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운 <쏘련인상> 



<쏘련인상>이란 책이 있음. 1949년에 나옴.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 리바이벌되기도 함.


1949년에 북한 정부 대표단(김일성 이하 장관 여러 명)이 쏘련 갔던 이야기.

이 북-소 회담이 일명 '6.25전쟁 허락 얻기 회담'이었다는 게 통설.


여튼, 이때 이 회담에 갔던 일행 중 하나가 당시 북한 교육상이었던 백남운.

그가 남긴 여행기가....어쩌면 여러가지를 발굴할 만한 거리 같아서 메모를 남겨봄.


독후감 겸해 뭐라도 남겨 놓고 싶어 이하, 작성.



(참고로, 월북 인사들 저서 및 일부 북한 문헌은 대개는 해금된 상태! 

이거 좀 봤다고 시비 말 것!)

( '김일성 개새끼!' )






((내용을 다음과 같이 구분. 

-은 일반적 내용.

ㄴ은 나의 느낌, 코멘트))



이하, 내용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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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ㅁ 2월22일. 오전 8시. 평양에서 비행기 탑승, 이륙.

10시50분에 소련 극동지방인 보로시로프(현 우수리스크) 착륙.


ㅁ 당일, 2월22일 13시30분에 보로시로프에서 기차 탑승.


ㄴ 이 기행문에서 시간 묘사가 좀 부실.

해당 시각이 한반도 시각인지 소련 시각인지 부정확.

백남운은 그저 자기 손목시계 보고, 혹은 안내원이 알려주는 대로 시간 고쳐 가며 쓴 듯.

