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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이라고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나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훑어 본 것뿐인데도 놀랄 만한 거리가 한가득이다. 시와 주석으로 이뤄진 소설이란 메타 소설스러운 형식은 지금 봐도 신선할 정도이고, 네 갈래 이야기(셰이드의 인생, 셰이드와 킨보트의 관계, 잼블라 마지막 왕의 도주극, 암살자의 추적극)가 병렬적으로 진행되는데도 산만하기는 커녕 대위법적인 조화로움이 느껴졌다. 심지어 서사 자체로도 흥미롭다. 게다가 현대 하이퍼링크 문서들 못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엮여있는 주석들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여러모로 감탄스러운 작품인 듯...


하지만 그거와 별개로 나는 지금 혼란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이 책의 수많은 수수께끼 속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도 텍스트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 같다는 찝찝한 기분이 드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는 1회독 시점의 감상이라는 느낌으로 내가 당황스러웠던 포인트를 기록해 보려고 한다.



사실 머리말부터 당황스러웠다. 머리말에서부터 주석자인 킨보트를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책은 찰스 킨보트 교수가 존 셰이드의 <창백한 불꽃>을 주해한 학술서라는 컨셉을 취하고 있지만, 킨보트는 자신의 주관적인 감상을 남발하고 개인사와 취향을 떠벌리는 등 학술적 객관성은 개나 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자신의 주석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는 정도이다. 이런 머리말을 읽은 독자가 과연 책의 주석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셰이드의 자전적 시 <창백한 불꽃> 같은 경우는 비교적 이해가 가는 파트였다. 시인이 유년기, 아내, 딸 헤이즐, 고향을 풍경을 되돌아 보는 시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두 가지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딸 헤이즐의 자살과 시인 본인의 심장마비 사건인데, 시인은 이 일을 계기로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 형이상학적 시구절들이 문제가 된다. 나 같은 독자가 이 난해한 시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석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 분명한데, 이 주석자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다시 한번 제기되기 때문이다.


주석은 본격적으로 미로가 펼쳐지는 파트였다. 주석자 킨보트는 시인의 과거에 대한 정보에 더불어 시인과 자신의 인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곧이어 킨보트의 고향 젬블라 왕국 국왕의 도주극, 그리고 그를 시해하기 위한 암살자의 추적극이 시작된다. 도대체 이 시와 젬블라가 무슨 관계인지도 모르겠지만, 주석을 읽다보면 사실 시는 뒷전이고 젬브라 썰풀기가 킨보트의 목적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킨보트의 정체와 이 이야기의 전말이 드러나기는 한다. 킨보트가 여기저기 설명해 놓았던 젬블라 마지막 왕의 이야기는 사실 본인 이야기였던 것이다. 킨보트는 젬블라의 역사를 위대한 시인 셰이드의 작품으로 재탄생시켜 영속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남의 이야기인 척 시인에게 썰을 풀어 놓았던 셈이다. 하지만 큰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암살자가 킨보트를 따라 잡고 총격을 가하는데, 사고로 셰이드가 그 총알에 맞아 숨지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킨보트는 죽은 셰이드의 주머니에서 원고를 챙기고(이 이기적인 킨보트는 친구가 죽는 와중에도 원고를 지킬 생각 밖에 하지 않는다.) 소중히 보관한다. 사건을 마무리한 뒤 킨보트는 큰 기대를 안고 원고를 읽게 되는데, 막상 정작 완성된 시를 보니 시에는 젬브라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큰 분노를 느끼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이 시에 무지막지하게 많은 주석을 붙여 어떻게든 시와 젬블라의 역사를 연결시키고자 마음 먹는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바로 우리가 읽는 <창백한 불꽃>이다.


이 자체로도 골때리는 이야기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다시 한번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석의 마지막에 이 모든 이야기가 허구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남겨놓기 때문이다.


"오돈과 합작으로 <젬블라 탈출>(궁전 무도회, 궁전 광장에 터지는 폭탄)이라는 신작 영화를 제작할지도 모른다. 연극 평론가들의 단순한 취향에 영합해 무언극을 지어낼지도 모르겠다. 세 명의 주역, 즉 상상 속의 왕을 죽이려는 미치광이와 자신이 왕이라고 상상하는 또다른 미치광이 그리고 우연히 사선으로 굴러들어와 두 허상 간의 충돌로 죽는 저명한 노시인이 등장하는 시에 뒤떨어진 신파극을." (p. 371)


이 한 문단으로 인해 주석 전체에 걸쳐 진행된 이야기를 근본부터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색인에서는 찝찝한 느낌이 극에 달한다. 사실 색인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듣고 알고 있었는데도, 그 비밀을 제대로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색인을 꼼꼼히 읽은 뒤에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했고, 편집증적으로 정리된 주석 번호를 보며 재독을 결심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상이 수수께끼 속에서 길을 잃은 나의 현상황이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움이 짜증난다기 보다는 일종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기분이고, 이 책의 신비로움을 증대시키는 느낌이다. 사실 역자의 해설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된 의문도 많지만 1회독의 감상을 기록하기 위해 과장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아무래도 해설에서 소개해준 연구서를 하나 구해다가 본격적으로 다시 읽으며 수수께끼는 푸는 게 좋아 보이는데,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으면서 내 감상이 변하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사실 못해도 5-6년 전부터 70년대 이태동 번역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야 김윤하 번역본을 또 구해다 읽었다. 그때 힘들게 구해 놓고 시 부분만 조금 읽다가 말았던 거 같은데, 이 좋은 거 그때 왜 읽다 말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