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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증을 안고 태어난 사람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죽음 앞에서 존재와 삶의 허무를 느끼고서 구도의 길에 들어섭니다.

이후 조계종의 절에 출가해서 스님이 되려 했다가

역시 신체적 문제 때문에 행자교육원에서 번번이 탈락,

결국 인도로 유학을 떠납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불교를 십여년 학습,

이러한 과정에서 경험하며 느끼고 사유한 이야기들,

인생과 진리와 수행에 대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때로는 웃기고, 또 때로는 슬프고 가슴 아프며, 또 때로는 날카롭고 심오한 이야기들.


아래는 책 가운데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중간에 잘려서 따로 파일 첨부하였으니 다운로드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델리에서 다람살라 가는 길은 버스로 12~14시간 정도 걸린다. 저녁때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데, 중간 중간 한 번씩 차를 세워 식사나 대소변을 해결한다.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푹 잠들면 그저 최고다. 하지만 버스가 워낙 후져서 앉아 있기도 불편한 자리에 걸리면 잠이 깊게 들 수가 없다. 재수 없으면 뒤틀린 자리에 안전하게 붙어 있느라 계속 온 몸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할 때도 있고, 앞좌석에 앉은 사람이 의자를 완전히 뒤로 젖혀서 옴짝달싹 못하고 내내 고문을 당해야 할 때도 있다. 버스 안에서 나는 냄새, 사람들 몸에서 나는 냄새, 달려드는 모기떼 정도는 기본 서비스다. ‘볼보라는 비싼 고급 버스가 있긴 한데 한 번 타 보았다가 오히려 더 고생을 했다. 에어컨을 틀고 창은 열 수 없게 되어 있는데 멀미가 나서 죽을 뻔했다. 밤에는 추워 죽겠는데 에어컨은 왜 그렇게 세게 틀어놓던지 원....... 사람들이 추워서 얼어 죽든 말든 상관없다. 그저 최고급 버스니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줘야 한다. 그런 게 바로 인도인들 특유의 무딘 센스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염려하는 건 바로 대변 문제다. 한 번 화장실 갈 때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말썽을 겪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날도 나는 버스에 타기 전에 장을 비운다고 화장실을 미리 한두 번 들락거렸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휴게소에 들르길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필 잠이 들었다가 휴게소를 지나서야 잠이 깼다. 그러나 그다지 심하진 않아서 참을 만 했다. 다음번에 설 때 해결하면 될 듯 했다. 그러다 또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또 휴게실을 지나친 모양이었다. 이제 정말 참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좀 있으면 또 서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버텼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고통에 몸부림치며 버스가 서기를 기다려도 버스는 도무지 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몇 시간이 지나 새벽 네 시쯤 되었을 때 어느 마을에서 드디어 버스가 섰다. 나는 총알같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큰일을 보는 인도인들에게는 모든 곳이 자연 화장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급해도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큰일을 볼 수는 없었다. 해결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골목길로 들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한참 걸어 들어가 꺾어지는 곳을 발견해 꺾어 들어갔다. 그 곳에서 그냥 일을 봤으면 될 텐데, 누가 소변보러 거기까지 올까봐 조금 더 들어가서 한 번 더 길을 꺾었다. ‘이제 누가 볼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에 안심하고 궁둥이를 까고 앉았다. 회심의 일타를 날리기 위해 힘을 주는 순간 빠바바바바바박!!!’ 하고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랐다. 내 대변 역사상 최고의 소리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변은 나오지 않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시 내공을 모았다가 다시 힘을 주었다. ‘빠바바바바바박!!!!’ 이번엔 더 큰 소리가 났다. 또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 미친놈의 대변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뭐야, 장난해? 빨랑 안 나와?’ 하고 힘을 막 쓰고 있는데 몇 미터 뒤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깜짝 놀라고 있는 나에게 더 큰 시련이 닥쳐왔다. 손전등 불빛이 하나 날아와 내 궁둥이를 비쳤던 것이다. ‘어헉!!!’ 그제야 주변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였다. 내가 궁둥이를 까고 앉아 있는 곳은 남의 집 마당 한가운데였다. 더구나 궁둥이는 현관문을 정확히 향하고 있었다. 집주인 할아버지께서는 한참 단잠을 주무시다가 폭죽 터지는 소리에 놀라 뛰쳐나오신 모양이었다. 난 난감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궁둥이에 손전등 불빛이 비추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밑을 닦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일을 볼 수도 없고, 이 난감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몰라서 식은땀만 죽죽 흘리고 있는데 이해심도 참 깊으시지, 영감님은 잠시 지켜보다 그냥 들어가셨다. ‘휴우~’ 나는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빨리 끝내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 다시 힘을 주었다. 그런데 서두른 것이 실수였다. 힘을 주자 빠락팍팍빠다다닥!!!!’ 하고 전보다 더 요란한 폭죽소리가 터졌다. ‘허걱!!!’ 역대 최강. 하룻밤 사이에 세 번 연속 신기록 갱신.......이든, 뭣이든 영감님은 단단히 화가 나셨다. 문을 박차고 나와 또 다시 내 궁둥이에 손전등을 비추며 이번엔 ! !” 하고 개 쫓는 소리까지 내신다.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정리를 하고 도망쳐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버스가 떠나기 전에 다행히 다른 곳에서 일은 해결하였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생각해보니까 왜 그렇게 웃기던지,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서 계속 낄낄거리고 있었다.