이하, 걍 기행문에 나온 대로 시각을 기재함.


~~~~


ㅁ 3월3일 13시. 알렉산드로브 역.(모스크바서 얼마(?) 안 되는 곳)

여기서 주영하 대사 등 소련 주재 북한 공관원들이 열차에 탑승.

(ㄴ 원거리(?)에서부터 김일성 일행을 마중 나온 것)


ㅁ 당일, 15시10분. 야로슬라브스크 역 도착.(모스크바)

여기에서 소련측 고위 인사 다수, 환영식.


ㄴ ㅁ주행거리 종합 계산:

2월22일 13시30분~3월3일 15시10분. 즉 약 217.5시간.

보로시로프(현 우수리스크)~야로슬라브스크(모스크바) 거리는 9175.5km.

...종합적인 표정속도는 약 42.2km/h.


ㄴ 단 이 시간은, 역에 머무는 시간, 지역별 시간대 시차, 

과거 실제 철도 선로와 내가 참조한 나무위키 자료의 차이 등등....

이런 것 때문에 계산에 문제가 있을 수.



- 3월4일 21시30분~21시50분.

대표단이 소련 외상(외무장관) 몰로토프와 회담.


근데 백남운 왈, '몰로토프가 외상으로서 외국 대표단과 회담한 건 

이게 마지막일 터. 다음날부터 위신스끼(비신스키)로 외상 교체. 몰로토프는 부수상 취임.'


ㄴ 러시아사(소련사) 연구자 및 그 덕후들에게 혹시 이 부분, 나름 주목?

몰로토프가 1949년 3월에 외상->부수상 된 건 실상 실각(?)된 것이란 썰이 있는데....

이때 부수상이란 실세가 아닌 자리?


ㄴ 근데 외국 대표단 방문 기간 중 이래도 되나....?

뭐, 북한의 존재가 미미했단 얘기일 수도.

사실 북한 대표단이 한 달씩 소련에 머물렀는데, 이날 이후에도 몰로토프는 부수상으로서

대표단을 몇 번 만나긴 함.


진짜로 몰로토프가 실각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이 기행문만 보면 그런 분위기가 안 느껴짐.

백남운이 그런 걸 감지 못한 것?(혹은 감지했어도 서술의 자유가 없었나?)

아님 소련의 숙청술이 아주 세련된 거?




- 소련측, 크렘린궁을 비롯, 각종 박물관.미술관 여러 곳 소개.(거의 패키지형,호강형 관광)

백남운은 각 박물관.미술관의 감상담을 제대로 적지 못하고 본인이 본 주요 작품.유물의 리스트만 적음


ㄴ 이게 뭔 의미일지...과연 외교인지 패키지 관광인지....위화감.

백남운은 성실한 학자 출신인 줄 알았는데, '교육상'이라고 권력 쥐니까 사람이 바뀐 거...?

기행문을 읽을 타인이 위화감 느낄 거엔 무감각?


혹은, 당시 평양엔 '러시아 문화유산 목록' 같은 것도 없었을 테니, 본인 기행문에 '그 리스트라도 적어보자'는 심정....?


ㄴ이태준은 <소련기행>에서 어디를 견학한 뒤엔 문학적 감상담을 적었는데...

백남운의 이 기행문은, 각 시설을 방문 후 '첫째...., 둘째....., ..... 여섯째....' 하는 식으로 소감을 기록.

근데, 이런 방식이 왠지 좀 부족하단 느낌.

기행문이라기보단, 논문? (역시 교수 하던 버릇 때문인가?)




- 3월5일 17시. 최고소베트 위원장 스웨르니크와 회담


- 이어 20시. 크렘린서 스탈린과 회담(~21시20분까지).

ㄴ 당시 스탈린 나이 70대. 백남운은 그가 노령에도 젊어 뵌다고 찬양조로 언급...



- 스탈린이 담배(파이프) 피우는 모습 묘사(백남운이 목격한 바를 그대로 묘사).

'빛깔이 흑자색인 골통대(파이프). 

궐련(일반 종이담배) 두 개를 담배갑에서 꺼내, 한꺼번에 두 동강을 내고

종이꺼풀을 버리고 알담배를 파이프 안에 쟁임.

엄지손가락으로 그 담배들을 꾹 누르더니

양복(인민복?) 주머니에 꽂혔던 연필을 빼어 파이프 안을 두어번 눌러가며 찌름.

(백남운, '연필로 찌르는 게 불을 잘 댕기는 비법인지도...')

그다음, 불을 켜대고 빤다. 근데 그리 시원하게 연기가 풍기진 않음.

스탈린의 흡입력이 약한지도.(ㄴ나이 탓?)'


- 스탈린은 김일성 일행과 회담하는 내내 계속 파이프 담배를 피움.

(백남운은 여러 배석자 중 하나여서 대화를 별로(아예?) 안함.

그래서 스탈린의 담배 피우는 모습이나 잘 관찰.)

백남운, '스탈린에게 무슨 신문기자처럼 [파이프 담배의 효능은 어떤지요?]라고 묻고 싶었다.

체면상 묻진 못했다.'


ㄴ 자, 스탈린의 파이프 담배 피우는 모습이 어떤지?

개인적으론, ㅋㅋㅋㅋㅋㅋ .....왠지, 좀.....고급스러워 뵈진 않는 듯? 

무슨 연필로 담배잎(종이담배에서 빼낸 거) 찔러대는 거 보면 어째 좀....행실이 가벼워 뵈는데.


