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별하지 말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너는 틀렸다라 지적하는 시대다. 서로가 서로에게 옳다고 말하면서 뒤에서는 누구보다도 도덕에 엄격한 모순적인 사회.


- 브루노 라투르는 이러한 모순을 두고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진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그레이엄 하먼을 필두로 한 철학자들은 이러한 상관주의의 해결하기 위해 객체 지향 존재론(OOO)에 기반한 새로운 철학 사조를 주창했다.


- 근대성은 문화와 자연,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인간 주체와 비인간 주체의 구분이라는 이분법적 구상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근대적 구상으로 인해서 주체인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비인간 객체들의 존재 자체를 도외시하게 됐다. 이런 점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인간 객체들에 주목하는 철학 사조가 바로 OOO.


- 이 글에선 이 사조의 시조격인 기념비적인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0fa11d0283158b348b399fe02a3086d6925b7ee217850063d67b9b8a8c50b3c6051cc21ec2fb488c3ea134a7ddcf2416acdd89d8935508bc4

프랜치스카 비어만, 책 먹는 여우*



- 메이야수는 자신의 저서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에서 “FHS(과학 밖 소설)의 시초는 프란치스코 비어만으로부터 시작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선 책 먹는 여우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다.


- 이런 상황에 대해 한국 분야 횡단 연구의 선구자인 박형서는 자신의 연구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의 음란성 연구에서 모든 작품은 창작의 과정보다는 해석의 과정을 통해 세계에 접근하며 아직까지 어린왕자, 책 먹는 여우, 누가 내 머리 위에 똥쌌어등이 적절한 언어로 해석되지 않은 것은 한국 문학이 그만큼 빈약하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 책 먹는 여우는 소설은 그림과 구석에 적힌 짤막한 문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성이 이 소설을 단순히 동화나 우화로 읽게 만들고 만다. 그러나 그 속엔 치밀한 풍자와 대담한 철학적 담론이 숨겨져 있다.


- 잠시 소설을 살펴보자.


-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소금 한 줌 툭툭, 후추 한 줌 툭툭 뿌려 꿀꺽 먹어치웠죠.”라는 강렬한 도입부와 여기에 이어지는 하루에 적어도 세 끼는 먹어야 했는데 책 값이 좀 비싼가요. 여우 아저씨는 벌써 가구들을 모두 전당포에 맡겨버렸답니다.”라는 문장에 이 소설의 의의가 담겨있다.


- 책은 유기체가 아니다. 모두가 결코 먹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말한다. 인간은 절대 셀룰로오스를 분해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여우 아저씨는 다르다. 소금과 후추, 그리고 책이라는 이 세 가지 사물은 모두 무기체지만, 그것은 소설 말미에서 여우라는 하나의 생명으로 화한다.


- 여기에 더불어 중요한 것은 누구도 여우가 인간 세상에 섞여 사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우는 멀쩡히 자신의 집과 가구를 소유하고 있다.


- 우리는 이 부분을 동화니까라는 가벼운 말로 넘기려 한다. 하지만 책을 자세히 살펴본 독자라면, 주위 사람들의 이같은 무관심 속에 굉장히 불쾌한 어떤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사람들은 여우가 사회에 섞여 지내는 것엔 무감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책을 먹는다는 행위에만은 한없이 엄격하다. 끝내 여우는 책을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서점 출입을 금지당한다.


- 여우 아저씨가 남들에게 해를 끼쳐서가 아닌, 단지 책을 먹기 때문에출입을 금지당했다는 점에 집중하길 바란다. 여우의 시선에서 여우 자신은 결코 어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책을 먹는 것은 철저히 생존을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책은 음식이 될 수 없다.


- 주디스 버틀러는 비인간적인 행위부도덕한 행위로 치환된다 말한 바 있다. 인간이 주체인 사회에서 비인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20세기까지 동성애가 비인륜적인 행위로 취급받았던 것처럼. 이처럼 절대적 윤리 기준을 상정한 정치 구조를 브루노 라투르는 도덕(하익) 정치라 칭한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0fa11d0283158b348b399fe02a3086d6925b7ee217850063d67b9b8a8c50b3c6051cc21ec2fb488c3ea134a7d8ba31160c7dfc6d335853b4e

여우가 책을 먹는 데에 화가 잔뜩 난 사서



- 하지만 여우에게 인간 윤리의 잣대를 내미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밥을 먹고 똥을 싼다,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주체인 사회에서 통용되는 논리다. 책을 먹고 글자를 싸는 여우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0fa11d0283158b348b399fe02a3086d6925b7ee217850063d67b9b8a8c50b3c6051cc21ec2fb488c3ea134a7d89a0176098df91dc3523e964



- 아감벤은 여우 아저씨에게서 한 가지 착상을 얻고, 이후 자신의 주저 호모 사케르에서 벌거벗은 동물이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 ‘벌거벗은 동물이란 자신의 방식대로 살 수 있는 권리(bios)는 박탈당한 채로, 오로지 인구(zoe)로서 관리당하는 동물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동물들은 철저히 인간에게 관리당할 때에만 사회에 살아가도록 허락된다. 반려견과 반려묘는 죽일 수 없지만, 길고양이와 들개는 죽여도 괜찮은 것처럼.


