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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아라발 전집 제7권 <도스토예브스키란 이름의 거북이>에 수록되어 있는 2막짜리 짧은 희곡이다. 아라발의 초기 희곡 중에서도 평가가 괜찮은 편인 것 같고, 한국에서도 나름 인기가 있었는지 인터넷에 대본이 돌아다니고 있다. 내가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파일을 보면 77년도에 처음 공연했던 대본이라는 거 같던데, 이 대본이 내가 지금 가진 전집이랑 번역이 별 차이가 없다. 아니 이게 대체? 이 전집의 번역 퀄리티에 굉장히 큰 의심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묘지는 선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세상에게 배신당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선량함을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이다. 주인공 엠마뉴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비정한 세상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조차도 불법으로 금지하기 때문에 그는 항상 쫓기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 일을 포기하고 남들처럼 악행을 저지르고 살면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선량함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계속해서 선행을 배풀고 경찰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결국 동료에게 배신당해 경찰에 붙잡히고 사형에 처해지고 만다. 하지만 형틀에 묶여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선을 추구하는 자신의 신념을 되뇌인다...


역시나 부조리극답게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지만 과장스런 동작과 바보같은 대화, 그리고 다소 불쾌한 장면들이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엠마뉴를 마치 세속화된 시대의 예수에 비유하는 듯한 대사들이나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장치들도 곳곳에서 보이는 편이라 꽤나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비정한 세계와 선량한 엠마누를 대조하는 연출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그 장면을 조금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그 장면이라하면, 엠마누와 그의 여자친구 딜라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말하는데, 두 사람의 사랑이 마치 극 중 극과 같은 형태로 취급되고, 주변의 걸인들이 극중극을 훔쳐 보며 조롱하는 것처럼 연출 되는 점이 인상 깊다. 냉혹한 세상 속의 순수한 사랑은 자칫 잘못하면 바보 같고 순진하게 보일 수 있다. 이들의 사랑 역시 부조리극스러운 코메디로 보일 수 있었다. 엠마누는 경찰에게서 도주하는 신세에 아다쉑이었고, 여자친구 딜라는 포주에게 붙잡혀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보여줬다면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한다고 손가락질이나 당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관객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사랑을 나누고, 무대 위에 엑스트라들만 그들을 훔쳐보며 야유하기 시작하자 이 장면은 일종의 극 중 극처럼 연출된다. 다시 말해 우리 관객들은 서사극적인 효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관객들은 이 장면을 더 이성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엠마뉴와 딜라의 순수함과 이들을 둘러싼 비정한 세상을 선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라스카와 티오시도라는 커플의 사랑과 대조되면서 다시 한번 강조된다. 라스카와 티오시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앞의 커플과는 다르게 무대 전면에 배치된다. 이들은 달콤한 말을 주고 받으며 키스를 나누고 있지만, 그들의 과장스러운 외관과 상황 때문에 오히려 부조리극 특유의 우스운 장면이 되고 만다. 주변 걸인들의 비웃도 역시 관객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만든다기 보다는 관객을 대변해서 비웃어 준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실제 극에서도 이들의 사랑은 일시적인 일탈에 불과하고 다시 비정한 세상에 순응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이러한 연출의 차이는 라스카와 티오시도라의 순응적인 모습과 엠마누와 딜라의 순수함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연출은 전형적인 서사극의 장치이긴 하지만, 노골적인 '극 안의 또 다른 극'이나 '낯설게 하기' 따위의 기법을 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서사의 흐름 안에서 동일한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 무척이나 영리하다고 느껴진다. 페르난도 아라발의 명성을 짧게나마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라발이 나름 살아있는 부조리극 작가 중에서 손꼽힐 정도의 거장이라고 알고 있는데, 과연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나름 보람 있는 독서였다고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에 호기롭게 아라발 희곡전집(전집 아님)을 질러 놓긴 했는데, 이번에 읽은 <도스토예브스키란 이름의 거북이>를 포함해서 겨우 두 권 읽었다. 이 부분은 좀 반성할 필요가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