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를 아십니까
박석무는 서울에서 광주 지역구로 주말마다 내려가는 처지여서 동료들 사이에 가장 맞춤한 공주교도소 동행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번은 그가 김지하 시인을 데려왔는데 우리는 두시간 가까이 김지하의 ‘생명사상’에 대한 장광설을 들어야 했다.
박석무도 박포말(거품)이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 입가에 침이 고일 정도로 떠들어대는 위인인데, 그날 따라 김지하의 알쏭달쏭한 생명사상 구라에 입을 다물고 겸손하게 앉아 있었다.
하이젠베르크의 양자론이 어떻고, 기가 어떻고,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의 말은 밥이 하늘이라고 수정되어야 한다는 둥, 끝날 것 같지 않은 그의 설교에 박석무나 나도 이따금 아 옳지, 그래, 하면서 추임새나 넣어줄 뿐이었다.
울화통 치미는 일은 김지하가 돌아가고 나서 두 달 동안 면회가 금지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서울에서 돌아가자마자 조선일보 기자를 만나 술 한잔하면서 소설가 황석영과의 면회담을 자유분방하게 인터뷰 형식으로 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사에 실린 김지하의 말에 의하면 소설가 황석영은 매일 두시간씩 운동장을 달린 탓인지 무척 건강해 보였고 큰 작품만 대여섯 편 구상중이며 감옥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내더라는 식이었다.
신문에 그 기사가 나가자마자 법무부에서 득달같이 사실을 확인하려는 감시반이 내려왔고 교도소장은 나 때문에 전말서를 따로 작성해야 했다. (2권 159p)
* 커피에 박카스 붓는 고은
교도관이 우리에게 커피를 한잔씩 돌리고 나자 고은 시인이 떠들썩하게 나를 포옹하고 싯귀도 읊조리고 하더니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박카스 병을 꺼냈다. 그러고는 마개를 열어 서슴지 않고 커피에 주욱 부어버렸다.
이게 무슨 맛이 될지 나는 저절로 면상이 일그러졌다. 고은이 눈을 꿈쩍여 보이며 말했다. 좋은 거야 그거. 얼른 쭈욱 마셔. 그래서 한 모금 했더니 웬걸, 코냑 향이 입안에 가득찼다.
나는 갈색의 코냑을 여유만만하게 한 모금씩 마셨고 그들이 일어설 즈음엔 완전히 취기가 얼굴에 올라와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전담반 교위는 대번에 눈치를 챘다.
- 어라, 선생님들 범치기 하셨네. 도깨비탕 드셨잖아요. 이제부터 두 분은 면회 금지입니다. (2권 162p)
*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내가 방북하고 나서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과 미국을 떠돌던 때에 미국에서 겪은 일이다. 앞집 세탁소 아저씨가 찾아오더니 여기도 해병 전우회 지부가 있어 모이는데 나와서 ‘좋은 얘기’ 좀 해달란다.
그래서 온 세상이 다 아는대로 내가 북한에 다녀온 불온한 사람인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고, 해병대엔 불순분자가 있을 수 없다’는 간단한 결론이었다. (2권 1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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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병에 코냑을 넣어서 왔다는건가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