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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관련 근간중에 가장 신빙성 있는 저자가 쓴 책이라 생각해서 꼭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책이었다.

대학에 다닐때는 북한 통일관련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이 책에도 기대감이 높았는데 졸업하고 현실에 찌들어서 이 책을보니 예전만큼 흥미가 있지 않았다.  독서라는 것도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되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루한 일상에 북한문제나 과학같은 현실과 관련없는 내용의 책을 읽는것이 여행과도 같은 재충전의 기회를 줄수도 있다고 느꼈다. 전반적으로는 예전만한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몇몇부분에서는 큰 흥미를 느꼈고 현실과는 다른 여행을 떠나는듯한 기분좋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 기록해본다

1. 책의 구성에 대해서

회고록치고는 꽤 묵직한 분량에 관료특유의 짧고 정확한 문장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읽기가 힘들었다. 보통 학술서적같은걸 주로 읽나보니 단문으로 길게 쓰여진글이 너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은 9장이고 크게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태영호공사의 외교업무에 대해서 나와있고 2부는 그의 개인적인 삶과 통일관련 미래에 대한 그의 청사진이 나와있다.

1부는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앞 4장은 김정일시대 뒤 2장은 김정은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1부를 읽으며 느낀점은 이 책은 그야말로 '아는만큼 보일수 있는' 책일거라는 것이다. 책 제목이 3층 서기실의 암호인 것과 같이 이부분의 내용은 외교안보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북한체제에 대한 핵심정보를 캐치할수 있는 '암호'들이 많다고 보여졌다.

1부에서는 김정일 김정은 정권을 거친 북한 최고수준의 외교관이 해온 업무들에 대한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기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대단히 높다. 특히 외교업무의 경우 정식적인 군사충돌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힘든 북한의 국력상 가장 총력을 기울여서 해내야 하는것이고 그 업무의 최일선에서 근무했던 외교관의 증언은 너무나 값진것일 것이다.

그의 증언들은 구체적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그의 행동에 대해 말하고있기 때문에 역사흐름을 알고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의 외교활동을 이해할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어느정도 한국 현대사에 흥미가 있는 독자들이 대상이 될것이다. 또한 북한외교의 전략과 인원구성에 대해 구체적인 힌트를 얻고자하는 전략가들에게 큰 도움이 될것이다. 그는 비단 대중서적 뿐 아니라 전략연구소 등에서도 귀하게 쓰여야할 최고급 재원이다.

북한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주요한 쟁점이되는 사건에 대해서 그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고 그 정보는 논란의 종결에 도움이 될것이다.
구체적으로 2차핵위기 당시 캘리 미국대표에게 강석주가 한 수소폭탄 발언에 관한 내용과 천안함사건에 대한 북한 내부의 입장, 김대중대통령의 당선이 북한의 대남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그의 입장은 지금까지 논란만이 무성했던 대북안보정책에 큰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것이다. 결국 문제의 해결에는 문제가 되는 발언이 무엇인지 팩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의 진위가 중요한데 태영호의 발언은 나름대로 정확한 근거에 바탕했다고 보여진다.

2부는 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태영호 본인의 일대기와 그가 말하는 통일전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선 태영호는 본인의 일대기를 통해 북한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조부의 경험을 기술하며 빈부의 차이가 능력의 차이가 아닌 당에대한 충성의 여부로 결정되었던 것. 비교적 평범했던 본인이 성공하면서 느껴온 북한 사회의 계급구조. 그리고 시골출신이던 본인 가문에서 평양과 지방의 격차가 커지며 느낀점. 북한체제의 안정기에서 성장해온 자신과는 달라진 자식세대의 가치관을 보여주며 태영호는 본인의 가정을 통해 북한정권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려 하고있고 똑똑한 사람답게 그의 서술은 대단한 설득력이 있다.

통일전략에 대해서는 그는 본인의 가치관 변화와 자식세대와 일반적 여론에 변화에 따른 '북한은 노예제 국가이고 통일은 노예해방사업'이라는 논지에서 운동을 이끌어가려 한다. 그는 뛰어난 논리력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협상을 이루어낸 외교관이다. 그의 통일전략에도 설득력이 있다고 느켜졌다. 그는 통일을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인한 흑인해방에 비유하고 있다.

2. 저자 태영호에 대하여

짧은 문장으로 쓰여진 긴 책을 읽으며 지루하기도 했지만 나는 태영호라는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매력을 느낄수 있었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수있는 사람이기에 비교적 평범한 가문임에도 북한 외교의 최일선에서 활약하며 많은 전공도 세울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애국적인 사람이었고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애민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해왔던 외교활동을 살펴보면 그가 북한인민을 위해 따틋한 마음을 가지고 고군분투해왔다는 것을 알수있어 마음이 찡해졌다. 또한 함께 일해왔던 동료들에 대한 애정과 공화국에 대한 그의 애증의 감정이 책 곳곳에 드러난다. 물론 그가 최고수준의 외교관이 된것에는 그의 지력이 중요했겠지만 뛰어난 지성의 기반에 따뜻한 감성이 있었기에 그의 업무가 지속적으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화국을 위한 최전방에 서는 전사였지만 결국 자식에 대한 사람과 인권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뇌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탈북을 택하게 된다. 그가 탈북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북한 최고위 권력층에 올랐을것이 자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해온 외교활동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한다. 북한 외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수있는 대영외교에서 그가세운 전공은 대단했고 김씨부자의 결정에도 은근히 영향을 미칠수있는 뛰어난 재략가였다. 하지만 그렇듯 뛰어난 인재도 자식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비자유와 공화국이 본질적으로 타락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차라리 남한에서 세탁소라도 차리겠다는 각오로 탈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권력을 추구했다면 굳이 탈북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애뜻함과 인권에 대한 그의 고뇌가 잘 느껴졌다.

