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번역의 뉘앙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정비석의 <소설 김삿갓>과 이문열의 <시인>의 대조적인 한시 번역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시인 김병연은 백일장에서 자신의 할아버지 김익순을 디스하는 역대급 탈룰라를 시전한 뒤 그 길로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게 되는데, 두 소설의 설정이 정반대인 탓에 이때 김병연이 썼다고 하는 시도 두 작가의 번역이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연배가 거의 40세 가깝게 차이 나는 이 두 작가의 작품이 다소 엇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소설 김삿갓>은 80년대 후반 정비석이 70대의 나이에 한국경제신문에 연재한 소설이다. 당시 정비석은 대중소설 작가로서의 폼이 아직도 떨어지질 않아서, 한국경제신문에 <소설 손자병법>을 완결하자마자 같은 신문에 또 <소설 초한지>를 연재하고, 이 작품을 완결하자마자 또 다시 같은 신문에 <소설 김삿갓>을 연재하는 희한한 기록을 남겼다.


전형적인 대중소설답게 <소설 김삿갓>은 작품성이야 없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고, 정확하진 않지만 홍서범이 '김삿갓'을 만드는 데에도 영감을 준 걸로 알고 있다. '1807년 개화기에 태어나'로 시작하는 이 곡의 첫 가사는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 1807년이 무슨 개화기임


한편 이문열의 <시인>은 1990년 세계의문학에 전재된 뒤 외전 격인 단편 <시인과 도둑>과 <시인의 사랑>을 덧붙임으로써 완결되었다. 이 중 <시인과 도둑>이 1992년에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시인>도 함께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아마 현대문학상 수상작 가운데 장편은 이 작품이 마지막일 것이다.




<소설 김삿갓>과 <시인>의 결정적인 차이는 김삿갓 설화의 내용을 따라가느냐 거스르느냐에 있다. <소설 김삿갓>은 김병연이 김익순이 자기 할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신나게 디스를 했다가 그날 밤 진실을 알게 된 뒤 극도의 충격에 빠졌다는 설화의 내용을 충실히 따른다. 반면 <시인>에서는 이 내용 자체를 부정하여 김병연이 이미 가문의 내력을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자신의 할아버지를 규탄하는 시를 써내려갔다는 식으로 이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소설 김삿갓>에서 백일장 장면이 그저 바로 뒤에 나올 누구나 아는 반전을 위해 마련된 반쯤은 코믹한 장면인 반면, <시인>에서 그것은 효와 충이, 감정과 이성이, 낙인찍힌 자의 후손과 그의 유년기를 결딴낸 체제 이데올로기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매우 심각한 장면이 된다. 정비석은 극도로 전형적으로, 이문열은 반대로 극도로 역설적으로 이 장면을 취급하고 있다. 이를 유념하면서 두 작가의 번역을 대조해 보기로 하자.


우선 김병연의 앞에는 다음과 같은 시제가 제시된다. 홍경래의 난 때 반군을 진압하던 중 목숨을 잃은 가산 군수 정시를 찬양하고, 반대로 반군에 항복한 선천 방어사 김익순을 비난하라는 것이다.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 보라. (鄭)


가산 군수 정시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우러러 말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름을 굽어 한탄하라. (李)


그러나 그것을 마주한 김병연의 심리 상태는 두 작품에서 딴판으로 제시되고 있다. <소설 김삿갓>에서 김병연은 자기 할아버지인 줄도 모르는 김익순을 향해 맹렬한 적의에 타오른다.


김병연은 그 시제를 보는 순간, 형용하기 어려운 충격심이 솟구쳐 올랐다. 왜냐하면 김병연은 평소부터 반란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가산 군수 정시를 천고에 빛나는 충신이라고 존경해 왔던 반면에, 반란군과 싸우지도 아니하고 항복해 버린 선천 방어사 김익순을 백 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고 몹시 경멸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비겁하고도 용렬하기 짝이 없는 김익순이란 놈을 백일장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마침 잘 만났다. 오늘은 나의 필봉을 마음껏 휘둘러, 비겁하기 짝없는 네놈을 뼈도 못 추리게 탄핵하리라.'

