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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간이 마침 남아 당근마켓에서 산 인간실격을 읽었다.
어릴 때 제목력에 의해서 당시 우리 그룹에서 인기였던 책이었어서 재독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랑 다르게 읽히는 부분이 많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1.
처음부터 신기한 구절이 시작된다.
'나는 배고픔을 모른다. 그래서 식사시간은 내게 아주 곤혹한 일이었다.'
어려서 읽었을 때 이 문장은 요조에게 오히려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었다.
마치 요조의 '특별함'을 보여준다고 느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자마자 책에 집중하게 되기도 했고.
하지만 다시 보니 요조의 결핍을 보여주는 문장으로 보인다.
배고픔을 모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평범한 인간 사이에서 곤란함을 겪는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가령 당신이 색맹이라면, 누군가는 그것을 지적해주고 따라서 당신은 그 결핍을 이해하고, 당신의 설명으로 당신의 결핍을 이해하게 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배고프다는 당연함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아무도 그 당연함에 대해서는 지적해주지 못한다.
말하자면 요조는, 결핍있는 존재이되 이해받지 못해 박해받는 존재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배고프다는 것은 또한 생명으로서 '간절히 섭취를 갈구하는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욕심없는 인간...
2.
실제로 작중에서 요조는 상호작용을 겪지 못한다. 그는 인간관계에서의 감정의 불편함을 무마하기 위해
오로지 주변 사람을 웃기려고 한다.
이해하지 못할 존재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는 존재, 그것은 그의 방어기제이면서 또한 만족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 웃고 있을 때에만 안심했으며, 웃고 있을 때에만 기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능력은 타인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또한 공감능력이 결여된 자신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게 당연한 '타인'의 기쁨을 기뻐하는 존재.
작중 나왔던 대로 요조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다.
3.
요조의 첫째 결핍이 배고픔, 둘째 결핍이 인간 감정에 대한 공감의 부족이라면
세번째 결핍은 인내심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편리를 거부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가 결국 알콜의존증에 마약중독까지 이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 요소들, 배고픔, 공감능력, 인내심
치환하면 타인에 대한 공격본능(자신의 사정에 의거한), 타인에 대한 방어능력, 자신에 대한 방어능력
4.
앞의 둘은 만인에게 당연한 것이라 요조가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것임이 드러나고
자신에 대한 방어능력이 없는 자는 사회에서 지탄받기 떄문에 요조는 오직 세번째 그의 결핍에 의해 전적으로 지탄받는다.
그의 운명은 군중 속의 고독과 박해라고 할 수 있겠다.
5.
하지만 그를 사랑해주는 존재는 언제나 여자들이다.
매춘부는 욕심없는 존재로서 그에게 편안함을 줬고
작중 그와 이어지는 여자들은 모두 그에게 바라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들은 모두 요조가 자해하듯 살아가는 것을 막아낼 능력 또한 없었다.
'타인이 그 자신을 방어해내기를 바라고 그것을 하게 만든다'라는 것도 인간 사회에서의 인간의 조건이라 할 수 있을까.
'바람'은 그에 대한 사랑이고 바람을 가지고 '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랑인데 작중 요조와 얽히는 여자들은 모두 '바람'만 가지고 있다.
요조와 얽힌 여자들 또한 요조만큼은 아니지만 공격과 방어능력이 부족한 '인간 실격'들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들이라 작중에서 요조와 얽힌 여자들은 매춘부, 사기꾼의 아내(요조와 동반자살 시도), 미망인(요조로 인해 가정경제가 기울어짐), 의심하지 못하는 존재(성폭행당하고 요조의 눈치를 보게 됨)로 타인에게 피해를 받는다.
그래서 서로 통한 게 아닌지.
6.
작중에서 오직 '미망인'만이 요조가 그 해악을 끼치기 이전에 '선한' 모녀를 자신으로 부터 지키기 위해 스스로 도망가버려 살아남은 존재이다.
아마 그들의 선함이 타인의 공격의사를 굽히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무엇이 아니었을까.
미망인만이 요조가 그런 존재임을 알면서도 받아들인 '관용'이 있던게 아닌지.
인간실격이라 함은 요조와 여자들뿐 아니라, 작중에 등장하는 존재들이 모두 타인을 지배하려든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의미의 인간실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악'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요조와 여자들이 인간실격이지만
'선'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그 외의 존재들이 모두 인간실격이다.
'선'과 '악' 모두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던 타인의 해로움을 직시하면서도 받아들인 미망인, 그리고 그 선함을 이어받는 그의 딸만이 작중의 '선'과 '악' 모두에게서 존중받을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7.
죄의 반대되는 의미는 벌. 작중에서 그 둘은 절대로 통할 수 없다고 요조는 통찰한다. 따라서 벌은 죄를 감화시키지 못한다.
죄를 감화시키는 것은 아마 관용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관용을 통해 죄인은 벌을 욕구하게 된다. 그게 죄와 벌의 내용이기도 하고 또한,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인간실격을 썼던 게 아닌지.
관용이 없는 사회에서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당연함을 타고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요조처럼 '역겨운 광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ps. 읽는 내내 정신 건강에 해로운 소설이었다. 패션으로 이걸 읽기엔 너무 헤비한 게 아닌지.
일문학은 정서에 대체로 안좋은듯.. 예전에 문학동네 모 소설 번역책 읽은적 있는데 그것도 진짜 멘탈 나가게 했었는데 미친듯이 예쁜 여자가 여학교에서 유부녀를 친구로 사귐 그러다가 레즈짓함 -> 유부녀 남편이 분노함 -> 예쁜여자가 부부를 쌍으로 가스라이팅하며 몰락시킴 ㄷㄷ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