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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감상문은 두서가 없는 감상평이며, 해설서나 교과서적 정의에 의존하지 않았기에 정확한 해석이 들어가지 않은 개인적 감상입니다. 따라서 논리적 오류나 오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냥 읽은 것 잊어버리지 않도록 필기 정리한 것입니다. 


본 서적에서 듀이의 생각 정리 

1. 당시 자유주의의 상황 
① 자본주의 체제 문제 발생과 이에 대한 갈등, 그리고 다양한 사회조직의 등장과 입법투쟁에 있어서 무능함 
②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의 변질 
③ 소수의 산업 자본가들과 기득권을 옹호하는 무기로 변질 

2. 듀이가 생각한 자본주의의 문제 
① 자본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장하는데 실패 
② 평범한 사람들이 즐거움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을 제공하는데 실패 
③ 금권정치와 소수독점으로 인한 민주주의 위협 

3. 듀이가 바라본 자유주의의 지속해야할 가치와 버려야할 가치 
(가) 지속해야할 가치 
① 자유 ② 개별성의 발현 ③ 탐구와 토론의 중심으로써 자유로운 지성 

(나) 버려야할 가치 
① 소수 독점을 초래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화 

4. 듀이가 바라본 자유주의의 역사 
① 강력한 실정법에 투쟁하는 로크의 자연법적 자유 시대 (부의 소유권 주장) 
② 자연법적 자유와 경제원칙을 동일시한 스미스의 자유방임과 규제를 철폐하고 산업 자본가를 해방시킨 시대 (부의 생산권 주장)
- ①,②는 자유를 자연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봄 
③ 공리주의자(벤담주의)들의 입법개혁, 행정개혁을 위한 투쟁 시대 
④ 워즈워스, 콜리지 등의 낭만주의와 토머스 힐 그린 등의 유기적 관념론자들의 자유방임경제 비판 
⑤ 이에 영향을 받은 밀의 사회제도와 개인정신을 종합하는 자유원칙 발생 
- ③,④.⑤에서 자유는 사회체계와 조직과 관련하는 개념으로 확장, 자유는 개인 소유에 한하지 않고 보편적 행복을 위한 가치 

5. 듀이가 바라본 자유의 위기와 문제 
① 사회변화에 무감각해지고 역사적 상대성을 무시한 채, 절대적 진리만을 내세우는 교조화되고 보수화된 자유원칙 
② 사회와 개인을 구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 
- 그러나 자유는 항상 인간관계, 집단, 조직 등 사회적 대상들과 관계하며 발전 
③ 지성을 개인의 소유물로 인식, 그리고 절대불변의 교리화 
- 지성은 옛것과 새것을 통합해 재구성하는 사회적 실천의 방향 제시가 본연의 모습, 또한 자유로운 지성은 항상 억압된 자들의 해방과 관련하여 발전 
④ 현재 산재하는 문제들(물질주의, 갈등, 소수의 생산통제, 사회조직의 등장)에 대한 대안 제시를 못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무능한 모습들 

6. 자유주의의 부활을 위해 듀이가 제안한 것 
① 사회변화에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탐구가 가능한 시민의식을 육성하는 교육 
② 자유와 문명을 위협하는 폭력이 아닌 과학적 방법으로써의 실천적 지성을 통한 급진적 자유주의 
③ 무분별한 경제를 조직적으로 사회통제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화된 경제 
④ 사회와 개인의 분리인식 재고 
⑤ 다양한 변화와 변혁의 흐름에서 자유주의의 자산이 퍼지도록 끊임없는 실험시도와 실천의 필요성 


여기까지가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을 읽고 정리한 저만의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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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를 읽고 쓴 개인적 감상평입니다. 