하고 소리 내어 중얼거리며, 붓을 들기가 무섭게 다음과 같이 허두를 적기 시작하였다. (鄭)


뒤에서도 보겠지만 <소설 김삿갓>에서 김병연은 시제를 보자마자 붓을 휘둘러 제일 먼저 답안지를 내놓고 유유히 시험장을 나간다. <시인>에서는 정반대다. 여기에서 김병연은 한없이 고민한 끝에 시험장을 나가려다가, 오히려 반골의 열정이 솟아올라 끝내는 할아버지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 사이에 그는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는 어머니와 아내를 떠올리고, 자신과는 반대로 글쓰기에 대한 미련을 진작에 놓아버린 형을 떠올린다. 또한 이성의 논리를 앞세워 할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비난을 합리화한다.


동헌 벽 높이 걸린 그 시제를 본 뒤부터 이윽고 붓을 들어 써나갈 때까지 한나절, 그가 치러야 했던 것은 그 뒤 일생에 걸쳐 겪어야 했던 고뇌와 갈등의 축약에 다름아니었다. 그때 그의 가슴속에서 벼락치듯 충돌하고 있던 것은 일생 거기에 충실하며 살리라고 다짐했던 이념의 두 기둥 충과 효였으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분상승 의지 또는 회귀본능과 그 때문에 역시 본능의 수준까지 끌어올려져 있던 윤리의식이었다.


처음 할아버지의 이름을 알아본 순간 그는 혼절과도 같은 의식의 마비를 경험했다. 비록 시골 백일장의 시제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거기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세월이 지나도 거두어질 줄 모르는 체제의 악의였고, 자신의 재편입을 거부하는 신분의 높디높은 담이었다. 앞으로 치르게 될 소과 대과에서 또 그 같은 악의, 그 같은 담과 만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구나, 어쩌면 나의 날은 일생 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중략)


생각의 방향이 바뀌자 그의 머리는 거기 맞춰 다시 눈부신 작동을 계속했다. 남다른 기억력은 축적된 그 방면의 지식 중에서 그릴 때 유리한 것들만을 골라냈고, 기억력에 뒤질 것 없는 언어력은 그 지식들을 논리적으로 조직해 나갔다. 오래잖아 그곳을 떠나서는 안 될 더 많은 이유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차츰 남아 있을 권리로 자라, 마침내는 그때껏 그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던 일반의 통념까지도 압도해 버렸다.

나는 쓰겠다. 우리 시대 지상의 규범 중의 하나인 효도의 대상, 내 할아버지 김익순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전 세대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다음 세대의 권리를 행사하겠다. 그 지워지지 않는 행적과 시비를 향해 객관의 붓을 들겠다--이윽고 그렇게 마음을 정한 그는 가만히 시상을 가다듬으며 먹을 갈았다.

체제 이데올로기에 충실했던 그의 배움은 어렵잖게 첫 번째 연을 열 수 있게 해주었다. (李)




曰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將軍桃李陵西落

烈士功名圖末高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涘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신하라고 불려 오던 너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적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이릉 같은 놈이요

정시의 공명은 송나라의 악비처럼 길이 빛나리로다.


시인은 이런 일에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칼을 어루만지며 물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자고로 대장이 지켜 오는 큰 고을이기에

가산보다도 의를 앞서 가며 지켜야 할 곳이 아니었더냐. (鄭)


김익순, 당신은 대대로 내려오는 큰 신하였고

정공은 하찮은 벼슬아치에 지나지 않았소.

그런데 당신은 오랑캐에게 항복한 이릉 꼴이 나고,

정공은 악비같이 열사의 이름을 얻었구려.


시인은 강개를 억누를 길 없어

가을 물가에서 칼을 어루만지며 비분의 노래를 부른다오.

당신이 맡았던 선천은 옛부터 장수를 보내 지키던 큰 고을.

