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카프카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위의 시리즈 글에서 썼던 것처럼 카프카는 클라이스트의 직접적이고 심오한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카프카 문체에 있어서 문장 구조, 리듬감은 그의 문학적 표현의 본질에 속한다.
(클라이스트 문체의 극단적인 실험성이 카프카에 의해 보편적으로 표준화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매우 영리한 문학적 선택.)
그런데 "요즘 번역"의 문체가 그 복잡성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한 듯싶다.
요즘 문학 편집자들의 교범만 해도 문장을 원문 충실, 표현 충실이 아니라, 가급적 읽기 쉽게 쪼개고 단순화하는 쪽으로 이미 많이 쏠려 있는 편인 듯한데,
그럼 독자들 사이에서 자주 추천되는 문학동네판 <소송>의 문체적 스타일은 어떤가?
내 생각에는 문학동네판 <소송>은 문장을 읽기 쉽게 단순화하는 요즘 번역 문체의 스타일을 상당히 뚜렷이 보여주는 한 예시로 읽힌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소송> 도입부 중의
K. wartete noch ein Weilchen, sah von seinem Kopfkissen aus die alte Frau, die ihm gegenüber wohnte und die ihn mit einer an ihr ganz ungewöhnlichen Neugierde beobachtete, dann aber, gleichzeitig befremdet und hungrig, läutete er.
필자가 독일어를 해독하지 못하므로 deepl역을 보자면,
K.는 베개 위에서 맞은편에 사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한참을 더 기다렸고, 할머니는 그에게서 아주 특이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지켜 보았지만 동시에 소외감과 배고픔을 느낀 그는 벨을 눌렀습니다.
이 구절을 솔판과 문학동네판은 각각 이렇게 옮기고 있다.
카는 잠시 더 기다리다가 베개를 베고 누운 채 전에 없던 호기심으로 자기를 살펴보고 있는 건너편 집의 노파를 바라보고는 언짢기도 하고 배가 고프기도 해서 벨을 울렸다.(솔)
K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베개를 베고 누운 채 고개를 돌려 길 건너편에 사는 노파를 바라보았다. 노파는 평소와는 매우 다른 호기심을 보이며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기분이 언짢기도 하고 배가 고프기도 해서 벨을 눌렀다.(문학동네)
문장 구조만 보면 문학동네판이 한 문장을 3개로 쪼개 놓았고, 표현과 억양에 다소 부연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므로 솔판이 보다 원문에 충실하며 압축적인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은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장난을 이해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후에 남들이 말할 위험이 어느 정도 있긴 했지만 -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는 것이 그의 습성은 아니었지만 - 그는 예전에 대수롭지 않은 몇 가지 일에서 자기가 친구들과는 다르게 혹시 있을지 모르는 결과에 대해서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고 의도적으로 경솔하게 행동하다가 바로 그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렀던 일을 회상해보았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이번만은 없어야 한다. 이것이 희극이라면 그는 함께 연기할 생각이었다.(솔)
혹시 나중에, 장난에 장단도 못 맞추느냐는 핀잔을 듣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 그는 경험에서 뭔가를 배우는 쪽은 아니면서도 - 지각 있는 친구들과는 달리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했다가 곤욕을 치렀던 몇 가지 일이 떠올랐다. 물론 그 자체로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곤란하다. 이번에는 절대로 안 된다. 지금 벌어지는 것이 희극이라면 함께 연기해주리라고 그는 마음먹었다(문학동네)
이 구절에서도 문학동네판의 문장은 쪼개져 있는 듯하고, 억양이 단조로워졌으며 디테일이 약간 생략되고 단순화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단순화는 '요즘 번역'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이며 광범위한 경향인데, 여기서 한국어 결정판을 의도한 솔판과 요즘 번역인 문학동네판의 방향성 차이는 두드러진다고 생각된다.
솔판 <소송>의 역자인 이주동 선생님의 문장력 자체가 상당히 뛰어난 편이며(대체 불가능한 경지에 이른 느낌은 아니지만),
이분은 870페이지짜리 카프카 평전을 집필했을 정도로 카프카를 깊이 판 분이기 때문에 더욱 믿음직한 번역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오랜 논쟁 거리인, 카프카 단편들의 번역은 어떤가?
현대문학판, 범우사판과 비교할 때 이주동역 솔판 카프카 단편 전집이 갖는 우위는, 문체의 세련미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점에 있다.
이주동역 카프카의 세련미는 낡지 않는 개성적 특성이다.
