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낭만화하기 : 달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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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간을 달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동시에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그 무엇도 순수히 바라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렸지요. 이제 사람들은 무엇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의 이름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그물망처럼 다른 이름들을 계속 낚아챕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여기 부표가 있습니다. ‘성장’이라는 부표지요. 그것은 자신을 표상하는 다른 면면들을 끌어당깁니다. 어디보자, ‘진보’, ‘진화’, ‘발전’. 그것은 ‘상승’의 이미지를 뜁니다. 그리고 그것들 각각에서 또다른 이름들이 부상하기 시작하지요. ‘사회,’ ‘정치,’ ‘경제,’ ‘계급,’ ‘자유,’ ‘역사’.


‘성장’이라는 말은 변화의 ‘방향’을 암시합니다. 뒤를 보는 법이 없지요. 그저 앞, 그리고 위를 향합니다. 저 멀리 떠오르는 열기구처럼 자신이 지나친 것들을 유유히 조망하며 자신을 새로이 규정하고 확인합니다.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쨌거나 ‘나’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고, 그것이 ‘성장’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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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아 청년이라 해야할까요? 어쨌거나 그는 말합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거기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그는 현실을 벗어나 하염없이 상승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나 내가 사실 이루어 낸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에는 차츰차츰 무일푼으로 전락해 아파트마저 잃고 길바닥에 나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자기 몰입, 자신의 내면에 천착하고 현실에 침을 뱉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을 맺습니다. 그는 달에 이르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팔 하나만을 걸친 채 주르륵 미끄러지고 말았지요.


“그러나 다음엔 그 글자들은 사라져 버렸고 문Moon이라는 단어의 가운데 있는 두 개의 o 자만이 남았다. 나는 나 자신이 그 글자들 중의 하나에 매달려 있는 것을, 위험한 묘기에서 실수를 범한 공중 곡예사처럼 매달리려고 애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에는 조그만 벌레처럼 주르르 미르러졌고, 그 다음에는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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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의 첫째 장과 두 번째 장에서 우리는 포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는 언제든 현실을 등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약간의 명분이 있다면요.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일지라도 그것이 논리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라면 그는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이유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죠. 그는 이 글의 서술자이자 ‘m.s.’ 포그니까요.


서술자를 봅시다. 서술자는 포그이지만 포그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글은 미래의 포그과 과거 포그의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즉, 이 이야기는 서술자(미래의 포그)에 의해 조직되고 정형화된 이미 완결되어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각 장면은 포그(서술자)가 하나하나 골라낸 것이라는 말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포그의 서술에 구체성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글에는 묘사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떠벌떠벌 무언한가를 설명하고 해설할 따름이죠. 그렇습니다. ‘해설’. 포그의 글은 그 어떤 글 보다 구체적입니다. 모든 문장 하나하나에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담고 있으니까요. 그는 현실에 자신을 입힙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의 눈을 통해, 그리고 그의 내면을 통해 이 글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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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왜 ‘성장’ 소설인지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달의 궁전>은 너무나 분명하게 포그라는 사람의 성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기 내면에 천착하고,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뿌리를 찾고. 이 글은 의문이 들 때마다 걷고 또 걸은 끝에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은 사람의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성장’이라는 개념을 조금 더 다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햇빛 아래 유리잔처럼 언제나 조금은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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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포그를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서술의 대상, 이야기 속 포그입니다.


그는 확실한 것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지성인이고,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지요. MBTI로 따지면 확실히 NT계열이 아닐까 합니다. 관념을 다루는데 아주 능하거든요.


그는 뉴욕 센트럴 파크를 전전하다 골병이 든 끝에 친구 그리고 여사친(예비여친)에 의해 구조된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생을 해놓고도 그는 여전히 포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고자 합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셈입니다. 그리고 거의 종교적인 광신으로 그 일에 매달리기로 합니다.


“나는 성자, 좋은 일을 하면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는, 신을 믿지 않는 성자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그 말이 어리석은 소리로 들리지만 나는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나는 확실한 것을 갈망했고,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그는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끝을 보고자 합니다. 달에 이르고자 합니다. 닿지 않는 것, 확실한 것, 이상.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는 대이론을 원합니다. 달라진 점은 자기를 향하던 시선이 타인을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한 변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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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현실과 타협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냈습니다. 하나로 통합시켰죠. 그리고 그의 글은 현실적인 글이라기보다 그 자신의 관념과 이미지로 범벅된, 아주 관념적인 글에 가깝습니다. 현실의 이야기가 그의 내면에서 완결된 거죠.


그는 자기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이제 막 유년기를 벗어난 청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자 했고 그것은 자신 안에서 종결시키고자 했던 이상주의자. 어지러운 세상의 환멸을 느끼고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키려고 했던 근대성의 화신.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통합하고자 했던, 개인성을 누구보다 중히 여기면서도 개별적인 모든 것은 엮어보고자 했던 낭만주의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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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자신의 열기구를 띄웠습니다. 세상을 그리고 자신을 지긋히 내려다보면서 그것의 전체적인 형태을 가늠합니다. 그가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제 막 자신의 이야기를 써낸 참이니까요. 그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할 때 그것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도 조금은 궁금합니다.


<달의 궁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입니다. 아주 쉽게 써 있으면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그러면서도 ‘내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형상화해낸 소설이니까요. 미처 말 못한 재미난 요소들도 많음은 물론이지요.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도 모두 m.s 포그처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