념글에 해리포터 철학 얘기가 나와서 나도 저런 거 써보고 싶어서 한 번 써봄


1. 서론



해리포터는 매우 흥미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 기존 판타지 세계는 대부분 폭력을 독점하는 근대 국가가 부재하고(심할 경우 개인의 무력이 국가를 상회하는 경우도 있음), 국가가 행정력을 독점하지 못해서 교회나 지방 호족 같은 봉건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음. 하지만 해리포터는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는 중심 교육 기관과, 관료제가 어느 정도 확립된 마법 정부의 존재, 비록 애매하긴 하지만 한 인물에게 집중되지 않은 체계적인 정치 시스템 등 중세 봉건 사회라기보단 근대 사회에 더욱 가까워보임.


그렇다면 해리포터는 진정으로 "근대적"인 마법 세계일까? 겉으로 보기엔 그럴 수도 있음. 하지만 조금 더 깊숙히 살펴보면 해리포터 세계관에는 진정으로 "근대"사회라고 보긴 힘든 점이 있음. 그리고 그 이유를 푸코의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려 함.이번 글에서는 지식의 관점에서 해리포터 세계관을 분석해본다면, 다음 글에서는 권력이라는 관점에서 해리포터를 분석해볼 예정임.




2. 에피스테메와 지식



푸코는 유명한 책 "말과 사물" 서문에서 "한 문화의 기본 코드, 하나의 문화에서 언어, 인식의 도식, 교환, 기술, 가치 체계, 실천의 위계 등을 지배하는 코드는 각자가 상대하게 되고 다시 처하게 되는 경험적 질서를 처음부터 결정"된다고 했음. 이처럼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얻어낸 지식은 무질서하게 마구잡이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규칙, 혹은 코드에 따라서 질서잡힌 채로 만들어짐. 다시 말해, 지식은 생성과 동시에 기존 지식에 포섭되어지고, 기존 지식이 배열된 방식으로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는 거임. 그리고 이러한 경험 이전의 선험적 코드를 푸코는 "에피스테메"라고 명명함. 푸코는 이러한 에피스테메는 한 시대에 변함없이 쭉 유지되다가 특정한 한 시점에서 갑자기 그 근본부터 뒤틀리는 변화를 겪는다고 주장함. 그리고 이러한 불연속점이 두 번 있었다고 주장하느데, 바로 고전시대의 막을 여는 불연속과, 근대성의 문턱을 가리키는 불연속임.


고전시대 이전 이러한 지식의 에피스테메를 한 단어로 말한다면 "유사성"임. 이 유사성은 간단함. 지식의 추가는 그와 유사한 모습의 지식 옆에 배열됨. 푸코의 말을 빌리면 "대지는 하늘을 반영했고, 별에는 얼굴이 비치었으며, 풀의 줄기에는 인간에게 유용할 비밀이 숨어있고, 회화는 공간을 모방"했음. 이러한 유사성의 에피스데메는 고전 시대에 와서 재현이라는 방식으로 바뀜. 모든 것이 똑같고, 그렇기에 모든 것이 다른 유사성의 시대가 끝나고,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배열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거임. 유사성의 시대에서 지식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음. 모든 것이 유사성이라는 관계로 이어져 있으며, 하나를 모르는 것은 네트워크 전체를 모르는 것과 같음. 반면 재현의 시대가 오자, 이제 모든 지식은 하나의 2차원적 평면에 배열됨. 이 바둑판의 격자와 같은 배열 방식에서, 모든 지식이 나열되고 있음. 생물학에서는 린네가 모든 종을 나열하는 박물학이 시작됨. 언어학에서는 인류 사고 전체를 재현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려 하고, "보편 문법"을 추구하기 시작함. 이 바둑판은 시작도 끝도 없음.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촘촘한 격자 모양의 지식 배열은 세계 전체를 재현하려 함.


이러한 재현의 에피스테메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꺾이게 됨. 바로 근대의 문턱에서 "역사"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거임. 더 이상 지식은 2차원 평면 내에 시작도 끝도 없이 배열되지 않음. 대신, 지식은 3차원 시공간을 가지게 됨. 더 이상 생물학은 단순히 표면적인 동일성을 통해 배열되지 않음. 그보다는, 진화론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 배열되기 시작함. 언어학도 마찬가지임. 보편 문법의 자리를 대신한 새로운 언어학은 비교문법임. 언어는 역사성을 가지는 유기체와 같은 것으로 분석되기 시작하면서 이전의 부모도 자식도 없는 그저 존재하는 질서의 역할에서, 변화하는 주체가 되기 시작함.


