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a7d6deec9


"예술에 대한 최고의 강독은 예술이다." 제프 다이어가 인용한 이 구절은 재즈라는 장르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다. 매일 밤마다 반복되는 즉흥 연주 속에서 연주자들은 스탠다드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다가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한 곡 속에서 다른 곡들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그 다른 누군가의 연주를 주석처럼 삼는 것도 곧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이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마치 피인용 지수처럼, 가장 많은 이들의 헌사나 인용을 받는 연주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순서의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그렇게 발견한 "원류"는, 자신의 흐름을 받은 수많은 연주자들의 유사성에 파묻혀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보다도 훨씬 더 서로 주고 받으며 조금씩 달라지다가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변하는 과정이 유동적인 재즈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결국 우리는 어딘가에서 출발점을 잡아야 한다. 재즈스러움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 치열한 발전과 고뇌가 이어지던 당시에, 그 재즈 연주자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며 겪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시작한 선율이 어떻게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도 여전히 동일한 감정과 동일한 갈등 속에서 새롭게 창조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그 안의 감정이 여전히 진실될 수 있는지를 느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순한 배경음악으로서의 재즈와 일종의 파인 아트로서의 재즈, 두 갈래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현재의 재즈를 접할 때 자주 잊는 것이지만 그 원류에는 늘 이런 방식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애수가 있었다. 그 애수는 도시 생활, 약물 중독, 인종 차별, 그리고 그 밖의 연주자마다 다 다를 개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지만, 표현되는 문법은 모두 엇비슷했다. 그것이 재즈의 신기한 매력이기도 하다.



찰스 밍거스나 오넷 콜먼이 그의 폭발하는 감정이 담긴 '블루스'를 재즈의 형태로 빚어내는 것이 좋은 예시가 될지도 모른다. 듣는 이들에게 더 이상 블루스로는 들리지 않는 이 재즈에는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이 블루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 담겨 있고, 그 폭발적으로 달려오는 음표들의 아래에는 여전히 낮게 깔려 이 외강내유스러운 음악의 속내를 표현하는 애수가 있다. 연주의 기교만으로는 꺼내올 수 없는 이 감정을 우리가 느끼며 진정으로 감동받았을 때, 일종의 헌사로서 우리는 침묵한다. 우리가 우리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청각적 표현을 받았으매, 그것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이전의 침묵과 그것이 지나간 뒤의 침묵은 전혀 다르다. 후자는 우리에게 공백의 인상을 주고, 박수가 쏟아지기 전까지의 그 침묵 동안 우리는 우리가 방금까지 무엇을 들은 것인지를 생각한다.



약간 아쉬운 점은 이 책에서도 한 챕터를 할애하는 쳇 베이커를 여전히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는 점이다. 늘 그의 연주나 음반은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하곤 하였고, 그가 우리에게 표상하는 어떤 상처 받기 쉬운 연약한, 쪼그라드는 천재 약물 중독자 연주자 이미지에 딱 들어맞았을 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다른 이들이 여기에서 무엇을 느끼는지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대신 밍거스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단지 음악에 대한 인상만이 아니라, 그 음악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인격적 요소들 자체에 음악에 대한 호불호와 연결되는 호불호가 있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구나,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