영남대학교 교수이자 법학 박사인 박홍규 교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가 부자나 기득권을 위한 개념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박홍규 교수는 ‘상관자유’라는 내용을 통해 현 시대의 ‘자유’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책을 얼마 전에 저술했다. 사실, 박홍규 교수의 물음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자유주의는 보편적 다수를 위한 것이라기 보단 소수 기득권과 기업가들을 위한 논리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단어 자체가 체제유지를 위한 정당화된 기제로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소극적 자유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논리는 복지나 기업규제에 대한 철폐를 부르짖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논리는 사회변혁을 거부하고 사회적 영향을 끼치는 사회조직의 출현을 막으려는 경향이 여실하다. 따라서 자유의 논리는 국가보수의 핵심논리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단연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자유주의자에 대한 질타가 크게 번졌던 시기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서였다.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와 같은 진보적 철학자들은 더 이상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낙수효과는 없음을 선언했다. 오히려 실패한 금융회사들을 위해 국민의 세금이 끌려올라가는 현상을 목격한다. 실패를 불러일으킨 것은 노동자나 국민이 아니라 기업과 금융 엘리트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실패가 다가오자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은 것은 그들이 아닌 국민과 노동자였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이런 이유에서 발생했다. 실패를 국민들에게 떠넘긴 것도 모자라 그렇게 받은 세금으로 실패한 임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기업의 전용 비행기를 구매하여 배를 불렸으니 분노가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다.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실패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태도로부터 나온다. 즉, 더 이상 자유는 모두가 공유 가능한 이념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보호망이자 무기라는 소리이다. 이것은 자유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오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이 미국 1930년대에도 일어났다. 대공황시기, 자본주의가 보편적 부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소수 권력의 독점으로 이어지고 행복이 파탄됐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기의 자유주의자들은 새롭게 불어오는 계급 갈등과 사회 조직의 형성에 대해 기득권을 보호하고 그들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급급했다. 아마 미국 자유주의가 가장 큰 위기를 겪었던 시절은 바로 1930년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자한 진보적 지식인이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혁신주의자이자 실용주의 철학자였던 ‘존 듀이’이다. 존 듀이는 상당히 독특한 노선을 채택했다. 당대의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자유주의를 개조하고 존속시키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간단히 말하면 중도-진보노선이었다. 존 듀이는 스스로를 사민주의자로 칭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 때문에 당시 분쟁의 주요 세력이었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존 듀이는 ‘실용주의자’라는 측면에서 위 둘이 지나치게 교조적이고 절대적인 면이 강하다 비판했다. 주요 노선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징이 미국 민주주의를 저해할 것이라 주장하며, 중요한 것은 현재의 현실적 측면에 맞게끔 실용적으로 개혁하고 통합하는데 있다고 이야기한다. 듀이의 작업은 개인-사회의 통합이기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존 듀이의 중요한 주장을 다룬 저술이 바로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이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핵심 아포리즘을 하나 선택한다면 이 문구를 꼽을 수 있다. 

[급진주의가 아닌 자유주의는 의미도 전망도 없다] - 78p 

급진이란 무엇인가? 구조적 모순을 가진 사회체제의 변혁을 일으키는 논리들이다. 자유주의는 항상 사회 변화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자유주의는 체제 안주나 정당화, 혹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서는 본질적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다. 자유주의의 가치는 오직 사회 체제의 변화를 주도할 때 온전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존 듀이도 우리처럼 현재 ‘자유’란 개념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자유주의자들이 현상 유지의 옹호자가 되거나 임시방편의 사회적 미봉책에 만족하는 것에 거센 비판을 했다. 존 듀이는 ‘자유주의자가 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위기의 순간 늘 자본주의 지배자 편에 서는 자들’이라 불렀다. 또한, 사회 변화와 갈등의 발생, 그로 인한 사회조직의 등장과 입법투쟁에 대해 무능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듀이는 자유주의가 본질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사실 자유주의의 역사는 그 어떤 이념보다 급진적이고 개혁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한 세기전만 하더라도 자유주의자들은 체제 전복적 급진주의라는 비난을 받았다. 
존 듀이는 자유주의의 역할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연구했다. 그래서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의 내용은 자유주의의 역사, 위기, 미래를 위한 과제를 서술한다. 
듀이가 주장하는 자유주의가 지켜야할 핵심 가치는 ① 자유 ② 개별성의 발현 ③ 탐구와 토론의 중심으로써 자유로운 지성이다. 나아가 자유주의가 버려야할 가치는 ‘소수 독점을 초래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화’이다. 
각각의 핵심 가치들은 다시 자유주의의 위기로 작동한다. 쉽게 말하자면 핵심 가치가 오늘날에는 변질되었다는 소리다. 그것은 각각 ① 사회 변화에 무감각해지고 역사적 상대성을 무시한 채, 자유의 절대적 진리만을 내세우는 교조화되고 보수화된 ‘자유’, ② 사회체제와 개별성을 구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 ③ 지성을 개인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문제들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위 ①~③번을 종합하여 현재 산재하는 문제들(물질주의, 갈등, 소수의 생산통제, 사회조직의 등장과 입법 투쟁)에 대한 대안 제시를 전혀 하지 못하고 기득권만을 옹호하는 무능한 모습들이 자유주의의 대표적 위기라고 말한다. 
①번의 가치를 존속하고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존 듀이는 ‘자유주의의 역사’에 대해 한 챕터를 소비한다. 그 정도로 자유주의의 역사를 봤을 때, 현재 비판받고 있는 자유주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역사는 로크부터 시작한다. 로크의 시대는 불관용, 박해의 시대였고 실정법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로크는 이러한 국가의 강력한 실정법에 반대하며 인간의 자유란 ‘자연법’에 속한다고 말하며, 이런 자연법을 실정법 우위에 두려고 했다. 이미 자유는 구제도에 대해 투쟁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이 시기에 로크가 중시했던 것은 바로 ‘부의 소유권’이었다. 이러한 자연법적 자유가 애덤 스미스와 만나면서 자연법은 자유로운 산업 생산/상업적 교환의 법과 동일시되었다. 즉, 자연적 자유가 경제법칙과 만나면서 자유의 관심은 ‘부의 소유’에서 ‘부의 생산’으로 넘어가게 됐다. 여기까지 자유는 굉장히 ‘개인적인 것’들로 개념화됐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바뀌게 된 것은 공리주의자 벤담주의가 나타나면서부터다. 