태백산 각화사


19994, 각화사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늦어 어두웠다. 맨 앞 건물의 한 방문을 두드리자 젊은 여자가 얼굴을 내민다. 출가하러 왔다고 하자 그 여자가 잠시 기다려보라며 누군가를 부르러 갔다. 잠시 후 한 노보살님이 나와서 나를 보더니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자고 나서 아침에 주지스님을 만나보라고 한다. 다음날 안내를 받아 주지스님 방에 찾아가 인사하고 출가하러 왔다고 하자 주지스님께서는 후원 일도 돕고 사원 청소도 좀 하면서 일단 며칠 있어보라고 하셨다.

후원에는 첫 날 본 노보살님 한 명, 50대 후반 쯤 돼 보이는 억센 공양주 보살 한 명,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처사 한 명, 첫 날 본 젊은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여섯 살짜리 딸이 있었다. 처사와 아이 엄마 모두 절에 온지 얼마 안 됐다고 하였고, 아이 엄마는 기도를 하러 와 있다고 하였다. 스님들은 주지스님을 비롯해 대여섯 명이 계셨고, 절 주위 동서남북으로 암자가 하나씩 딸려 있었다. 그 중의 북암에 계시던 스님은 성격이 활달하여 내게 이것, 저것 많이 가르쳐 주시며 친절히 대해주셨다. 하루는 그 스님이 멋진 걸 보여주겠다며 북암에 함께 가보자 한다. 얼마를 걸어 올라가 북암의 널찍한 앞마당에 도착하였다. 마당에는 벚꽃나무에서 떨어진 연분홍 꽃잎들로 어지럽게 수가 놓여 있다. 멋진 걸 보여주겠다던 게 바로 이것인 모양이었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나비 두 마리가 날아와 술래잡기 하듯 서로 쫓고 쫓기며 주위를 맴돈다. 나비들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아무 걱정 없이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구나. 이 아름다운 곳에 저 행복한 나비들. 내 삶은 이토록 추하고 불행하기만 한데.......’

갑자기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렸다.

어이, 박행자! 사내대장부가 그렇게 감상이 많아서 쓰겠어?”

북암 스님이 놀리듯 소리친다.

이리 와, 박행자. 들어가서 차나 한 잔 하자고.”