가산보다 앞서 의로 지켜야 할 곳이 아니었소. (李)




김병연은 여기서 잠시 뜸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가, (…) 가산군수 정시가 반란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고 머리를 새삼스러이 수그렸다. 그리하여 그의 충절을 찬양하는 데 온갖 힘을 죄다 기울였다. (鄭)


그는 거기까지 써놓고 대비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다시 정시를 홀로 추켜세웠다. (李)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嘉陵老吏揭名旌

生色秋天白日下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주나라를 존중하려고 충신 노중련이 나왔고,

한나라를 돕기 위해서는 제갈양이 나왔듯이

우리나라에도 만고의 충신 정가산이 나와

풍진을 맨손으로 막아 내려다 죽지 않았더냐.


전사한 충신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 갈 것이니

그 이름은 가을 하늘에 태양처럼 빛날 것이요,

혼백은 남묘로 돌아가 악비와 같이 살게 될 것이고

뼈는 서산에 묻혀 백이 숙제와 이웃하게 될 것이로다. (鄭)


주나라를 받든 건 노중련뿐이 아니었고

한나라를 돕기 위해서는 제갈량도 많았소.

우리도 충신 정시가 있어

큰바람 손바닥으로 막으려다 절의에 죽었구료. (李)


가산의 늙은 충신 드높여진 이름,

가을 하늘 밝은 해 아래 길이 빛날 게요.

그 넋은 남묘로 돌아가 악비와 짝할 게고,

뼈는 서산으로 가 백이숙제 곁에 눕겠지요. (李)


그러나 충절을 찬양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백 년 앞날을 위해서는 김익순 같은 역적들을 철저하게 탄핵하는 것이 더욱 긴요한 일일 것 같았다. 이에 김병연은, 김익순의 죄상을 성토하기 위해 붓을 새롭게 가다듬는다. (鄭)


이어 그는 이를 악물듯 그 할아버지 김익순에게로 필봉을 들이댔다. (李)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祿客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서북으로부터 개탄할 소식이 들려 오기에

어느 가문에서 나온 벼슬아치냐고 물어 보았더니

문벌은 명성이 드높은 장동 김씨요

항렬은 장안에서 소문난 순 자 돌림이 아니더냐.


가문이 훌륭하여 성은도 두터웠을 것이니

백만 대적 앞에서도 의를 굽히지 않았어야 할 것을

청천강물에 고이 씻긴 병마는 어디다 두고

철옹산에 간직했던 궁시는 어떻게 했단 말이냐. (鄭)


그해 서북에서 오는 소식들 하도 개탄스러워

어느 집안에서 나온 벼슬아치냐 모다 물었소.

이르기를 그 집안은 위세 좋은 장동 김씨요,

이름은 장안이 다 아는 순 자 돌림이라더구료.


가문 그러하니 임금의 은혜 또한 무거웠을 터,

백만의 적이 와도 의를 굽혀선 아니 되잖소.

이끌던 병마는 청천강물이 씻어가기라도 한 거요.

굳은 성의 강한 활은 모두 어디 걸어두셨더랬소. (李)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域凶賊股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임금님 앞에 꿇어 엎드리던 바로 그 무릎으로

서북 흉적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으니

너는 죽어 황천에도 못 갈 놈이라

저승에는 선대왕이 계실 것이니 말이다. (鄭)


궁궐을 드나들던 바로 그 무릎,

서북으로 돌아앉아 역적에 꿇었구료.

넋인들 황천으로 드실 수 있겠소.

그곳에는 먼저 가신 임금님들이 계실 터이니. (李)


실로 통렬하고도 신랄한 규탄이었다. 만약 지하에 있는 김익순이 그 소리를 들었다면 그는 얼굴을 들지 못했으리라.

