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정말 충격적이었다. 한문장 한문장이 너무 와 닿아서.

인간실격의 요조는 자의식 과잉인 인물이나 중2병 환자가 아니라 세상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글에는 사회성을 상실한 인간의 극도의 자기애가 묘사되어 있다.

요조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스스로가 너무 한심한 인간임도 잘 안다.

여기서 사랑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자기에게 갖는 평균적 수준의 사랑이다.


그가 연기하는 것은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연기하는 것은 삶이 정말로 연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적 목적을 위해서 가면을 쓰는 류의 그런 연기를 말하는게 아니다. 그에게 사람들은 섬뜩한 NPC, 즉 AI로 느껴진다.

그 안에서 그는 AI가 작동하는 알고리즘에 맞춰 티가 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만약 들통나면 죽음이다.

그에게 인간은 소통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다른 인간들과 자기 자신은 동류가 아니다. 그는 인간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마리의 원숭이와 같다.

인간이 도통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아니 그 이전에 산다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인간 실격'이다.

이 책은 인간 요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요조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그는 이미 인간집단에 속할 자격조차 상실한 자이다.


"저는 혼자서 전차를 타면 차장이 무섭고, 가부키 극장에 가고 싶어도 붉은 카펫이 까려 있는 현관 계단 양쪽에 죽 늘어서 있는 안내양들이 무섭고, 레스토랑에서는 등 뒤에 조용히 서서 접시가 비기를 기다리는 웨이터가 무섭고, 특히나 돈을 치를 때 아아, 그 어색한 손놀림. 저는 뭔가를 사고 나서 돈을 건넬 때면, 인색해서가 아니라 너무 긴장하고 너무 부끄럽고 너무 불안하고 너무 두려워서 어찔어찔 현기증이 나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거의 반쯤 미친 것처럼 되어, 값을 깎기는커녕 거스름돈 받는 것을 잊어버릴뿐더러 산 물건을 갖고 오는 것을 잊은 적도 종종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도저히 혼자서는 도쿄 거리를 다닐 수가 없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온종일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보내던 그런 속사정도 있었던 것입니다."


대인기피증에 걸렸을 때 내 심리와 매우 흡사하다. 가족을 제외한 세상 모든 인간이 전부 두렵고 사람과 마주치는 것,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극도로 두렵다. 당시 내게 제일 두려웠던 것도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할 때였다. 그 어색한 손놀림.. 그 어색한 손놀림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었다. AI들이 알고리즘에 맞춰 잘 돌아다니고 있을 때, 나의 돈을 건내는 그 어색한 손놀림을 그들이 눈치채고 일제히 눈동자를 돌려 나를 노려보진 않을지 하는 극도의 두려움. 실제로 대인기피증의 극복도 물건을 사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에서 출발했다. 편의점에 들어갈 때 어떻게 문을 열어야 하는지, 통로는 어떻게 돌아다녀야 하는지, 계산할 때 말은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손은 어디에 두고 있어야 하는지, 눈은 어떻게 마주쳐야 하는지 하는 그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에서.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라며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의 환영에 겁먹는 데서 다소 해방되어 예전만큼 이것저것 한도 끝도 없이 신경 쓰는 일은 그만두고, ..."


또는 위와 같은 구절도 있다. 이것도 요조의 간절한 몸부림이다. 세상이 너무 무섭고 사람들이 너무 두렵지만, 실은 '세상'이라거나 '사람'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순간순간 마주하는 개개의 개인들만이 존재할 뿐이고, 나는 세상이나 사람과 싸우는게 아니라 그때그때 각 개인들과 싸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에게는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지만, 개인들이라면 나도 어떻게 한번 붙어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싸우는 것, 투쟁은 정말 치고박고 싸우는게 아니다. 편의점 알바에게 물건을 건내고 계산을 하는 것, 그것조차도 투쟁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압사되지 않도록 견디어내는 스스로의 격렬한 투쟁. 길을 걸을 때 건너편에서 말없이 걸어와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사람과의 투쟁.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오고가지 않지만 그것도 투쟁이다. 타인은 기본적으로 섬뜩한 존재다. 그 존재와 나란히 걷는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이에게는 투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 투쟁이라면 해볼만 하지 않은가, 아니, 해야만 하지 않는가 라고 요조는 말하고 있다. 물론 실패하지만.


그래서 찐따감성을 지닌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이 주는 공감의 ×1000배를 찐따들에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