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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의 호메로스 매니아 "제임스초이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카넷판 일리아스 도착!


슬쩍 훑어본 첫인상은, 펀딩을 통해 홍보했던 대로, 표현이 천병희역에 비해 상당히 직역투라는 것.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보인다.


대체로 장점으로 생각된다.


일례로 1권 46행-53행


<그가 움직일 때마다 노기 서린 두 어깨에서는 화살들이
귀청을 찢는 비명을 내질렀으니, 그는 마치 밤과 같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배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아 그들에게 화살을 날리자
은으로 만든 활에서는 살벌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먼저는 노새들과 재빠른 개들을 덮친 다음,
사람들을 겨누어 날카로운 화살을 쏘아 맞히니
화장터는 매일같이 시체들로 발 디딜 틈 없이 타오르고,
신의 화살은 아흐레 동안 온 진중을 누비고 있었다.>
(이준석역)


<......그가
움직일 때 성난 그의 어깨 위에서는 화살들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가 다가가는 모습은 마치 밤이 다가오는 것과도 같았다.
그가 함선들에서 떨어진 곳에 앉아 화살을 날려 보내자
그의 은궁에서 무시무시한 소란이 일었다.
처음에 그는 노새들과 날랜 개들을 공격했고
다음에는 사람들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화살을 쏘아댔다.
그리하여 시신들을 태우는 수많은 장작더미가 쉼 없이 타올랐다.
아흐레 동안 신의 화살들은 온 진중을 날아다녔다.>
(천병희역 구판(2007))


이런 구절에서 이준석역의 장점인 강렬한 표현력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다만 1권 113-120행 같은 부분에서 드러나는 단점은

<아닌 게 아니라 나는 내 본처 클뤼타임네스트라보다 그 소녀를
더 좋아한다. 생김새도, 발육도, 말귀 알아듣는 것도, 게다가
솜씨면 솜씨까지 전혀 뒤지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렇기는 하다만, 이러는 편이 정 더 낫다면야 내 다시 돌려줄 의향은 있다.
나야 군사들의 파멸 대신 그들의 안전을 원하는 사람이니까.
자, 그렇다면 나를 위한 명예의 선물이 당장 마련되어야겠소. 아르고스인들
중에서 나 혼자만 명예의 선물을 못 받는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니까.
여러분 모두가 보다시피 내 명예의 선물이 애먼 곳으로 가고 있잖소.>
(이준석)


<아닌 게 아니라 나의 결혼한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보다도
나는 그녀를 더 좋아하오. 그녀는 용모와 몸매가
그리고 재치와 솜씨가 내 아내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으니까요.
하나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면 내 기꺼이 그녀를 돌려주겠소.
나는 백성들이 죽기보다는 살기를 바라니까요. 다만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지체 없이 명예의 선물을 마련하도록 하시오.
아르고스인들 중 나만 혼자 선물을 받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소.
그대들도 보다시피 내 선물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으니 말이오.>
(천병희역 구판(2007))

생김새, 발육 같은 단어 표현에서 보이듯 거친 직역투가 드러날 때가 있는 듯하다.


잠깐 훑어본 인상은 전체적으로


1. 아카넷 신판은 전체적으로 무척 공들인 작품인 듯하고, 매우 뛰어난 듯하다. 그러나 천병희역의 완벽한 대체까지는 아쉽지만 불가능하다.


아카넷 신판은 표현의 투명함과 구체성 면에서 매우 큰 장점이 있으나, 그 언어의 리듬과 정교함이 천병희역에 비해 상당히 거칠게 느껴진다.


일례로 아카넷판 '나야 군사들의 파멸 대신 그들의 안전을 원하는 사람이니까.'에서 드러나는 아가멤논은 단순히 못 배운 양아치 새끼;;; 그 자체인데,


천병희역의 "나는 백성들이 죽기보다는 살기를 바라니까요."에서 드러나는 아가멤논은 품위 있는 개새끼;;로서 훨씬 입체적인 성격을 보여주며, 이 구절은 상당한 유머까지 내포하고 있다.



또한 아카넷판의



<자, 그렇다면 나를 위한 명예의 선물이 당장 마련되어야겠소. 아르고스인들
중에서 나 혼자만 명예의 선물을 못 받는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니까.

여러분 모두가 보다시피 내 명예의 선물이 애먼 곳으로 가고 있잖소.>



이 구절은 '명예의 선물'을 부자연스럽게 세 번 반복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천병희역의



<다만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지체 없이 명예의 선물을 마련하도록 하시오.
아르고스인들 중 나만 혼자 선물을 받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소.

그대들도 보다시피 내 선물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으니 말이오.>



이러한 표현과 리듬의 완성도는 얼마나 품위 있는 것인가. 이런 측면은 아카넷판이 천병희역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다. 천병희역 구판은 30년에 걸친 몇 번의 퇴고의 결과물이기에, 그 완성도를 능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2. 그러므로 아카넷 신판의 장점은 매우 강렬해진 부분부분의 표현력이라고 볼 수 있겠고, 단점은 전체적인 문체의 투박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카넷판의 표현은 부분들에서 천병희역을 능가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천병희역에 비해 상당히 거칠고 투박하다.


천병희역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히는 데 비해, 아카넷 신판의 문체에서는 강렬하지만 투박한 불협화음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부분적인 표현의 투명하고 격렬한 번역에 신경 쓰느라 등장인물들의 성격 등이 다소 투박하고 납작해진 측면이 느껴졌다.



8권 161-166행


<튀데우스의 아들이여, 빠른 말들을 모는 다나오스인들은 상석에,

살코기에, 가득한 잔으로 너를 누구보다도 더 높이 쳐주었지.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네놈을 업신여기리라. 너는 한낱 계집처럼 타고났으니까.

사라져버려라, 못난 꼭두각시 같으니. 네가 우리 탑에 오르고,

우리 여인들을 배로 싣고 가도록 내가 길을 비켜주는 일은

없을 거다. 그 전에 내 너에게 사신을 보내주마.>

(이준석)



<튀데우스의 아들이여! 준마의 다나오스 백성들은 윗자리와 고기와

넘치는 술잔으로 그대를 존중해왔다. 하나 앞으로는 그대를

경멸하게 되리라. 그대는 계집보다 나을 게 없으니까. 꺼져라,

비겁한 꼭두각시여! 그대는 나를 몰아내고 우리 탑 위로

기어오르지도 못할 것이며, 우리 아내들을 함선들에 싣고 가지도

못할 테니까. 그전에 내가 그대에게 운명을 보내주리라.>

(천병희역 구판(2007))



또한 아카넷판은 천병희역에 비해 시어 리듬의 진폭 자체가 다소 협소하게 느껴진다. 강약의 완급 조절이 다소 부족하여 강강강강으로 치닫는 느낌도 있다.


천병희는 단순한 '단지 최초의 번역자'가 아니라, 그 자신이 대단한 문장가였기 때문에 그를 능가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그리고 천병희역은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번의 퇴고를 거친 텍스트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기회가 닿아 필자가 신판을 책임지고 편집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어쨌든 아카넷 신판도 앞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정교하게 다듬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계속 더 나은 텍스트를 기대할 수 있을 터이다.



적절한 개정을 거친다면 신판이 천병희역을 완전히 능가하고 대체하기란 오히려 어렵지 않은 일일 수도 있는데, 신판의 어휘는 무척 화려하고 표현은 강렬한지라 단지 약간의 완성도가 부족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결정판으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호메로스 매니아라면 꼭 갖고 있으면 좋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