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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별 생각 없이 검색했던 책이 도서관에서 10건 이상의 예약이 걸려 있었다. 독서의 세계도 결국은 맛집 탐방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지 나도 모르게 예약을 걸어두고 한참을 잊어버렸다가 이제야 겨우 차례가 왔다. 그리고 읽어보니 확실히 왜 인기가 있었는지 알 수 있을 법한 책이었다. 다루는 주제에 비해 약간은 현학적인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그러니까, 빈곤이 어떤 식으로 새롭게 사회적으로 규정되었는지를 다루기 위해 푸코를 이야기하는 건 당연하지만, 굳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네그리의 다중 개념과 이것이 선험적으로 스스로를 빈곤하다고 느끼고 있는 이들이 도달해야 할 무엇을 선취한다는 이야기가 이 주제에서 꼭 필요했을 것 같지는 않다-상당히 흥미롭고도 다양한 인류학적 기록들이 가득한 책이다.



<빈곤 과정>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어떤 '빈곤한 자들'이라는 묶임이 어떻게 '생겨난'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우리의 사고를 유인하는지를 분석하는 책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구절처럼, 사실 누군가의 가난은 부자들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출신 배경과 삶의 궤적, 문화적 다양성 등을 품고 있다.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다양한 언어로 된 고함 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을 각각의 출신지나 문화 및 여러 사정에 맞게 전혀 다른 사람들로 고려할 때에는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이들을 적당히 사회의 변두리, '빈곤층'으로 묶어버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이들을 위해 빈곤층 지원금을 주기만 하면 되니까.



현대 유럽의 복지 국가 개념이 어떻게 이러한 빈곤층의 구획과 포획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비판하며, 저자는 빈곤이라는 참 쓰기 편한 개념이 어떻게 한 사람의 상태가 아닌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집단으로서 남용되는 상황이 '빈곤'으로 묶이는 이들을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는지를 실제 사례들을 통해 분석한다. (흥미롭게도 이 비판이 위시하는 '현대 유럽이 묵살시킨 다른 방법'은 자본주의적 사회에 대한 총체적 거부 및 혁명적 요구인듯 한데, 문득 사민주의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평가를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해지는 구석이 있다) 한국의 기초생활수급자, 중국의 땅을 뺏기고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 등의 사례에서 어떻게 이들이 스스로가 빈곤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이전까지는 없었던 태도를 체화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상을 유지하도록 만드는지 등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타자로서의 빈곤이 어떻게 현대 한국에서 활용되는지에 대한 사례도 흥미롭다. 지나친 경쟁이 요구되는 취업 시장에서 한 줄의 스펙을 위해 사용되는 빈곤 해결을 위한 봉사는, 당연하게도 실제로 '빈곤'이라는 말이 지칭하는 대상에게서 참여자들의 눈을 완전히 돌리고, 이 봉사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득을 보는 것이라곤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 고취 정도인 무의미한 시간 보내기 속에서, 어쨌든 무엇인가를 얻었다는 뭔가 얼떨떨한 기분과 함께 마저 등떠밀려 사회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이렇게 빈곤이 대상 없는 추상적인 개념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며, 빈곤이라는 말은 그 말이 원래 지칭했던 절대적인 개념이 아닌 누군가와 비교해 사용하는 상대적인 개념이 된다. 모두가 자신이 빈곤하다고 진심으로 느끼며 사는, 통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두가 느끼는 무언가는 분명히 어떤 문제일 것이지만,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빈곤이라는 말까지 소환되는 것은 다소 거창하다.



솔직히 말하면 <빈곤>에서의 내용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빈곤>은 결국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지점에서까지 이 개념에 이끌린 유인을 이야기하고, 이미 빈곤의 무리짓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되는 현대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DFW의 말을 빌리자면) "물고기는 물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에 인류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이 '빈곤'은 너무나 확장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헬조선" 담론이 그러하듯 '빈곤'이라는 말을 남용하는 꼴이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런 불만과는 별개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던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우리의 번영이 드리우고 있는 그림자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테다. 그것이 과연 번영으로 인한 것인지, 번영과는 부수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입장이 갈리겠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