방에 들어가 스님이 끓여 주는 차를 마셨다. 끓인 물로 찻잔을 헹구고, 찻잎을 다기에 담아 끓는 물을 부어 우리고, 우린 물을 얼마 후 사발에 붓고, 사발의 차를 또 각자의 찻잔에 담아 마시는 그런 식의 전통차를 마셔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왠지 멋있어 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멋있어 보인 건 차를 다 마시고 나서 정리할 때의 모습이었다. 다기에 끓는 물을 부어 찻잎을 사발에 다 쏟아내고, 마시던 찻잔을 찻잎찌꺼기와 뜨거운 물이 담긴 사발에 넣어 이리 저리 돌리며 씻은 다음 제자리에 두고, 물과 찻잎 찌꺼기는 또 퇴수그릇에 담고, 그런 모습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나중에 인도에서 우리 반의 캐나다 스님과 다른 한국 스님과 함께 셋이서 한국 전통식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때, 찻잔을 씻고 정리하는 그런 순간이 차를 마시는 과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캐나다 스님이 나중에 다른 한국 스님보고 그게 도대체 왜 아름답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더란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나도 그게 왜 아름다운지는 모르겠다. , 본래가 아름다움이란 건 각자의 감상에 따른 것일 테니까.

언젠가 누가 번뇌가 없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자체가 번뇌가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번뇌가 없다면 아름다울 것도 추할 것도 없이 그저 모든 것이 밋밋해 보이겠지. 아니, 밋밋하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번뇌 있는 자만의 감상이겠구나.’

각화사에 온지 일주일쯤 지나 주지스님의 지시로 머리를 밀고 붉은 행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침마다 도감스님 방에서 초발심자경문도 배우기 시작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쓰기 위해 후원에서는 연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보살님, 공양주, 아이 엄마, , 이렇게 넷이서 하루 종일 연등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나는 연등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다. 본래부터 나는 단순작업을 좋아한다. 아마도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다른 걱정거리들도 그동안 접어둘 수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단순작업에 지루함 따위는 별로 느끼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렇게 예쁜 것을 만드는 일이라면.

연등을 만들면서 아이 엄마와 나는 급격히 친해졌다. 같이 둘러앉아 수다를 떨면서 아이 엄마는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마다 너무나도 재미있어 하는 것이었다. 아이 엄마가 워낙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어주니까 나는 신이 나서 꽤 많이 떠벌렸던 것 같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많이 늘어놓았는지 지금은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데, 워낙 내가 보통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할 희한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고, 또 한동안은 집에 폐인처럼 틀어박혀서 책을 그렇게 읽어 제꼈으니 할 이야기야 얼마든지 무궁무진했을 것이다.

처사는 공양주와 앙숙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공양주는 처사가 자기를 범하려고 한다면서 밤마다 후원 문을 앞뒤로 꼭꼭 닫아 놓았다. 어느 누가 자기처럼 험악하게 생긴 늙은 여자를 감히 범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자기 방문만 걸어 잠그면 되지, 왜 후원 문을 그렇게 닫아 놓는지 나는 불만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새벽 예불 전에 후원에서 물을 떠다 부처님께 청수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공양주가 깊이 잠이 들어서 한참을 불러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아 애를 먹었던 적이 있다. 짜증이 난 나는 결국 그 문제를 가지고 공양주에게 따지고 들었다. 노보살님의 추측으로는 처사가 밤마다 후원에서 밤참을 해먹는 것이 아니꼬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하지만, 하여튼 공양주로부터 납득이 될 만한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고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자 나는 자리를 뜨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였다.

내일도 문 잠겨 있으면 가만 안 있습니다.”

그러자 공양주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하이고, 참 내, 내가 그런다고 자기 말 들을 줄 아는 갑네.”

공양주는 귀가 많이 어두웠다. 반면에 본인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몹시 시끄러웠다. 사람들은 공양주가 귀가 먹어서 자기 목소리가 들리도록 말하다 보니 그렇게 크게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 때문에 귀가 먹은 것인지, 장난스럽게 논쟁을 하기도 하였다. 공양주는 어떻게 보면 만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좀 코믹스러운 데가 있다. 야쿠르트를 마실 때는 반드시 다섯 개를 한 사발에 부어서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마치 내가 가오가 있지, 어떻게 이런 쪼매난 걸 입에 대고 홀짝홀짝 마실 수가 있겠나.’ 하는 것 같다.

또 밥을 하고 나면 갓 뚜껑을 연 압력밥솥의 그 뜨거운 밥을 멀쩡한 주걱 옆에 놔두고서 꼭 맨손으로 만지곤 한다. 마치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보여주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