김병연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지막 결구를 이렇게 맺었다. (鄭)


쓰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그 눈물이 의분의 눈물이라고 스스로 믿었다. 그러나 그의 정서 밑바닥에 깔린 것은 그런 할아버지의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과 부모형제가 겪어야 했던 참담한 날들의 추억이었고, 그 모든 것의 원인 된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정서였다. 그가 의분의 근거로 삼고 있는 체제 이데올로기야말로 오히려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정당화시키는 한낱 구실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가만히 눈물을 털어내고 결구를 맺어 나갔다. 그 사이 한결 음험해진 원한은 자신의 몸을 도는 핏줄기의 본능적인 거부를 억누르고 그 마지막 불꽃을 드러냈다. 할아버지 김익순의 넋에 심장이 있다면 그 심장 한가운데를 향해 내지르는 칼날 같은 구절이었다. (李)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 번 죽어서는 너무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다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치욕적인 이 사실은 역사에 남겨 길이 전해야 하리라. (鄭)


당신은 임금을 저버렸고 부모도 잊은 사람.

한번 죽어 가볍소. 만번 죽어야 마땅하오.

춘추의 필법이 어떤지는 알겠지요.

욕된 그 일, 이 땅 역사에 길이 남아 전해질 거외다. (李)




<소설 김삿갓>에서 시간을 한참 남기고 시를 완성한 김병연은 가뿐하게 시험장을 빠져나와 주막에서 주모와 한바탕 수다나 떨다가 결과 발표 소식을 듣는다. 바로 그날 밤에 자기 가문의 기막힌 내력을 듣게 된다는 운명도 모른 채. 반면 <시인>에서 김병연은 오랜 고민 끝에 시를 완성한 뒤 허한 기분으로 결과를 기다리다가 저녁이 돼서야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마지막 구절을 끝내고 얼굴을 들자, 김병연은 오랫동안 가슴에 뭉쳐 있던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 버린 듯 통쾌한 기분이었다.

'20년 가까이 배워 온 글을 오늘에야 한번 제대로 써먹었구나.'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응시자들은 글을 짓기에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김병연은 그 이상 눌러 앉아 있을 필요가 없기에, 손을 번쩍 들며 시관에게 고한다.

"시관 어른! 소생은 글을 이미 끝냈는데, 지금 바쳐도 괜찮겠습니까?" (중략)


동헌 바람벽에는 백일장에 급제한 사람들의 명단이 열기명식으로 좍 나붙어 있었다. 그러나 김병연의 이름만은 특별히 큰 글씨로, '壯元及第 金炳淵'이라고 별도로 나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김병연은 방문(榜文)을 보고 새삼스러이 기뻤다.

'아아, 장원 급제가 되었으니 나도 이제는 어머니께 효도를 하게 된 셈이로구나!'

장원 급제라는 그 일 자체보다도,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우리들 삼형제를 혼자 길러 내시느라고 무지무지하게 고생을 해오신 우리 어머니. 살아갈 길을 찾기 위해 삼 년이 멀다하게 이 지방 저 지방으로 집을 옮겨 다니신 우리 어머니. 밥을 굶어 가면서도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망므에서 매질을 해가며 글공부를 독려해 주시던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백일장에 장원 급제한 것을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 일을 생각하자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빨리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이 기쁨을 알려 드려야지.' (鄭)


그날 시관에게 그 시를 바치고 동헌을 떠날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옳음을 굳게 믿었다. 주막에서 결과를 기다리며 술잔을 기울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패륜을 저지른 두려움이나 죄의식은커녕 승전의 소식을 기다리는 장수처럼 설렘까지 느끼며 자신의 시구를 머릿속에서 더듬었다. (중략)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막상 자신이 장원으로 급제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온 감정의 급전이었다. 그날 저물 무렵해서야 동헌으로 가던 그는 급한 마음에 먼저 방문(榜文)을 보고 돌아오던 사람에게 장원부터 물었다. 그 사람은 대뜸 그의 이름을 대주고는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덧붙였다.

"정말 잘 쓴 공령시더구만. 칼이 아무리 잘 들어도 죽은 사람은 또 못 죽이는 법이지. 하지만--그 자손이 있다면 얼마나 가슴 아플꼬…"


은근히 가슴 설레며 바라던 장원이었건만 그 순간 기쁨보다는 알지 못할 전율이 먼저 그를 스쳐간 건 또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이 한나절에 걸쳐 여며진, 단단하기 그지없던 자기 합리화의 무장을 그토록 쉽게 뚫고 여린 시인의 감수성에 아프게 와 박힌 것일까. (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