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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부터 시작해서 이 책을 언론에 소개하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완독한 입장에서 본다면 그 사람들이 진짜로 이 책을 읽기는 했나 싶다) 이 책을 한나 아렌트의 정치 사상이해의 길잡이 정도로 소개하는데, 저자가 책의 에필로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아이히만 재판이 정의 실현에 과연 성공했는가에 대한 보고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책이 난해하다는 평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독자들이 이 책의 부제이지만 정작 저자는 책 말미에 딱 한 줄만 언급한 악의 평범성에 관한 언급을 찾는데 집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판에 관한 보고서였던 이 책은 아이히만의 체포, 재판 과정, 재판과정에서 아이히만과 제한적인 수의 증인들에 이루어진 심문과 아렌트의 평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렌트가 이 보고서에서 주장하는 바는 이 재판은 세 가지 이유에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승자의 법정이 가진 불공정성 이었다 (번역본에선 승자의 법정의 훼손된 정의라고 표현). 예루살렘 법정은 아이히만의 유대민족에 대한 적대행위가 곧 인류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봤는데, 그렇다면 이 재판은 유대민족의 손이 아닌 국제재판에서 다루어져야 했고, 또한 피고를 위한 증인들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히만이 법이 제공하는 적정하고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두 번째는 실패의 이유는 법정이 주장한 '아이히만의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다'라는 주정에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예루살렘 법정이 '유대민족에 대한 적대행위는 인류에 대한 적대행위이다'라는 전제하에 재판을 진행했지만, 이러한 특정 민족에 대한 범죄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류 전체의 위협이 되는지 특정 민족에 대한 범죄가 어떻게 다른 민족에 대한 범죄로 확대되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실제로 재판에서는 유대민족과 똑같은 고통을 겪은 폴란드인이나 집시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마지막 이유는 이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를 인식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형법상에서의 범죄는 동기를 가졌느냐 우발적이었으냐에 따라 형의 무게를 달리한다. 법정은 아이히만에게 법정 최고형인 교수형을 선고하기 위해 그가 보편적인 인류애를 상실했다는 점을 증명하려 애썼지만, 아이히만의 친위대 중령이라는 계급은 마냥 낮지도 않지만 자신의 의지를 강력하게 관철한 정책을 수행하기엔 미천한 계급이었고 그 자신도 특별히 인류애가 결여된 사람이기 보다 수동적으로 정책을 따른 보통의 독일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만 확인한다.

 

이처럼 이 보고서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아이히만의 재판이 정의 실현에 실패했다는 결론과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주장이 전부다. 저자는 이 재판을 통해 전체주의 같은 특별한 조건 속에서는 우리들 모두 아이히만처럼 인간의 조건 중 하나인 타인을 생각하는 능력을 잃을 수 있으니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긴 하지만 그 교훈이 이 책이 다루는 주요쟁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장미의 이름을 보면 윌리엄 수도사는 요한의 묵시록을 떠올리는 범죄 현장을 마주한다. 윌리엄 (그리고 독자)요한의 묵시록이 사건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라는 전제하에 사건의 실마리를 찾다 사건의 본질을 놓치는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접한 내가 딱 그랬다. 장미의 이름이 요한의 묵시록을 미끼로 던졌다면 이 책은 '악의 평범성에 관하여' 라는 부제를 미끼로 던져서 책의 본질 파악에 어려움을 야기한다. 이 책에 관심이 있거나 읽다가 방치한 경험이 있다면 책의 부제인 악의 평범성에 집중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대신 아이히만을 통해 밝혀지는 나치의 유대인 정책의 변천사와 예루살렘 법정이 아이히만에게 어떤 혐의를 부과했는지 그 혐의가 적합했는지에 집중하면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본질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들 즐독해라~ 막짤은 다음으로 읽을 푸치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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