[벤담의 영향력은 자유주의가 급격한 사회 변화를 촉발할 힘이 될 수 있음에 대한 증명이다.] - 30p 

공리주의자들은 영국의 법률적·행정적 개혁을 이끌었다. 그들은 실제로 법률가나 공무원이 별로 없는 구성원들이었다. 그러나 정치영역 안팎에서 자유주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입법투쟁과 행정개혁을 외치며 ‘자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심지어 벤담은 혁신적인 조치와 정책들을 외면한 경험주의 보수학파들을 경멸하기까지 했다. 
벤담학파의 중요성은 이전까지 ‘자유’가 가졌던 ‘자연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을 ‘사회적이고 조직적인 성향’으로 옮겨가게 만들었다. 즉, 벤담의 논리는 ‘사회제도의 변화’를 통한 자유의 노력이 최대 다수의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소리이다. 재밌는 것은 미국의 자유주의가 ‘로크’에서 정체되었고 ‘벤담’으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듀이는 주장한다. 
하지만 벤담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벤담 역시 국가의 부의 총합이 최대 국민의 행복을 증진할 것이라는 이유로 자유방임적 경제체제에 대한 개혁적 노력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곧 콜리지, 워즈워스 등의 낭만주의자들과 토머스 힐 그린과 같은 유기적 관념론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산업 자본주의가 행복을 증진시키질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후기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이다. 우리에게는 [자유론]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고, 실질적인 ‘자유의 원칙’의 핵심적 틀을 제공한 사람이다. 
자유론을 보자. 자유론의 원칙들은 간단히 말해서 (1)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자유 (2) 출판·여론의 자유 (3) 소수의견 존중과 토론의 자유, 그리고 이것이 이끄는 자유로운 지성의 자유가 있다. 밀의 논의들은 개인 중시적이지 않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소수의견에도 진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하고 토론을 할 때 비로소 참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 이것은 ‘개인’과 함께 대상으로서의 ‘타인’을 중시했음을 의미한다. 
즉, 밀의 자유개념은 이러하다. ‘사회성과 개별성의 동시 발현’, ‘방향성 있는 자유’, ‘정신의 중요성’, ‘결과보다 과정 중시’, 이를 종합하여 사회제도와 정신을 종합하려는 자유의 시도가 바로 밀의 [자유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로크-스미스 시대의 개인적이고 소극적 자유는 벤담 이후 밀에 이르러 사회체계와 종합하려는 시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유는 사회와 별개일 수 없다. 
자유의 역사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자유의 원칙은 절대불변이 아니었다. 가치의 존속은 있었지만 그 의미는 시대상황에 맞추어 항상 위치와 역할이 변해왔다. 둘째, 자유의 이념은 개인과 사회를 이분법화하지 않았다. 셋째, 자유주의자들은 항상 억압된 계급을 위한 해방논리였고, 따라서 사회조직과 무관한 적이 없었다. 셋째 논의는 로크-스미스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억압적 상황에 놓인 계급을 해방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산업 자본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들이 제대로 발전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절대주의와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형성한 사회적 신조에 관한한 절대주의자라는 사실은 비극이다.] - 50p 