ㄴ 한편, 스탈린과 담배 에피소드 아시는 분?

TMI - 일설에 따르면, 당시 소련선 파이프가 서민형 담배였음.

그리고 일반 종이담배가 비싼 거였음.

그래서 스탈린은 인민들 눈치(?) 보느라, 서민 코스프레 하느라 파이프 피운 것.

그런데, 정작....담배잎을 싸구려 잎 사다가 넣은 게 아니고

비싼 종이담배를 꺾어서 파이프에 담아 피운 거....

일설엔, 스탈린이 즐기던 궐련이 외제 담배, 비싼 거였다던데...쯧....

(백남운이 이런 사정 알긴 했나? 몰랐겠지?)


ㄴ 그리고, 이 방문에서 보면 늦은 시간에 이뤄지는 일정 多.

무슨 회담이 17시, 해질녘에 열리거나

스탈린과 회담도 20시, 기타 중요 연회나 공연도 밤시간에....

왜 이런 식으로 일정 잡는지?

당시 소련인들이 야행성 습관이 있었나?....




- 김일성-스탈린 회담 대화록이 일부 서술됨.

ㄴ 나중에 알고 보니, 흔히 알려진 대로 바로 이날, 이 회담에서 '6.25 준비 대화'가 오간 것.

1990년대 이후 발굴된 자료엔 이날 이 회담에서 군사 문제 논의가 있었던 걸로 나옴.

그러나 백남운의 이 기행문엔 그 대목 無. 보안상 의도적으로 누락한 듯.(그도 결국 북한 정권의 각료였던 것....)

(단, 기행문의 다른 대목엔 군사 지원에 대한 간접적 힌트를 남겨둠) 




- 3월9일 레닌도서관 방문.

이 도서관 규모(당시 기준): 1350만 책, 도서목록카드 2000만 매,

1948년 기준 연간 열람자 150만 명.


-도서관 앞엔 70~80대의 차량이 주차중. 여러 열람실에 각종 좌석 1300여 석.

 

ㄴ 도서관 앞에 주차중이었던 차량들이 궁금. 이때부터 소련이 마이카 시대였단 뜻인지?

일부 특권자들이 타고 온 거라면....도서관에 차량을 이용해 방문하는 자들은 누굴지?

(무기 연구하는 학자들...? 관용차 제공?)




- 3월11일 11시. 모스크바대학교 방문.

여기에 유학 온 북한 학생 이태진(법학과 연구생 ㄴ 대학원 과정?), 

법학과생 김영주(ㄴ김일성 동생)가 동행.


백남운, 15인의 소련 교수단과 환담.


ㄴ 여기서, 백남운은 사회과학자로서 궁금해하던 것들을 소련 교수들에게 질문.

흠.........일국의 교육장관이 너무 학술적인 걸 물어봐서, 학생이 선생에게 묻는 듯한 느낌.

북-소간에 사대주의가 생기는 느낌?


좋게 보면, 학구열에 불타는 거지만. 

사회주의적 테마에 입각해서 학술적 주제를 묻는 게 좀 거슬리지만....

어케 보면 큰 행운. '지식대국'(?)의 교수 15인과 대화할 기회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 환담 도중 '중국 고대사 전공 교수 있느냐?'고 물음.

소련 측, '모스크바대학엔 그 전공 교수는 없고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대학에 많다.

대신 여기엔 중국 문학 전공 교수 있다'면서 어느 여교수 소개.


그녀는 호적, 진립부, 노신 등을 언급하며 환담.

'문학을 하다 보니 중국 철학도 좀 알게 됐다'며

'老子 道德經, 王充 論衡' 등의 한자를 메모지에 적고 중국어로 읽어가며 설명.


ㄴ 호오....중국어는 물론 한문을 외우는 서양인이라....

시대를 감안하면 이런 사람의 수가 많진 않았을 터.

역시 소련/러시아는 지식대국이었다....라고 봐도 되나? 

(세계 정복 내지 제국주의 팽창을 하고 싶어서 지식대국이 된 사례?)




-3월16일 11시. 방직공장 방문.

공장 말고 그에 딸린 노동자 아파트, 구내 탁아소, 병원 등등을 소개받음

(ㄴ 글쎄....과연 이 시설들의 운영이 정상적.이상적이었을지는....?)


-탁아소 말고도 구내에 '아동문화관' 有.

이 문화관엔 '소년 영웅 모로조프'를 기념하는 코너 有.


백남운은 여기서 모로조프를 

'소년이 아비가 대지주 잔당과 공모해서 국가 시설을 파괴할 음모를 꾸민 걸

알게 되어 당국에 신고했고, 소년은 보복으로 구 지주 잔당들에게 피살당했다'란 식으로 서술.

(ㄴ아마 소련측 선전을 그대로 옮긴 듯)


ㄴ ㅋㅋㅋㅋㅋ모로조프....이 일을 저렇게 소개하다니...이거 원.

이렇게 왜곡을....아마 이런 모로조프 기념시설이 당시 소련 전역의 탁아소.유치원 등에 다 있었나? 

하....도대체 뭘 배울지...근데 과연 무슨 효과가 있었나?


