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로 접하는 밀란 쿤데라의 책, 이번엔 시인의 이야기이다.


 예술가의 삶은 어딘가 일반인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일반인의 삶이 기계적인, 차가운 삶이라면 그들의 인생은 뜨겁고 열정적인, 색채 가득한 그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주인공 야로밀은 그런 삶을 동경한다. 어릴 때부터 가진 자신의 예술적 재능에 심취한 그는 언젠가 타오르는 인생으로 삶을 마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의 사회에 녹아들면서 공산당에 가입하고 혁명의 시를 쓰는 등 활발한 공산주의 활동을 보인다.


 이러한 그를 계속해서 잡아들이려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그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야로밀을 자신의 일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남자로 여기면서 자신의 세계에 담아두려 한다. 둘 다 한 인간의 예술가로서의 꿈을 응원하면서 너무나도 다른 길을 원한다. 소설 속에서 이 둘의 갈등은 계속해서 드러난다.


 야로밀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유년 시절과 같기를 원한다.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하던 모습. 순수하고 어린 영혼에서 나온 그대로의 시를 쓰고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는 모습 등등. 그렇기에 그녀는 아들이 예술가, 시인이 되길, 언제나 자기에게 달려와 주는 어린 아이로 계속 살기를 요구한다.


 야로밀은 성장할수록 어머니의 이러한 명령을 거부한다. 그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고 싶어한다. 어머니와 함께인 유년 시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성에 눈을 뜨는, 좀 더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성인의 세계로 나가길 원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사랑한 자신의 모습, 얇고 노란 머릿결, 살짝 들어간 턱 등의 모습을 싫어한다. 소설 속 한 장면에서 그는 어머니로부터 도망간다. 그때부터 그는 새로운 사상을 빠져들며 혁명가로서의 시인이 되기를 점차 원한다.


 야로밀은 점점 자신의 유년 시절과 멀어진다. 그가 어릴 때 여러 영감을 주던, 이후에도 갖은 영향을 미치던 한 화가의 그림자를 점차 거부하고 멀어진다. 더 이상 그가 쓰던 시들을 쓰지 않고 좀 더 혁명적이고 새롭게 만나는 세계를 표현하는 시를 쓴다. 계속해서 공산당의 활동에 동조하며 끝내 자신의 연인을 고발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야로밀은 위화감을 느낀다. 한 연회에 참석하고 거기서 모욕을 당한 그는 자신이 뜨겁게 타오르는 최후를 맞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야로밀에게는 자비에라는 가상의 인물이 있었다. 자비에는 야로밀과 한 몸으로 그가 꿈꾸는 예술의 인생을 사는 존재이다. 꿈과 꿈을 넘나들며 충만한 삶을 사는 자이다. 그러나 그는 자비에가 자기를 떠나는 것을 본다. 그는 자비에가 아니었다. 자비에의 예술의 인생은 야로밀의 것이 아니었다. 야로밀은 배신당했다.


 소설에서 시인이 맞는 세 가지 죽임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추락을 하여 사망한다. 그들은 세상의 모습에 경악하여 꿈과 각성의 비극적인 불일치를 보고 실망한다. 어떤 이들은 불에 휩싸인다. 그들의 죽음은 격렬하다. 죽었음에도 그들은 죽은 이후에 더욱 세상에 퍼져나간다. 어떤 이들은 물에 빠진다. 자신의 내면에, 영혼에 속에서 헤매다 익사한다.


 야로밀은 불길에 휩싸이고 싶었다. 그는 타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예술의 삶인 자비에는 떠나버렸다. 마지막에 그가 도착한 장소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그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쇠약해진 그는 그가 원하던 세상을 쫓아갈 힘이 없었다. 그의 몸 위에 덮어진 흙은 그를 짓누르고 자신의 곁에 있던 최초의 여자, 어머니로부터의 도망을 거부한다. 그에게 불은 없었다. 남은 것은 물 뿐이었다.


 야로밀은 작가인 쿤데라와 정반대에 위치한다. 둘 다 예술가면서 한 쪽은 혁명에 동참하기에, 다른 하나는 망명하기에 이른다.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쿤데라는 그가 거부한 삶의 모습을 소설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