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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상당히 특이한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표지의 줄글이 바로 다음 페이지와 이어지며 사실상 내용으로서의 첫 페이지 역할을 한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원서 자체도 동일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일종의 진zine을 염두하고 나온 책인지, 아니면 원본이 팟캐스트라는 것을 생각하여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어쨌든 내용과는 또 별개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 형식인 것은 분명하다. 음악으로 따지면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 울려퍼지는 노래가 자연스럽게 공연과 이어지는 그런 느낌일까? 팝스타의 대규모 콘서트보다는 영세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인디 밴드가 그럴 법한 느낌의. 예전에 킹 기자드King Gizzard 밴드가 내한이 급작스럽게 취소되자 한 클럽에서 게릴라식으로 공연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기획되지 않은 즉흥적인 음악.
이 책의 '저자'인 데이먼 크루코프스키 역시 그런 자유로움을 예찬하는 밴드를 한 적이 있다. 갤럭시 500 Galaxie 500은 슈게이징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대표 밴드 중 하나로, 슈게이징의 대표주자인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어떤 자연스러운 소음 속에서의 음율을 중시하는 음악을 연주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이 그런 소음 속의 음악, 음악 속의 소음을 복합적으로 다루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생각이 든다.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을 테다. 다만 오랜 세월과 좀 더 다양한 음악 경력을 통해 이 주제에 대해 보다 더 심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이 책의 소재 중 하나인 라우드니스 워Loudness War는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음반의 리마스터링이 전체적인 출력 음량을 증폭시켜 늘리되, 정작 음과 음 간의 폭은 줄여 요란하지만 뭉뚝한 음악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식으로. 그건 라우드니스 워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지만, 여기에는 보다 더 자세한 맥락이 필요하다. 이 라우드니스 워라는 것이 그저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난 트렌드는 아니지 않을까? 문제는 음악과 소음 사이의 관계다. 더 정확히는, 어떻게 음향 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며 '신호'와 '소음'을 훨씬 뚜렷하게 구별하고 후자를 완전히 걷어내려고 노력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것이 청자에게 어떤 장단점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기실 현대에 '배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비단 음악에서의 이야기 뿐은 아니고, 하다못해 영상 통화에서조차 이 발화자의 모습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인위적인 가짜 배경으로 대체되도록 기능을 지원한다. 발화자가 지금 어떤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솎아내기가 실제 대화와 영상 통화 사이의 간극을 훨씬 더 넓히고 있는 것도 분명하리라. 전화를 하며 우리는 반언어/비언어적인 뉘앙스를 실제 대화에 비해 자주 놓치곤 하고, 이는 마찬가지로 전화가 전제하는 목표, '멀리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저해한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간극은 오히려 더 넓어지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디지털 시대의 높은 압축률의 성장이 걷어내는 것들은 바로 이것들이다.
이런 기술적/음향적 통제가 자유로운 음악을 속박해 묶어두려 하며 판매될 수 있는 형태로 탈바꿈 시키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동안, 음악의 저작권과 스트리밍에 대한 주제가 중간에 등장해 우리가 묶어두려고 하는 '음악'이란 대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권유하기도 한다. 악보 판매가 자동 피아노에게 저작권료를 물리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판매되는 것은 사실 음악 그 자체라기보다는 음악을 잡아두고 있는 기술적인 틀 그 자체에 가깝다. 이런 틀은 LP, CD, MP3-그리고 음향 애호가들을 위해 굳이 언급하자면, FLAC 등-의 형태로 나타났고, 냅스터라는 불법적 음악 공유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사실상 종말을 맞이했다. 현재 음악 판매는 과거에 비하면 스트리밍이라는 플랫폼 구독 형태로만 남아 있는 수준에 가깝다.
뻔뻔한 불법 공유 옹호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냅스터의 등장에 호의적인 음악가들이 꽤나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 단언할 문제는 아니겠다 싶다. 책과 텍스트 파일, 바이너리 파일과 코드에 대한 생각을 해보면 무료 음악에 대한 생각은 이러한 물질-콘텐츠 대비에 광택을 입힌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밴드나 팝스타 등이 주로 돈을 버는 건 결코 음반 판매가 아니라 콘서트 티켓과 MD 판매라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음악인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대규모 기업이 준비해둔 기계가 창출해내는 수익에 가깝다. 물론 그것들이 음악에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음악이 그것들에 수반되느냐, 하는 것은 보다 사적인 대답이 요구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유튜브 뮤직, 그리고 초창기의 스포티파이가 '불법 음원'들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현재 어떻게 공적인 것으로 탈바꿈했는지를 생각할수록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어쨌든, 음악은 추상적으로 깔끔하게 도려낸 신호만으론 속박하기 어려운 무언가다. 공연 실황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단순히 그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던 놀라운 연주 자체만은 아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비디오는 락밴드만을 겨누고 있었을 것이고, 이 100%와 100% 미만의 차이는 <다른>의 핵심이기도 하다. LP의 음질에 대한 논쟁에서 LP의 우월성을 논하는 사람들과 반대를 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곧잘 평행선을 달리곤 하는데, 이러한 종류의 물성이 전달하는 느낌은 디지털 신호에서 최대한 걷어내고자 노력하는 무엇이기도 하다는 점이 그 영원한 분쟁의 원인이리라. <다른>은 후자의 사람들에게 전자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권유한다. 이것은 단순히 '뇌이징' 같은 문제는 아니다.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던 것들에 대한 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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