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갤에서 비싸기로 말좀 나왔던 7만2천원짜리 평전 사서 읽고있는데
초중반부에 브루노 바우어란 사람이 나오거든 ???
근데 바우어가 당시 기독교를 엄청 깠던 사람이고 독일 당국에서 바우어 징계도 내리고 괴롭혀서 강의도 방해하고 했다는데
내가 보기엔 바우어가 상당히 상식적인 말들을 한거같거든???
마르크스도 바우어를 옹호하며 상당히 따랐고, 사상의 줄기 형성에 바우어와의 교류가 결정적이었다 말하고
기독교의 근거는 유대인들의 종말론적 세계관이나 근동지방 신화의 전승이 아니라 고대 세계의 폴리스가 사라지고 나타난 로마제국이라는 새로운 보편성에 대한 대응으로 나왔다, 고 하면서 요한복음은 기독교 교리의 실정을 보여주는 예시이고 교리 선포를 하기 위한 구실로 쓰여진 문학적 구성물이다, 예수가 말한 내용과 훗날의 종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식이 표출된 것들이 뒤섞였다... 뭐 이런 이야기인데 메시아라는 관념 자체도 하나의 문학적 발명품이고.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기엔 19세기 중반 독일이면, 칸트 이후로 굉장히 계몽되고 다양한 학문들이 발전하고 경합하면서 과학기술의 추동을 이룩할때 아닌가 ??
오늘날엔 상식으로 받아들여질만한 위 내용들때문에 바우어가 쫓겨날뻔하고 핍박받았다는게 좀 납득이 안가서. 학문의 자유가 종교적 권위에 지배당한거야 19세기 중반에도 ??? 중세시대도 아니고 19세기 독일이 그랬을거라곤 상상하기가 힘드네 저 때 독일엔 클래식 음악도 거의 다 나오고 철학도 꽃피고 그런 시대 아냐??
그럼 저당시 철학이나 예술하던 사람들도 무신론자가 많아도 자기가 무신론자라고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시기였던거야 혹시 ???
아마도? 계몽주의가 탄생한게, 선하지만 전지전능한 신 - 야훼 라는 존재가 있다면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라는 회의에서 시작됐는데 정작 그렇게 신을 정의하는 사람들도 개독들한테 뚜까맞을까봐 대놓고 신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고 신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수준으로만 공격함 ㅇㅇ
19세기면 한창 뚜까맞을 시기일듯.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머릿말인가 작가의말에서도 20세기인데도 무신론자는 떳떳할 수 없다고 말했으니
그러면 헤겔이나 칸트도 사실상 무신론자이지만... 시대상황상 나 무신론이야!!! 라고 말하지 못한것도 있겠네? ???? 피해 안볼려고 ????
내가 그쪽에 대한 지식이 얕아서 잘 모르지만, 그렇지도 모른다고 생각함
19세기 독일의 기독교 신학 특히 개신교 신학은 심지어 예수부활은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한 게 아니라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 예수의 기적 모두를 부정하거나 이집트 탈출시의 10개 기적 모두를 부정하거나 이집트 탈출 그 자체를 부정한 사람들도 신학저서를 내고 강의를 하고 현직 신학교 교수를 하던 시절이므로 문제의 원인은 니가 생각하는 그딴 게 될 수가 없음.
그런데 평전 보면 슈트라우스(예수전 쓴 넘)는 아예 퇴출되고 바우어도 살해 협박이나 고위직들로부터 파면에 시달렸다고 하던데??
19세기도 기독교가 주류였지 - dc App
순수하게 종교적 영역이던 성경연구를 소위 고등비평이란 이름으로 모든 인문학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을 다 도입해서 탈종교화시킨 게 18 19 세기 독일 개신교 신학자들임. 이런 전통 때문에 오늘날의 독일에서 신학으로 최고 명문 대접 받는 튀빙겐대학 신학부 학생들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가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무신론자임
혹시 신학생이야 ??
그 시절 독일은 하인리히 궁켈의 문헌가설로 창세기 모세 저자설도 부정한 사람이 신학교 교수하던 기독교 시대임. 천체물리 천문학 드립치다 화형당하던 중세유럽 상황이 아니지. 진짜 원인은 딴 데 있을걸?
젊은 시절 신학 전공한 아재임. 지금은 40대지만.
위의 신학교 출신 아재 상당히 잘못 알고 계십니다. (아마 총신이나 보수교단 출신이실듯?..)
19세기 독일의 마르크스 청년기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전 유럽이 보수화로 들끓을 시기였어요, 1940년대 새로 즉위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매우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인물로 쾰른 대성당을 고딕식으로 다시 수리하라고 할 정도의 인물입니다. 그 영향인지 19세기중반 독일은 후기 낭만주의의 여파(감성적 중세주의)가 휘감으며 할레 연보나 라인 신문같은 진보언론이 폐간당하고 검열 심하게 당하던 시기입니다. 즉, 양심있는 학자들이야 소신껏 복음서가 인간의 기록이고 연대기적으로도 오류가 있고 구약이 메소포타미아 근동 신화의 산물이다, 이런 역사적 팩트를 언급한거고 그 기록들이 오늘 우리에게 남겨진거구요. 저 당시 저런 급진적인 책이 발간되었다고 해서 저 시대가 저걸 수용했다는 의미는 아니죠.
오히려 지금의 꼴통 대한민국 보수 기독교 교단보다 저때 독일의 개신교가 더 꼴통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 슈트라우스나 브루노 바우어같은 거의 무신론적 기독교로 간 경우 말고도 포이에르바하나 헤겔 청년기처럼 유신론적 비기독교주의로 분류될 수 있던 인물들조차 엄청난 탄압을 당합니다. 탄압이란게 교수직정년 보장을 안해주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는거죠.
실제 저당시 급진적인 신학을 주창했던 사람들 다 불행하게 여생을 보냈습니다. 스피노자같이 자연신학 주장했다가 타국으로 망명한 시대보다도 오히려 19세기 중반 독일이 더 보수적 경향이었다 보심 되요. 그에 대한 반동으로 1900년을 전후해선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불리는(이 범주조차 적확하진 않지만) 일련의 사상이 잠시 활기를 띄지만 양차대전을 겪고 일류 신학자들은 미국으로 러쉬, 이후 스위스인 칼바르트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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