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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는 몰라도 환관들은 알았다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신슈밍 외 지음/주수련 옮김/글항아리/476쪽/1만 9000원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기 마련. 자식마저 희생시키고 권좌를 지킨, 그래서 ‘권력욕의 화신’으로 알려진 청말 서태후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다. 서태후와 융유황후, 단강태비를 잇따라 모셨던...www.seoul.co.kr예나 지금이나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기 마련. 자식마저 희생시키고 권좌를 지킨, 그래서 ‘권력욕의 화신’으로 알려진 청말 서태후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다. 서태후와 융유황후, 단강태비를 잇따라 모셨던 태감(환관의 우두머리급 관리)들의 입을 통해 들어 본 서태후는 지혜롭고 선 굵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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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망의 기로에 선 청나라의 운명은 그를 극도로 예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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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청 황실이 빚어낸 숨겨진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16명의 구술자 중 한 명인 신슈밍(信修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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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감으로선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다. 점을 잘쳐 ‘신선’으로 불렸던 그는 “서태후에 대해 특별히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없다”면서 20여년간 보고 들은 이야기를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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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혈기왕성하게 자기계발에 힘썼다. 날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뿐만 아니라 상하이에 머물던 외국인을 불러들여 어학을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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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태후의 불행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람을 가려서 들이지 않아 거짓되고 터무니없는 소문들이 퍼져 나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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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제와 황후의 죽음은 서태후 탓이 아니다. “체구가 건장한 동치제는 총명했으나 밤에 홀로 궁문을 넘어 기방에 들락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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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류병’에 걸렸는데 어의가 이를 감히 말하지 못하고 천연두라고 고해 일찍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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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제의 아이를 밴 황후가 스스로 곡기를 끊어 자살한 것에 대해선 “세상의 어느 어미가 제 아들의 후사를 끊는단 말인가”라며 ‘서태후 배후설’을 일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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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감들이 말하는 청말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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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관리·감독 탓에 굶주린 어린 황제가 태감들의 방에 숨어들어 찐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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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으로 선통제가 폐위당한 뒤 융유황후가 용포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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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1000여명의 환관들은 사실 천한 노비와 다름없었다. 황실의 살림을 떠맡았지만 나이가 들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는 대부분 궁 밖으로 쫓겨나 풍찬노숙 끝에 이슬을 맞으며 생을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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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명의 태감들이 구술한 회고록은 자금성 출판사가 책으로 엮으면서 귀중한 사료로 변신
http://m.koreatimes.com/article/824351
환관의 내밀한 이야기 - 미주 한국일보미주 1등 정상의 신문 한국일보가 생생한 미국 관련 뉴스를 전달해 드립니다.m.koreatimes.com모자 쓴 사람들이 환관. <사진 제공: 글 항아리>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청왕조 말기 환관들이 직접 말하는 자금성 내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환관들의 내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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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인 신슈밍은 1900년 자금성에 환관으로 들어가 1924년까지 25년간 환관으로 지냈다. 이 시기는 청조말과 중화민국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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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1910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공화제가 수립됐지만 공화파와 청황실과의 협약에 따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아이신줴뤄 푸이)는 1924년까지 자금성에 그대로 머물렀다. 선통제는 결국 군벌에 의해 자금성에서 쫓겨났는데 이때 신슈밍도 같이 성을 나왔다. 그는 그때의 경험과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로 회고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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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황실이 어떤 존재였던가도 직접적인 관찰자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는 서태후를 비롯해, 광서제ㆍ선통제 등 황제와 원세개ㆍ풍옥상 등 군벌, 그리소 손문 등의 혁명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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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는 늙어서도 머리가 검었던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사진이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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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제도의 유래, 조직의 체계와 직무, 녹봉, 품성까지 일일이 열거한다. 그리고 저자의 경험을 통한 환관이 되는 사례와 계기, 그리고 자금성을 나와서 말년의 삶까지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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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에서 ‘환관’이라는 개념이 처음 나타난 시기는 은나라 때인 기원전 14세기부터다. 환관은 존재자체가 왕ㆍ황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데 황제의 권력이 강하면 그에 따라 환관도 득세를 했다. 진시황의 사망 이후 권력을 농단했던 조고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황제제도 아래서 권력이 집중된 황제에게는 수족같이 부릴 개인적인 ‘노예’가 필요했다. 이것이 환관이다. 집중된 권력을 황제가 제대로 사용 못할 때는 손발이나 다름없던 환관들이 권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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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왕조 말기에는 늘 환관 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09/2013110900320.html
청나라 말기 '철의 여인'이라 불린 서태후의 위엄은 눈빛에 있었다. 직사광선 같은 눈빛을 누구도 감히 마주 대하지 못했다. 목소리 또한 크고 위엄이 서려 있었다. 조정 회의 때는 대신들에게 집안의 소소한 일을 묻다가 돌연 물었다. "그대들이 맡은 일들은 어떤가?" 그 한마디에 대신들은 말끝을 흐렸고, 태후를 알현하고 퇴청할 땐 온 이마에 땀방울이
Camille Saint-Saens: "Mon cœur s'ouvre a ta voix" from Samson & DelilahArrangement by A. Francis Pinto, transcription to original key by Caroline Bembiayoutu.be
글항아리 편집장이 쓴 에세이를 안읽었더라면 나도 글항아리 참 좋아했을텐데...
이은혜인가 하는 분 말이지? 나도 사서 읽고 버린걸로 기억한다. ㅎㅎ ㅎ근데 무슨 반감이라도 생겼어? 그 책 읽고?
여기 댓글을 참조해줘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478531
노인과 바다에서 성인지 감수성 찾기 ㅋㅋ
별 상관 없을 것 같은데, 글항아리 자체 책이 아니라 외국서 팔릴 만한 책들 번역해서 파는건데 원 저자와 상관없이 ㅐ용 첨삭을 할리도 만무하고, 편집장이 어떤 사상 갖고 사나는 해당인 소관아닌지?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라는건 알겠지만 "글항아리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서 에세이를 썼다면 좀더 조심했었어야 했다고 봄. 전체적으로 글 자체도 본인 출판물 홍보성이 짙었고 개인의 사상과는 별개로 편집자 특유의 오만함과 선민의식도 비호감이었던지라 그게 출판사 자체의 불호로까지 번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