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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고프먼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들었기도 하고, 전에 아마 <자아 연출의 사회학> 같은 책을 읽어본 적이 있기도 하다. 다만 큰 감흥은 없었는데, 어빙 고프먼이 주장하고 설명하는 틀이 너무 그럴듯한 말이라 외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도식처럼 느껴진 탓이다. <상호작용 의례> 역시 그런 인상을 받았는데, 사회를 개인들이 모이는 그 순간의 장면만으로 한정하고 이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지 분석하는 글을 읽으며 가졌던 생각은, 이것들이 너무나 문학적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문학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말로 표현할 때, 사람들은 어떤 뚜렷한 주관과 생각을 토대로 의식 중이든 무의식 중이든 행동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무엇이 어떤 형태들로 나타난다 하는 식의 분석까지는 그럴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것이 '왜' 그런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고나 할까. 제목의 "의례"가 암시하듯 어빙 고프먼의 접근은 우리 개인들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의 상호작용에 저절로 따를 수밖에 없고 이를 존중하게 되는지에 대한 암시가 깔려 있다. 기도를 위한 카펫을 옆에 끼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카펫 위가 하나의 신전이 되는 이슬람 신자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신"을 만날 때마다 정해진 루틴에 맞게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그 과정이 불경한 방식으로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 덕분에 이는 일종의 세계연극에 대한 기독교적 개념과도 조응하는 바가 있으며, 우리가 어째서 사회를 존중하게 되느냐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은, 이러한 미시적인 분석 과정에서 우리는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개념이나 느낌, 그 외의 다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것을 발견하곤 한다는 점이다. 어빙 고프먼의 분석이 이런 것들을 드러내려고 하지만, 이따금 그런 분석될 수 없는 것들을 다시 파고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람의 본능이라는 것을 어떤 모듈 별로 구별해 분리할 수 있는 속성들의 종합체인 것처럼, 이러한 속성들은 그 경우에 맞춰 등장하며 제각기 분석된 상황에 맞게 그 사람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전에 읽은 <사회심리학>을 보면 이러한 속성을 그저 그럴법한 경향성 정도로 축소하며 통계적 수치를 통해 설득하는 연구들이 많은데, 아마 이것이 좀 더 나은 선택지인 듯하다.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어떤 가능할 법한 순간들의 중첩으로 드러나는 상호작용. 어떤 것도 단언하기 어려워져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런 것들이 다 가능하다는 강박적인 목록이 필요해진 건 어쩌면 현대의 희비극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