도되고 움직이므로, 우리가 평소에 상반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사실은 대립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명제, 착상, 영감 등은 대부분 그들의 마음속 소망이 추상적으로 변형된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것들은 나중에 찾은 근거들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렇다면 니체의 입장에서는 본능적 끌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의 차이 정도로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각각의 개인은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해석에서 삶의 의욕을 느끼며. 그런 창조적인 해석에서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며, 그 결과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권태에서 벗어난다고 보는 니체 선생님은 집착과 사랑 또한 본능적 이끌림의 해석으로만 볼 수도 있겠습니다.
3. 결론
길고 긴 글 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듯 사랑을 보는 관점은 다 다르고 사랑과 집착을 구별하는 법 역시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역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지금 내옆에 있는 배우자, 애인,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님 이런 글 쓸 때 책 내용이나 구절 더 많이 추가 해주삼. 책 얘기가 거의 없으면(특히 이런글) 거의 무조건 잘릴 가능성이 매우 큼
넵 내일 사랑의묘약이 소설에서 사용된 장면 넣겠습니다. 지금 도서관이 닫아서요ㅠㅠ
트리스탄과 이졸데랑 같이 비교분석해봐도 좋을듯
사랑해요 - dc App
그 제가 디시가 처음이라 그런데 글 어떻게 수정하시는지 아시는 분?
폰이면 오른쪽위에 점세개 컴도 비슷한데 있던걸로 기억함 - dc App
개똥철학을 열심히도 적어 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