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에 헤밍웨이 책 세권을 구입함. 노인과 바다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2.
나는 그때까지 살면서 헤밍웨이 작품 하나(단편조차도) 읽어본 적이 없는 교양없는 인간이었는데 누가 레딧에서 매카시--본인은 매카시를 아주 좋아합니다--가 헤밍웨이로 부터 문학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거기에 혹해서 헤밍웨이나 한 번 파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후기작 두 권을 그렇게 사버림.
일단 헤밍웨이 필생의 역작이라 여겨지는 노인과 바다부터 읽기 시작함. 이때부터 슬슬 좆된걸 감지함. 왜? 존나게 지루한데 세권 다 이북으로 사서 중고로 팔수가 없거든... 그래서 억지로 꾸역꾸역 계속 처읽음. 이새끼 계속 같은말 반복함.
노인고물이물낚싯줄인광노인고물이물낚싯줄인광노인고물이물낚싯줄인광
다 읽고 어떻게 이딴 작품으로 노벨상을 받은거지? 라는 의문을 품고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넘어감
와 시발... 노인과 바다는 선녀였음. 일단 이 책에서 가장 에미뒤진 부분은 로버트조던(남주)이랑 마리아(여주)가 xx하는 장면임. 둘이 xx 중에 나누는 대화가 너무 오그라들어서 도저히 한번에 읽을 수가 없어서 책을 도중에 몇번이나 내려놓았다가 헛구역질이 가라앉을 때쯤에야 다시 억지로 집어들며 읽어나감. 다 읽고 안도의 한숨 내쉼. 소설 타임프레임이 4일인데 설마 또 하지는 않겠지? 다리 폭파하려면 다른 할일도 많을텐데 말이야... 응 아니야~ 매일같이함... ^_^ 아니 뭐 내가 이걸 여친없어서 삐뚤어진 시각으로 보는게 아니라 일 치를때마다 대사가 너무 오그라드는걸 어쩌라고 ㅡ_ㅡ
마리아 이 여자는 진짜 무슨 픽션 속 수동적인 여성들의 스테레오타입들만 모아놓은거같은 진짜 스테레오타입의 결정체임. 마리아가 상당히 아름답게 묘사되는데 내가 마리아 같은 여자 만나서 키스하는데 다짜고짜 저딴 소리 늘어놓기 시작하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서 "저리꺼져 이 멘헤라년" 하고 바로 도망칠듯, 아무리 예뻐도. 내가 다른 여자한테 웃으면서 인사만해도 "그래요. 저는 성폭행 경험이 있는 더러운 여자라서 이제 당신 맘에 들지 않나보군요. 나는 그래도 당신을 사랑해요." 하면서 내 면전에서 숨겨놨던 면도칼로 자기 손목 그어버리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거 같은 그런 바이브가 마리아에게서 느껴짐.
글고 그 아줌마--내가 이름을 까먹었당--는 자기 못생겼다면서 틈만나면 히스테리 부려대는데 이것도 존나 오그라듬. 시발 전쟁통에 왜 그딴 소리를 계속하는거얌...
이 아줌마 포함해서 모든 조연들은 어디에선가 한번쯤 본거같은 개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그저 미국인 주인공 후빨하기 위한 도구들일 뿐임. 심지어 주인공마저도 궁극의 스트레오 타입. 파블로 이 에미터진새끼가 폭발장치 버리고 돌아오니까 그냥 용서해줌.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작전 중에 언제 돌발행동 할지 모르는 새끼를?
해당 작품을 헤밍웨이 삶과 병치시켜 보았을 때 상당히 자전적인 면이 있는데 이걸로 왜 작품 속 인물들에게서 그토록 입체감이 결여되어있는지 설명이 됨. 헤밍위에 이새끼는 진짜 자아가 무슨 피레네 산맥보다도 드높은 새끼임. 이새끼 성격과 인생사에 대해 상술하기 귀찮으니 자세한건 나무위키 참조. 오로지 나 나 나나 나나 나 나 나 나 나 밖에 없는새끼다 이거임. 그리고 이 유아독존의 자아가 전혀 여과되지 않은 채로 작품에 반영이 된거고.
결론: 노경의 헤밍웨이는 술쳐먹고 고주망태가 된 후 지 한창 때 회상하며 자아도취에 빠져 글을 썻던 몹시 과대평가된 작가. 왜 포크너가 이새끼 병신취급한지 알것같다.
노인과 바다 걸작인데... 장편 안맞았으면 단편 읽어보셈 단편도 존나 잘쓰는데
노벨상 받은 작가가 과대평가면 대체 누가 인정받아야 하나~
원스턴 처칠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이 거기까지다
난 노인과바다 읽고 울었는데
매카시가 통탄하겠노...
노벨상 받았거나 말았거나 내가 별로면 구린거 맞다, 솔직한 감상평 잘봤다
중딩인가
오랜만에 속이 다 시원~~노인바다 빼고 진짜 다
해류속의섬들 괜찮음
용기잇는발언칭찬해 - dc App
ㅇㅈ 나도 노인과 바다 읽고 딱 이생각했음
나도 헤밍웨이 ㅈ구리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자아가 비대해서 구리다는 건 좀 이해 못하겠다. 애초에 영미문학이라는 풍토에 나르시시즘적인 작가 자체가 아주 드물다. 더군다나 그 시기로 가면 나보코프 정도의 이방인 아니면 아예 없지. 자아가 비대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아가 없다. 니가 비대하게 느낀 건 헤밍웨이의 자아라기보다는 패권국 국민 특유의 정체성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