그리고 이처럼 재현의 시대에서 불변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지식이 역사라는 개념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하자, 이러한 불안한 지식의 배열에 질서를 잡을 존재가 필요하게 되었음. 모든 것이 변하는 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개념. “표상을 구성하는 생물" 이면서,"표상을 토대로 하여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표상할 수 있는 기묘한 능력을 지닌” 단 한 존재, 바로 인간이 마침내 등장했음.



3. 해리포터의 에피스테메


그렇다면 해리포터에서 지식은 어떻게 형성될까? 해리포터에서 지식은 이미 완전히 결정되어있음.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가장 강력한 마법과 저주는 대부분 "고대"의 저주임(릴리 포터의 보호 마법, 볼드모트의 부활 마법, 호그와트 보호 마법, 호크룩스 등은 모두 "고대"의 마법이라는 말로 그 강력함을 강조함).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가장 강력한 아티펙트인 죽음의 성물은 호그와트 창설 이전까지 올라감. 그나마 가장 최근 아티펙트 중 강력한 마법의 돌 역시 존나 오래된 물건임.


이처럼 이미 엄청난 물건은 모두 발명되어 있으며,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보존하고 전달하는 거임. 모든 지식은 호그와트 도서관에 저장되어있으며, 호그와트의 교수들은 지식을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역할만을 할 뿐임.


그렇다면 과연 해리포터에서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 아님. 지식은 어느 시대에서나 생성됨. 문제는 지식이 어떤 규칙, 어떤 구조를 통해 생산되는가임. 해리포터 세계관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주문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마법약이 개발되며, 새로운 마법 생물이 등장함.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지식은 기존 지식의 체계에 결합되는가임. 해리포터에서 이를 찾기는 쉽지 않음. 왜냐하면 이런 장면이 안나오기 때문임.


그러나, 우리는 간접적으로 해리포터에서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유추할 수 있음. 예를 들어 혼혈 왕자 편에서는 스네이프가 주문을 개발하고, 해그리드는 교배를 통해 새로운 마법 생물을 만들어냄. 그렇다면 이렇게 형성된 새로운 "지식"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기존 지식 체계에 포섭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음.


그렇다면 이들은 이러한 새로운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배열할까? 과연 우리처럼 동적인 원리를 통해 그 지식을 배열할까? 아님. 해그리드나 뉴트 스캐맨더의 신비한 동물 설명 방식은 위험도나 유사성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음. 마치 고전 시대 린네의 생물학과 유사함. 수많은 마법 주문들은 그 마법 주문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설명보다는 마치 고전 시대의 언어학처럼 그 구조에 대한 표면적인 접근만 할 뿐임. 해리포터 세계관에 있어서 지식은 고정된 실체이며, 그 변화의 과정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음.


어쩌면 해리 포터 세계관에서 계속 일관성 있게 드러나는 역사에 대한 홀대 역시(마법의 성물이나 비밀의 방은 실제 역사이지만 신화로 취급받음, 또한 마법의 역사 과목은 유령 교수가 수업할 정도로 의도적으로 호그와트 수업에서 방치되고 있음. 덤블도어가 실제로 싫어한다고 말한 점술도 이정도 취급을 받고 있진 않음)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음.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아직 해리포터 세계관에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등장하지 않았음. 아직까지 지식은 철저히 잘 구조화된 격자에서만 배열되고 있는 고전 시대의 에피스테메에서 벗어나지 못했음. 해리포터 세계관에서는 진화론도, 노동을 생산으로 파악하는 경제학도, 마법의 변천을 연구하는 언어학도 존재하지 않음. 지식은 동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아닌, 고정되고 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것은 오로지 지식을 기존에 틀에 맞게 "재현"하고, "보존"하고, "전달"하는 역할만 할 뿐임. 그리고 지식이 불변하는 이 세계에서,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해석하는" 역할은 불필요함.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도 불필요함. 심리학도, 사회학도, 문학도 존재하지 않음.


4. 결론


해리포터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근대화된 사회임. 근대 국가와 대학, 자본주의의 발전, 체계화된 정치 행정 시스템 등 근대 사회적 모습을 강하게 띄고 있음. 그러나, 이는 겉으로 보았을 때만 그렇게 보이는 거임. 적어도 가장 중요한, 지식이 어떻게 생성되고 기존 질서에 포섭되는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해리포터 세계관의 에피스데메는 고전주의 시대를 벗어나고 있지 못함.


다음 편에서는 과연 해리 포터의 세계관은 근대 사회 권력의 핵심적 특징인 규율 권력이라고 볼 수 있는지, 혹은 여전히 중세의 주권권력에 머물러있는지를 써보려 함. 그리고 과연 해리포터 세계관은 왜 근대적 외피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도 고찰하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