그럼에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솔판이 절대적 1픽은 아닌데, 세부적인 디테일 면에서는 가장 나중에 나온 현대문학판이 약간 나은 면이 있다고 느꼈고, 범우사판은 전통적으로 신뢰받아 온 판본이므로, 언젠가 원문 해독 가능한 사람이 세 버전의 상세한 비교를 해주면 좋겠다.
결과적으로 문학동네판 <소송>은 현대문학판, 범우사판, 솔판 카프카와는 다소 다른 지향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가 독일어를 못 하는 필자의 카프카 번역 비교의 한계다.......
누군가 카프카 전문가가 비교를 도와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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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한 마리만 그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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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판이 좋은데?
"당신은 자기 처지에 순응할 줄 모르는군. 지금 다른 누구보다도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들을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들생각인 모양이지."(솔) "당신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줄을 모르는군. 지금 누구보다도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우리를 쓸데없이 화나게 할 작정이군요."(문동) "당신은 자기 처지에 순응할 줄 모르고 지금 다른 누구보다도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있는 우리를 쓸데없이 자극해 공연한 일을 만들고 싶은 모양인데!"(을유) "아니,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다니! 자신의 처지에 순응할 줄 알아야지! 지금 그 누구보다도 당신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우리를 쓸데없이 자극할 셈이오!" (펭귄)
솔은 K를 카라고 번역한게 약간 맘에 안들긴함 ㅋㅋ
발음상 카가 맞긴 하지만 확실히 간지는 없군요
저는 그것도 나름 좋은 듯
선생님 제임스초이스 달아주세요... - dc App
제가 독일어를 못 해서 카프카 번역 비교글에 닉을 달기는 부끄럽네요 ㅠㅠ
독린이 시절 카프카 단편을 김태환 역으로 읽고 번역의 리듬이 좋다고 느꼈었는데(다른 판본과 비교해서 읽어보진 않았지만), 간만에 다시 읽어보면 어떨지 궁금하네. 솔판 등과 비교도 해보고 싶고. 언제 나올진 미지수지만 대산세계문학총서에서 <소송>이 김태환 역으로 예정이 되어 있는데 나름 기대하고 있음.(다른 대산세계문학총서처럼 번역 원고를 심사해서 통과된 게 아니라 대산 측에서 번역을 의뢰한 특이한 케이스) <성>도 나름의 추천 번역본이 있음?
김태환역도 리듬이 아주 좋은 것 같은데, 단편집 분량이 얇아서 결정적인 한 권을 추천할 때는 빠지게 되는 듯. 나도 김태환역 소송 무척 기대되는 걸.... 성은 잘 모르겠네.
문동이 나은데?
산문체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솔판이 대화체가 훨씬 능숙함.
난 문동 번역이 거의 좋더라 너무 안은 문장 나열하는 글보다 어느정도 끊어주는 문장을 좋아함
그게 힙한 취향이기도 한 듯. 내 첫사랑도 그런 문장을 좋아했지....
ㄴ나두 옛날엔 그런류의 글을 좀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그시절엔 그게 먹히는 글이었으니까) 요즘에 그런 문장이 보면 글을 못쓴다는 생각이 듦.. 허지웅씨도 예전에 그런 문체 구사하다가 욕 많이 드시고 바뀌신듯,,(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다양함에 대해 이해를 넓혀가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저열함에 대해 같은 '다양성'의 기준을 주장해도 된다고 착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트위터 발췌) 2000년대 후반부터 일본소설 문체가 인기 타고 그러면서 그런 문체가 거의 사장되고 있었는데 허지웅씨가 공공연하게 막차 탄 감이..
ㄴㄴ쓰고보니까 너무 좀 까는 글처럼 되어버린듯,, 반성하고..난 그냥 시대적 흐름 속에서 내 편한 방식으로 편승해 버린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함. 독갤도 아마 전자같은 부분이 더 시적으로 표현될 여지가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지도?! 페소아 책도 난 문학동네가 좋지만 배수아님이 번역하신 책 좋아하는 독갤러가 많으니까.
다양한 취향이 있는 거겠지.....핵심은 본질을 포착하는 거라고 생각함. 스타일은 하나의 길과 같은 것인 듯....
어느 길로 가든지 핵심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일일 듯...
문동은 카프카의 날개를 다 잘라놨네
알아먹기 편하면 되지.. 별차이도 없구만 문동이 훨씬 유려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