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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벌>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이다.

개인적으로 노문학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이어 두번째로 완독한 책인데 <안나 카레니나>는 부유한 귀족들의 이야기라면 <죄와벌>은 처절하게 궁핍하고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굉장히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넘치는데 특히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심리묘사와 행동은 굉장히 입체적이고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고조 시킨다.

내용이 결코 적지 않은 두꺼운 책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문체는 가히 정점에 이른 필력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묘사는 정말 악마의 재능이라 불릴 정도로 사람을 순식간에 책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는 장면과 살해 후에 라스콜니코프의 내적 갈등의 묘사는 정말 작가 본인이 실제로 살인을 해본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암울하고 디테일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알고 있는 죄의 정의와 인간의 도덕, 심판과 구원등에 대해서 재정립 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악덕 전당포 주인인 노파를 살해하고 본의 아니게 살인을 목격한 그의 여동생까지 살해한다.
라스콜니코프는 이런 <이(해충>와 같이 사회에 해만 끼치고 악행을 일삼는 노파를 죽이는 것이 정의고 <비범한> 사람인 자신이 거쳐가야 할 과정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비범한>사람이란 그가 쓴 논문에서 나오는데 “나폴레옹” 같이 선택받은 자들은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악행” 일지라도 경우에 따라 필요하고 필수적인 일이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자행할 수 있고  죄가 되지 않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하지만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하고 나서 <비범한> 사람들과 달리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자기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됨과 동시에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인지부조화 상태가 지속되고 번민한다.

후반부에 소냐의 권유를 통해 자수를 하고 나서도 자기가 살인을 하것 자체가 죄가 아니라 살인을 한 후에 밀려온 죄책감과 스트레스가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심판사 포르피리와 소냐의 생각은 다르다.
살인 자체가 죄라고 생각하며 인간은 <이(해충)>가 아니며 어떤 경우라도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수 후에 교도소에서 수감하고 있을 때도 자신의 살인에 대한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꿈을 꾸게 되었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지신만의 생각만이 옳고 나머지는 전부 틀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전염병에 걸리게 되는 것인데 그 결과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자기가 한 일이 얼마나 어리석고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닫게 된 라스콜니코프는 뉘우치고 소냐와 더불어 구원을 얻게 된다.

죄는 각자 생각하는대로 정의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죄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죄로 인정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에덴에서 인간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부터 인간은 죄를 짓게 된 것이고 스스로 벗은 몸을 부끄러워 하고 신을 두려워 하게 된것이 인간의 죄의식이다.
신은 인간이 양심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게되면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의하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다.
인간이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쫒겨나 생존을 위해 일을 하고 출산의 고통을 벌로 받았다.
그때부터 인간은 죄로 부터 언제나 시험을 받았고 죄에 따른 벌을 받았다. 그것이 신이 정한 세상의 이치이다.

극중에서 죄를 지은 등장인물들은 각자 저마다 벌을 받았다.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니코프는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았던 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는 마차에 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처지에 비관하며 허영과 악독함만이 남은 카테리나는 결국 미쳐버린 후 죽었고
거짓으로 소냐를 모함하고 자신의 이득을 꾀했던 루진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망신을 당했고
아내를 배신하고 자신의 쾌락만을 쫒았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작품속 매춘부 소냐는 구원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비록 천한 신분과 불행과 밀접한 소냐는 아이러니 하게도 모든 수감자들의 성녀로서의 역할을 하며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실질적 구원자이다.
비록 매춘부이지만 작중 유일하게 신앙을 가지고 선한 마음을 지켜나간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태복음 21:31-32).

마태복음 21장에 있는 말씀에 예수님은 모든 율법은 물론 자신들이 여기는 선하고 거룩한 행동들을 완벽히 행하는 바리새인들 보다 당시에 죄인의 대표라고 볼 수 있는 창녀와 세리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작품속 가장 밑바닥 비천한 신분인 소냐이지만 가장 이상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 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라스콜니코프 또한 소냐와 같은 처지에서는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완전 타락하거나 세 가지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라스콜리코프는 소냐로부터 구원을 얻는다.

도스토옙스키는 성경속 창녀를 그의 작품에 그대로 투영하여 표현해낸것이 소냐가 아니었을까 생각이든다.
작가는 소냐를 통해 자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선한 양심을 통해 영혼의 구원과 회복을 이룰 수 있다는 메세지를 주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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