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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나는 호두알 속에 갇혀 있다 해도,
스스로를 무한한 공간의 왕이라 생각할 수 있다네.
2023년의 후기
이것은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TV에 등장하고 대학가요제가 전국민을 열광케하며
PC통신이 유행할 무렵에, 철학과에 재학중이던 대학생 한 명이 자신의 게시판에 남긴 글을 옮겨온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아주 어릴 적 삼촌의 낡은 PC에서 본 적 있었다.
삼촌이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교우관계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다소 음습하고 음울한 (요즘말로) '찐'에 가까웠으며,
후에 대학원에서 니체와 하이데거를 전공으로 택했고, 키에르케고르에도 다소 관심이 있었다.
또한 당시 문호 개방으로 들여온 일본 문화에 심취해있었고(특히 비트 다케시를 무척 사랑했다),
할머니께서 사주신 삼성판 문학전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곤 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단편을 묶은 전집 28번 책에서 보르헤스의 글을 처음 읽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죽음과 나침반이 실려있었는데, 그는 이것을 비오이 카사레스가 쓴 단편으로 알고 있었다.)
삼촌은 그와 연락이 되지는 않으나 드문드문 들려오는 근황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한 뒤 차라투스트라의 말따위는 사회에서 쓸 일이 없다는 걸 깨닫고 평범한 감사계 회사에 지원했으며,
이런저런 회사를 거친 뒤 퇴사하고, 다들 한다는 고깃집을 창업했다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구제역 파동과 함께 망했고,
지금은 식료품 회사를 차린 뒤 먹고 살만큼 살아가고 있는 듯 했다.
만약 삼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그가 살아가는 인생과
보르헤스의 이야기 간에 발생하는 인과관계에 대해서 어떤 부연도 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는 자신이 이런 글을 남겼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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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작품에 등장하는 무한의 상징들, 끊임없이 갈라지는 우주, 수없이 많은 상징과 표상과... 어,
나는 이게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다.
솔직히 단적으로 말해서, 보르헤스의 세계관은 단편적으로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란, 그의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속성, 즉, 무한無限뿐이며,
이것은 기원전 10세기 인도인들의 발견을 한자어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철학자들은, 우리의 삶이 순행적으로 진행되는 선보다는 분절된 기억 쪼가리가 기워붙여진 누더기에 가깝다고들 말하는데,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나의 표현이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매우 다채롭기 때문에 정의한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보르헤스의 세계관에서 내가 가장 확실하게 발견할 수 있는 의미는 바로 우주의 무한성인데,
『알레프』에 담겨진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의 전작에 걸쳐서 무한의 세계관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보르헤스의 설명에 따르면 '알레프'는 '모든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세상의 모든 부분을 담아낸 하나의 장소'이다.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공간이 2-3cm에 불과한 장소에서 모든 면으로 드러난다는 이 설명은 해괴망측한 망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신비로운 우주관을 형상화한 하나의 오브젝트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변신으로 유명한 체코-오스트리아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가장의 슬픔을 오드라데크로 형상화했듯 말이다.
보르헤스의 머릿속에서 우주는 이런 모습인 것이다. 바로 인간과, 사람과, 생물과, 공간과, 시간이 오롯이 하나로써 뭉쳐진,
모든 것이 본래의 모습으로 얽혀있는 무한의 구체.
더 재밌는 것은 이 환상적인 이야기가 보르헤스가 겪은 실제 이야기와 결합되는 과정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이야기에 주석을 덧붙이며, 이것을 실제 있었던 것, 즉 '현실'에 편입시킨다.
이렇게 픽션과 현실이 결합된 세계에서는 환상과 실재의 경계선이 무너지며 둘 사이에 원래라면 상상도 못할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작품의 초반을 장식하는 보르헤스의 실제 지인, '베아트리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온 우주를 담아낸 무한한 구체속에서 드문드문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환상과 픽션은 현실과 '연결된' 어떤 것이 아니라, 변용된 현실이자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가깝다.
전 세대 작가들이 얽혀낸 수많은 이야기들은 얽히고설키며 우리의 삶에 침투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문학과 철학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TV에 등장하고, 버츄어 파이터가 오락실에 들어오고,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고 이질적인 색깔로 물들여지는 동안,
사람들의 생활은 얼마큼 움직이고 변용되고 반짝이며 연결되었을까.
'영향'이란 건 단편적인 게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내 삶도 그런 것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보르헤스의 삶의 우주는 복잡한 곡선들을 거쳐 나와 긴밀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우주의 모든 곳의 어디쯤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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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개쩜니다
근데 개인적으론 픽션들에 실린 게 더 재밌었음
굳이 비교하자면 픽션들은 더 메타 '픽션'에 가까운 이야기들이고
이쪽은 조금 더 정석적인(물론 보르헤스향을 짙게 첨가한) 단편소설집에 가까움
근데 서사나 상징으로 따지면 오히려 알레프가 더 모호한 느낌이 있는 것도 같고?
(알레프가 복잡한 알레고리 같은 게 훨씬 적은 편인데 오히려 그게 잘 안 와닿았음)
잘 모르겠음
그래도 원채 취향에 맞는 작가라 재밌게 읽긴 했음
다음엔 불한당들의 세계사 vs 나무 위의 남작 vs 백년 고독
셋중에 하나 읽어야지
즐독
어째 보르헤스를 따라하기는 했는데 좀 그러노
제 글도 보심?? 보르헤스 전집 산거 인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