ㄴ TMI - 모로조프 실체.

흔히 '공산권에선 애들이 부모도 "울 아빠.엄마 반동분자예요"라고 신고해버린다'란 전설 있지? 

그 전설의 원조(?)가 된 소년.

인터넷 검색하면 이에 대한 얘기가 여러개 있는데....

여기선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이종훈,권형진 편, 휴머니스트, 2005)에 나온 걸 정리, 소개함.

(오래전에 봐서, 기억에 의존한 것이므로 틀릴 수도)


ㅅ 어느 아버지가 늘 술에 쩔어 생활. 화가 난 엄마가 홧김에 아이(모로조프)에게 

"네 아빠가 반동분자라고 파출소에 신고해!"라고 말함.

ㅅ 9살(10살?)이던 모로조프가 순진하게도 그대로 실천. 

당시 숙청 분위기 일색이던 소련 경찰은 그대로 아버지 잡아감.

아마 고문하고 사건을 만들어낸 뒤 수용소 보낸 듯. 사실상 사망...?

ㅅ 이에 아버지 쪽 친인척들이 분노, 모로조프를 죽임.....(막장!)

ㅅ 결국 아동 피살 사건이 경찰에 신고 접수. 경찰, 그 가해자들을 잡아들임.

일부 범인들은 마침 한겨울에 썰매 타고 도주, 얼어붙은 베링해 건너 미국 알래스카로 망명.

(그 마을이 시베리아 극동, 거의 미국 쪽이었다고)

ㅅ 소련 당국이 이 실체를 파악하자 가해자들은 당연히 사형.

임시 강당급의 큰 법정을 만들고 야외 스피커를 설치하는 특별법정을 꾸며 대대적으로 공개 재판한 끝에 사형 선고.

ㅅ 인민들은 일단 당국의 의도대로 이끌려 감. 크게 분노. 

ㅅ 또 당국은 모로조프를 소년 영웅으로 크게 띄운 것. 동상 세우고, 초상화 만들고....그리고 백남운 기행문에 나온 바, 기념시설도 만들고....


ㄴ 겨우 이랬던 게 모로조프....휴.....




- 3월16일 20시 연회. 양측, 특히 소련측 고위 인사 다수, 대대적으로 참석. 200여명.


-이 자리에 박헌영의 장녀 '비바' 양이 참석.(그녀는 북측 대표단이 관람한 어느 공연에서도 출연.)


ㄴ 박헌영과 소련서 무용가로 성장한 비바 씨의 사연도 참....에휴....(이 사연은 각자 검색 요)




- 3월17일 아침. 눈 내림. 모스크바 거리에서 본 소년들의 '눈싸움 장난질' 묘사.(근데 그 장난질 수준이 좀 심각?)

[ 남자애들이 길에 지나가는 처녀.소녀들을 향해서만 마구 눈덩이 던짐.

여성들은 그걸 맞고 무시하고 지나가든가, 응수(대항해서 눈덩이 투척?)하기도 함.

근데 남자애들은 만일 응수하는 기색이 나오면, 마구마구 눈덩이 투척 맹공을 함. ]


ㄴ 이거 괜찮나? 묘사된 것만 봐도 좀 심한데.

지금 한국사회라면 경찰 부를지도. 기타 외국에서도 경찰 부를 수도.

미국이라면 총기난사 유발 사유?

더구나 저 남자애들이 성인남성에겐 저런 짓을 한단 묘사 無.

소련 남자애들이 '강약약강'이 심한 것 같은데....


요새 인터넷의 '러시아 밈'들을 보면, 러시아 사회가 폭력 요소가 생활 곳곳에 녹아든 것처럼 뵘.

이런 풍조가 그 옛날부터 있었던 거?


ㄴ 한편, 이 기행문 필자 백남운의 태도도 가관임.

[ 소년들의 이런 눈싸움은 눈의 나라, 북국 소련에선 자연스러운....

소년들의 투쟁정신을 존중코자 처녀들도 성인다운 관용으로 용인...

소련에서 이건 소년들의 투쟁성을 상징하는 특권인 듯... ]

.....뭐 이 따위로 묘사. 이런 것조차도 찬양조이니....ㅊㅊㅊㅊ

참....소련에 단단히 빠졌던 거? 

'소련 소년들 싸가지 없다'고 비판할 자유가 없었나?



- 그날, 19시. 소련 외무성 가서 '경제.문화협정' 조인.

백남운, 이 협정에 관한 의의 길게 서술.

동시에 남한에서 맺어진 '한미협정'을 맹비난.

'제국주의적으로 옭아매는 협정...' 운운.


ㄴ 걍 북한-소련 협정의 의의만 서술했으면 그러려니 했겠는데....

한미협정 비난 대목은, 생략할 수도 있던 것 아닌지?

1950년 1/4분기(원서 출간 시점) 시점에선 남한을 맹비난해야만 평양에서 사회생활이 가능했던 거?

백남운이 남쪽 출신이다 보니, 충성경쟁을 하려고 한미협정을 맹비난?



- 조인식 후 크렘린으로 이동. 21시05분부터 스탈린 등과 함께 연회.


이때. 스탈린은 격려사(?)를 하면서 거기 참석한 일부 소련 인사들을 특별히 거명하며 북측에게 소개해줌.

그들은 농촌경제 전문가, 경공업 정치위원, 소련 육군총장, 극동지역서 근무했던 해군 제독 등.


ㄴ 농업, 경공업 전문가야 당시 북측이 필요로 하던 분야(인재)이니...스탈린이 이들을 직접 소개해준 의의를 해석할 수 있을 듯.