그에게 나는 인성측면에서 많은 매력을 느꼈지만 그는 분명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우선 그는 영어를 전공해서 각종 통역업무등을 수행하며 각종 외교전쟁에서 선봉에 설수 있었다. 또한 사상과 실리의 충돌에서 효율적인 대안을 결정하는데 천재적인 능력이 있었다. 그의 업무를 보고있자면 이상적인 외교관이 무엇인가에 대한 교과서를 보는듯 했다.

3.김씨 왕조에 대하여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하나는 김왕조를 중심으로 체제의 통제력을 살펴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을 중심으로 사상적 변화를 살펴보는 방식이다. 물론 두 접근방식이 어느정도 겹치기는 하지만 어느부문에 중심을 두느냐는 다를것이다. 보통 정치외교적 접근에서는 정권위주의 분석을 할것이고 사회경제적 접근에서는 사회상을 볼것이다. 태영호는 외교관으로서 주로 김씨왕조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보필한 왕은 김정일이다. 김일성의 경우 독서와 어른들의 이야기로 전해들었을 것이고 김정은의 경우 중도 탈북해서 현재는 모시는 대상이 아닌 분석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는 김정일과 김정은의 분석을 주로 할애하고 있다.

김정일에 대한 태영호에 평가는 극과극을 오간다. 외교에 대해서 김정일은 당시 북한외교를 총괄하는 천재라고도 불리던 강석주보다도 뛰어난 통찰력을 가끔 보인다며 혀를 내두른다. 홀로 수십년간 직접 외교를 총괄하며 생긴 관록은 전세계 어느 외교관도 따라올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판단력이 북한의 어느 외교관보다 뛰어났으며 그의 결정으로 살얼음판과 같은 대미외교를 해쳐나간 경험을 말하며 김정일의 능력을 경외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김정일은 북한사회를 봉건노예제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며 큰 분노를 표한다. 과거 김일성 통치기에는 북한 사회에도 토론문화가 있었고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적었으나 김정일 통치기가 되면서 토론문화대신 모든 정보가 김정일 개인에게만 독점되었고 그는 지방통치를 포기하며 북한은 평양이 아니면 지옥과도 같은곳이 되었다. 또한 그는 본격적으로 주민들을 충성분자와 반동분자로 나누고 사상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주민의 노예화를 가속화시켰다.

김정은에 대해서는 태영호는 이 체제가 무너지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보고있다. 첫째로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혈통적으로도 기반이 미약하고 체제를 통제할 시간이 부족했다. 둘째로 김정일 시대와는 달리 정보는 더이상 통제될수 없고 주민의 사상통제는 이미 유명무실화 되었다. 태영호는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이 김정은의 마지막 카드였고 더이상 김정은이 꺼낼 공포정치의 카드마저 남아있지 않다고 보았다. 또한 김정은이 기댈 마지막 생명줄은 핵이기에 이를 절대로 포기하지 못한다고도 보았다.

김씨왕조의 적통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김정철과 김정남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김정일부터 해서 김씨가문은 전반적으로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것 같다. 김정철이 영국에서 기타를 사려고 고군분투한 이야기나 김정남도 예술에 조예가 깊다는 사실도 흥미가 있었다. 김정남의 경우 김정은의 배다른 형제로써 한 하늘을 지고살수 없었고 많은사람이 걱정하듯 살해되었다. 장성택의 처형도 그가 김정남을 지지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4. 북한 사회에 대하여

그의 분석은 주로 외교에 관한 것이지만 통일에 대한 그의 전망에서 그는 북한사회 내부의 변혁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김정은의 통치방식은 사상통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로 한국산 드라마 등을 직접적으로 보는것만을 통제하고 있는 상태라고 하고있다. 그나마 이마저도 사실상 실패했다고 한다.

북한사회의 변동은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그는 보고있다. 첫번째는 장마당의 발전이다. 권리는 한번 준 이상 빼앗을수 없다고 보고있다. 사실상 김정일 정권때부터 북한주민들은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드렸으며 경제권을 건드릴경우 최고존엄에게도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정일 역시도 화폐개혁에 대한 주민의 직접적 저항에 매우 놀라는 모습을 보였는데 오늘날의 장마당은 더욱 통제불능일 것이다.

두번째는 종교의 자유이다. 북한정권은 공식적으로는 평양에만 통제가능한 교회를 두고있으나 종교가 퍼지는것에는 극도로 반대한다. 시장과는 다른방향이겠지만 종교라는 가치 역시 김씨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약하게할수 있는 강한 위협이고 이 추세또한 장마당과 마찬가지로 북한이 통제하지 못할것이라고 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