듀이는 자유주의의 역사적 상대성을 자유주의자들이 간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신념들을 역사적 변화 속에 대응시키지 않고 절대화하고 교조화했다고 비판한다. 자유, 개별성, 지성에 대한 자신들의 특별한 해석 그 자체가 역사적 조건에 의한 것이며 오직 그 시대에만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항시 통용 가능한 불변의 진리로 내세웠다고 말한다. 이것은 듀이의 실용주의적 철학의 성격과 일맥상통한다. 실용주의, 간단히 말해서 변화와 시대에 맞는 것을 개조하여 선택하는 성향이 강하다. 
역사적 상대성을 간과한 자유주의의 문제는 그들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보수화를 필연적으로 불러왔다. 특히, 그들이 해방노선의 선두주자들이 아니라 기득권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그러한 증상은 더욱 심하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의 큰 성과였고, 실제 이를 통해 억압에서 탈피한 계급인 ‘산업 자본가’들 대다수는 열광적인 자유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밀이 논의한 자유의 사회적 위치를 외면하고 단순한 개인가치로 여겨 부의 축적과 무한한 욕망으로 이끌고 나갔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부의 편중을 나았고, 모두의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라는 스미스의 예상과는 다르게 소수의 행복만을 증시키는 결과를 보였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이기심이 점증적 풍요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적 이익이 많은 경우에 인위적으로 결핍을 유지함으로써, 그리고 베블런이 칭한 생산의 체계적 사보타주를 통해 더 쉽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 52p 

소스타인 베블런은 자본에 대한 자유주의의 원칙이 생산과 분배에 대한 국가 통제는 배척했으면서도 기업가들에 의한 사적 통제를 수용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기업가가 자본의 생산을 제한하여 결핍상태를 유지해 더 많은 부를 착취한다고 봤다. 이것은 곧 자본의 모순이 사회공동체 전체에서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결국 소수의 권력이 소유하고 불평등을 부르는 체제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나타났다. 대공황 이후, 자유주의를 통해 해방당한 자유주의자들, 그 소수 독식의 기업가들과 권력을 잡은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에게 쏟아지는 비난들, 그리고 갈등, 실업, 결핍의 문제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고자 일어나는 새로운 사회조직들의 입법투쟁에서 자유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가치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외면하는 보수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 밖에 없었다. 
즉, 자유주의는 더 이상 억압에 대한 해방으로써의 본질적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이들이 사회조직의 입법투쟁에 대해서 부정적 자세를 취한 것도 참으로 모순이다. 왜냐하면 초기 자유주의자들, 특히 벤담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적극적 자유의 창출은 바로 이러한 입법투쟁, 행정개혁의 노력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듀이는 이런 모순적 문제가 나타난 이유를 사회제도와 개인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접근에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사회를 개인에 대립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한 것이다. 이것은 ② 개별성의 발현을 잘못 인식한 결과이다. 

[자유의 개념이 개인의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변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제도가 개인의 내면 형성과 성장에 중요한 방식으로 개입 혹은 긍정의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제한으로 취급했다.] - 55p 

밀의 [자유론]으로 돌아가자. 결국 자유의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대상, 즉 타인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이다. 그리고 사회체계가 있을 때이다. 나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어도 그러한 상황이라면 절대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타인의 존재, 사회의 존재, 즉, 관계성의 영향이 바로 ‘자유’의 참된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유는 절대 사회제도나 인간관계를 벗어나 생각할 수 없다. 참된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토론이 필요한데, 이러한 토론은 바로 상대가 있음에 가능한 것이다. 관계를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개별성의 발현은 개인으로만 이루어진 개념이 아니다. 
개별성의 발현을 진심으로 천명하는 자유주의라면 인간관계의 구조, 사회체계와 조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관계성 속에서 진정한 개별성이 발양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는 언제나 당대의 권력 분배에 의해 행사되는 어떤 형태의 압박으로 고통당하는 계급·집단과 관련했기에 사회조직과 절대로 뗄 수 없는 개념이다. (노예 해방, 농노 해방, 산업 자본가의 해방) 
③ 지성의 개인 소유물 인식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는 앞서 말한 것들의 종합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상대성을 배제한 인식, 이분법적 발상으로 인해 자유로운 지성이 오로지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들이 다양한 사회조직의 등장과 새로운 입법투쟁에 대해 자유주의가 무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역사적 순간마다 변화에 대한 조절의 필요성은 항상 필요하고, 자유주의는 그 필요성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의 필요성이 자유주의 업무를 규정한다. 여기서 자유로운 지성은 옛것과 새로운 것을 통합해 재구성하는 것이며, 사회적 실천 방향의 제시가 해방된 지성의 역할로써 자유주의 본연의 모습이다] - 65~66p 