이 책을 해제.분석한 방기중 교수는 이 대목이 나름 중요하다고 지적.

[백남운이 양측 정상회담에서 군사 문제 얘기 나온 걸 보안상 생략했지만(6.25 전쟁 준비 공작?), 

스탈린이 장성.제독을 소개해준 대목을 기록하면서 '간접적인 메시지'를 남긴 거]라고.


하긴, 정상회담 연회에서 한 쪽의 지도자가 고위 군인을 찍어서 소개해주는 게...보통 의미이겠나?

더구나 당시 국제 역학 관계, 시국 등을 생각하면...



-  연회 종료 후 일행은 크렘린 내에 있는 영화실로 이동.

영화를 볼 즈음에, 연회 참석 예정이었던 소련측 인사가 뒤늦게 당도한 듯.

스탈린이 그 지각자를 소개해줌.

"아까 소개하려 했는데 없어서 못했다. 여러분, 공군총사련관 웨르시닌 동지입니다."


- 한편, 스탈린이 외무상 위신스키에게 "영화 필름 준비 어케 됐소? 어서 하시오"라고 재촉.


ㄴ 여기서 볼 것!

스탈린이 지각한 공군 장성을 뒤늦게라도 북측에 소개한 거 보니....

앞서 말한 '장군.제독 소개의 의미'와 결부시켜 볼 수.

양측이 '군사 문제에 공통 관심사가 있다'는 거. (6.25 준비 공작?)


ㄴ 한편, 제일 ㅎㄷㄷㄷ한 거.

스탈린 임석 자리에 지각자가 있었단 거....

그리고 스탈린이 볼 영화의 준비가 지연...? ㅎㄷㄷㄷㄷㄷ


공포정치의 스탈린 시대 맞나?

공군사령관 웨르시닌은 나중에 별 문제 없었나?

사전에 '지각 예정'이라고 보고했다면, 지각 사유가 중대한 공무 때문이거나

불가항력의 사안이었다면...스탈린이라도 봐 주나?


영화 필름이 약간(?) 지연된 건 무슨 일?

실무적.기술적 문제 때문? 만일 그랬다면 실무자(영사 기사?)는 과연 나중에 무사...?



- 영화를 4편이나 봤다 함. 

소련의 집단농장, 경승지 등을 소개한 영화인 듯.

모두 3시간30분 소요. 일정 다 마치니 3월18일 01시20분이 됨.


ㄴ 북한 등지에서 영화.공연 등을 매개로 한 외교활동을 많이 하는 거 같은데,

이게 다 이때 배워 온 거?

스탈린 시대(혹은 소련식) 외교 방식?




ㅁ 3월20일 21시. 

모스크바->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 이동.


ㅁ 3월21일 11시30분에 레닌그라드역 착.



- 3월22일~3월24일. 레닌그라드 곳곳 견학.

(ㄴ 무슨 패키지 관광?)


ㄴ 에르미타주 박물관 구경한 대목은 좀 부러움...근데 진짜 주마간산 격으로 봤는지, 

자세한 감상담 대신 무슨 유물 목록만 나열.

혹시, 박물관 도록을 제공 받아서 나중에 걍 기행문에 그 목록을 옮겨 쓴 거?


ㄴ 소련 측은 제정러시아의 유물, 특히 황실 관련 유물을 천대하진 않고 잘 관리.

이걸, 어케 해석하나....?

소련 공산당들도 이전 봉건시대의 유물을 마냥 버릴 생각은 못함?


백남운 개인적으로도, 혼란(내적 혼란, 정체성 혼란)이었던 듯.

박물관의 각종 유물이 화려해서 그 느낌에 빠지다가도, '이 유물.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황제가 백성을 착취....'

이런 말들 종종 삽입.

참....이 혼란을 어케 보나? 무슨 아이러니?




- 3월24일. 레닌그라드 국립소아과의대(+부속 어린이병원) 방문.

이 의대는 여학생 비중 高. 여초 학교.


ㄴ 근데 이 학교, 나름 유명한 듯. 지금도 일부 유학원들이 이 학교 소개해주는 듯.

러시아어 잘하는 이라면, 의대 지망자라면 욕심낼 만한 곳인가?


한편 이곳 분위기나 설립 의의 등을 보니....

북한이 자랑한다는 '평양산원'이 연상된다면...착각인가?

북측이 자랑하는 평양산원, 이걸 벤치마킹한 거...?

물론 북측은 평양산원을 혹부리 영감의 '큰 뜻, 배려, 큰 콘셉트'로 지은 거라 선전하지만, 어쩐지....좀.




ㅁ 3월25일 15시45분. 레닌그라드 출발, 귀국길.

2차대전 때의 '레닌그라드 포위전'의 흔적이 그때까지도 有.

철도 주변으로 토치카, 파괴된 철교가 있었다고.


ㅁ 4월5일 18시30분 보로시로브(현 우수리스크) 역 착.


ㅁ 보로시로프부턴 비행기로 평양까지.

4월6일, 악천후. 비행 불발. 대기.


ㅁ 4월7일 13시45분, 이륙.

17시에 평양 착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