- 생존권을 박탈당한 여우 아저씨는 마침내 서점을 털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여우의 몸으론 도둑질조차 쉽지 않다. 여우 아저씨가 감옥에 수감되며 이야기는 두 번째 국면을 맞이한다.


- 교도소에선 여우에게 책을 주지 않고, 여우는 직접 글을 써 연명해야만 한다. 이렇게 완성된 원고를, 교도관 빛나리는 눈여겨 본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0fa11d0283158b348b399fe02a3086d6925b7ee217850063d67b9b8a8c50b3c6051cc21ec2fb488c3ea134a7ddef2416dc9d6968835f8ff33


- 교도관 빛나리는 여우의 작품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처음엔 살벌하던 교도관의 시선도 변한다. 여우는 더 이상 죄수가 아니라 황금 알을 낳는 거위고, 재주를 넘는 곰이다.


- 위 장면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마치 원고를 돈 넘기듯 넘기는 모습. 빛나리는 원고 수익을 바탕으로 1) 사법 기관을 매수해 여우를 출감시키고 2) 출판사를 차려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다.


- 그러나 이 시점까지 여우는 자신이 만든 원고 외에 다른 책을 먹도록 허락받지 못한다. 여우 아저씨는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으로써만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여우가 개인 사유물인 책을 멋대로 먹었다는 가벼운 도덕률의 위반은 이제 무시된다. 여우가 돈이 되니까. 이처럼 절대적 윤리를 부정하고 이익과 권력에 기반한 정치를 브루노 라투르는 권력(상익) 정치라 칭한다.


- 여기까지 잘 따라온 독자라면, 비어만이 책 먹는 여우를 통해 이 시대 정치를 풍자하고 있음을 명백히 깨달았을 것이다. 이 시대 정치는 도덕주의권력 주의 두 가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가 자기가 맞다고 말하거나, 자기의 이권을 챙기는 두 가지 뿐이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0fa11d0283158b348b399fe02a3086d6925b7ee217850063d67b9b8a8c50b3c6051cc21ec2fb488c3ea134a7dd0f5176bca8ac48e35f92ba5

자본주의에 찌든 여우


- 방법이 없을까? 우리 미래는 어둡기만 한가? 이 시점에서 우린 소설의 말미를 유심히 읽어야한다.


- “다만, 왜 여우 아저씨의 모든 소설엔 언제나 소금 한 봉지와 후추 한 봉지가 들어있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답니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0fa11d0283158b348b399fe02a3086d6925b7ee217850063d67b9b8a8c50b3c6051cc21ec2fb488c3ea134a7ddff74469cf8b9cda35b02dc2


- 흔히 이 문장을 여우 자신이 책을 먹기 때문이라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결말부 여우 아저씨는 무지막지한 부자에 자기 책을 많이 가지고 있다. 소금이나 후추가 필요하다면 책에 붙여둘 필요 없이, 곧바로 취향껏 뿌려먹으면 그만이다.


- 그렇다고 책을 먹는 다른 여우를 향한 배려라 읽는 것은 거친 오독이다. 책 속에 다른 여우는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선 다른 어떤 동물도 상정하지 않는다.


- 대신 나는 조금 다르게 해석해보고 싶다.


- 프란체스카 바우만은 작품 마지막에 커다란 반전을 준비해두었다. 어쩌면 여지껏 우리가 피해자라 믿어왔던 여우도 한편으론 가해자가 아니었을까?


- 이전까지의 여우 아저씨에게 책은 단순히 음식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여우는 자신을 수단으로 취급하는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 이르러 여우 자신이 직접 책을 쓰면서 이 관계는 변화한다.


- 아래 장면에서 여우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라. 자신에게 먹히는 페이지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이 묻어나는 표정.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0fa11d0283158b348b399fe02a3086d6925b7ee217850063d67b9b8a8c50b3c6051cc21ec2fb488c3ea134a7dd8f61661cedb928e35714dd2


-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 주위에 흩뿌려진 소금과 후추. 종이와 의자를 봐야한다. 책과 소금, 후추가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봐야한다. 무기물이 가지는 권리와 존재 가치를 읽어야만 한다.


- 프랜치스카 비어만이 치열한 고민 끝에 도달한 그곳은 케케묵은 도덕주의가 아니다. 모든 것이 권력의 하부 구조라는 허무주의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객체를 존중하겠다는 거대하고 안락한 자세이다.


- 여우 아저씨의 성장속에서 우린 이 시대의 성장을 봐야 한다. 우린 지금 사람이 밥을 먹는 시대에서 여우가 책을 먹는 시대로 왔다. 그것이 이권 때문이든 가벼운 윤리 의식 때문이든 여우가 책을 먹어선 안된다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는시민들이 여우가 끼치는 손해의 도덕과 이권을 얘기한다.



  - 여우가 책을 먹는 시대에서 여우가 책을 쓰는 시대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 뭐가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은 피가 끓는 어린 시절에나 가능한 것이다. 뭐가 이득이 되는지를 따지는 것은 안이고 밖이고 수염이 거뭇하게 변해 제 몫만 챙기는 장년층이나 하는 짓이다. 그 모두를 잠시 접어두고 모든 ‘사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이 시대에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