인간의 삶은 제도와 도덕의 틀에 묶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것은 항상 변화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자유로운 지성은 이런 상황에서 오랜 관습과 생각, 욕구, 행위의 옛 방식을 새롭게 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가치를 지키지 못한 자유주의자들은 지금 산재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문제들이 이제는 억압적 체제로 변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을 지키기에 급급한 것이다. 듀이는 말한다. 오늘 날의 자유는 물질적 불안정으로부터 해방, 대중이 막대한 문화자원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는 강압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한다. 이제는 억압의 대상과 행위자가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과거 자유주의자들이 그런 것처럼 산업 자본가들에 의한 억압으로부터 고통 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게 자유로운 지성이 해야 할 과제이다. 
듀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유주의가 수행해야할 과제로는 ① 사회변화에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교육을 통해 자유로운 토론과 탐구가 가능한 시민의식을 육성하는 것 ② 자유와 문명을 위협하는 폭력이 아닌 과학적 방법의 실천적 지성을 통한 급진적 자유주의 ③ 경제력을 조직적으로 사회통제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화된 경제 ④ 사회와 개인의 분리인식 재고 ⑤ 자유주의의 지속적 자산이 퍼지도록 끊임없는 실험시도와 실천이라고 말한다. 
③번의 논리는 당시 무절제한 기업들의 경영을 일정 정도 국가가 규제해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재밌는 논의는 ②번이다. 바로 자유는 급진적이되 그 수단은 폭력이 아닌 과학적인 지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적이라는 것은 실험정신을 의미한다. 당시에 실증주의가 번영을 했는데, 이를 도입한 것이다. 끊임없는 실험과 실천을 통해 행위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지성을 토론, 공적논의와 재구성을 통한 자유로운 지성과의 통합을 요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시도는 당시 ‘헐하우스’와 같은 실천적이고 실험적인 개혁적 사회운동과 관련한다. 실제로 듀이는 이 책을 헐하우스의 창시자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듀이는 급진주의적 자유주의를 주장하되, 급진적 폭력이나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계급 갈등을 지지하지 않았다. 폭력은 반작용으로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키고, 계급논리는 또 다른 계급의 억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결국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나치와 같은 전제주의를 불러온다. 이것은 현재의 자본주의의 수호자인 자유주의자들이 불러온 소수 권력 독점, 금권정치와 다를 바 없는 결과이다. 즉,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는 사회 변화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는 급진적 성향을 지니고, 이것이 사회조직과 체계적 운동과 입법투쟁으로 발전해야 하지만 그 방식은 자유 이념이 가진 지성이지 폭력이나 계급논리가 아니라는 소리다. 
마치 맹자의 역성혁명 개념처럼, 듀이는 단 하나의 정당한 폭력만이 옹호될 수 있다고 말한다. 

[권한을 부여받은 다수를 통해 사회가 위대한 사회변화에 이르는 사회적 실험의 길에 들어서는데 소수가 폭력을 통해 지성적 행위의 방식이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게 할 때에는 고집스러운 소수를 무력화하고 압도하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 - 101p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1930년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위기, 그리고 2008년 다시 등장한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신자유주의 경제의 위기는 어떤 면에서 일맥상통한다. 듀이는 자본주의가 3가지 이유에서 실패했다고 한다. 이것은 해당 책에서는 안 나오고 145페이지 번역가가 해제를 통해 듀이의 다른 책에서 인용한 내용들이다. (1) 자본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장하는데 실패 (2) 평범한 사람들이 즐거움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을 제공하는데 실패 (3) 금권과 소수독점으로 인한 민주주의 위협이 그것이다. 
보자, 모두가 30년대가 아닌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 유효한 문제들이다. (1)번은 리먼 사태와 같이 더 이상 낙수효과가 없으며 자본주의 이득은 기득권이 독점한다는 사실과 유사하다. (2)번, 대공황 시기의 실업의 문제는 지금도 역시 이어진다. 문제는 오히려 늘었다. 바로 ‘비정규직’의 양산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이르러서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부르짖는 노동유연화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3)번, 최근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보고서에 미국을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님을 천명한다. 바로 돈과 물질이 권력을 지배하는 시대, ‘금권주의’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다. 
듀이가 이야기했던 것은 오래되고 케케묵은 과거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산재한 것들이다. 여기서 자유주의자들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 자유주의자들의 역할은 지금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 자유주의의 본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리 시대는 존 듀이가 이야기 했던 자유주의 가치의 중요성을 다시 논의하고, 자유의 탈억압적이고 해방적이었던 사회적 지위를 되살리며, 사회조직과 체계와 개인의 통합, 사회변화와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유, 그리고 지성을 통한 경제의 사회화 등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유의 본질적 가치들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존 듀이의 자유주의적 생각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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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예전에 썼던 독후감 하나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