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의 주체론은 코기토를 비튼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는 말로 대표되는데, 라캉에게 있어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존재임
키시키시(kisikisi)2023-06-19 03:20
답글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라캉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먼저 요약해야 하는데, 라캉은 아기가 태어나 엄마에게 욕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의 이자관계를 형성하고, 그 이자관계를 훼손하는, 나보다 더 큰 페니스를 갖고(여아의 경우에는 내게 없는) 어머니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팔루스)를 가진 아버지를 질투하게 됨. 그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시작이고, 나 역시 어머니와의 이자관계에 기반한 상상계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질서(상징계)에 편입하게 됨
키시키시(kisikisi)2023-06-19 03:23
답글
상징계는 그 이름처럼 상징으로 이루어진 세계인데, 보통 '사회적 규약'으로 환유되는 개념임. 상상계에서는 내가 '언어가 아닌 상태'로 무엇이든 욕망할 수 있지만, 상징계에서는 그 욕망이 구체적인 상징으로 변하게 됨. "성공"이라는 욕망이 포람페, 비싼 집, 계좌에 쌓여 있는 돈 등으로 상징화된다는 거임. 근데 라캉에게 있어서 이건 '무의식이 욕망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욕망하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임.
키시키시(kisikisi)2023-06-19 03:25
답글
비싼 차를 타고, 고급 주택에 살고, 고연봉의 직업을 가진다는 게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니(= 타자의 욕망을 충족하니) 내 욕망과 다소 다르지만 그게 맞는 줄 알고 추구한다는 것. 이게 라깡이 말하는 "기표가 미끄러진다"는 이야기임. 기표의 미끄러짐은 이따 설명하고, 먼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결시키자면 가정 내에서 '규칙을 정하는 존재'인 팔루스는 아버지이지만 사회의 팔루스는 '합의?된 사회적 규약'이 되는 거임. 성공의 증명으로 표상되는 몇몇 대상들을 무작정 욕망하며 그것이 내 욕망이라 착각하게 되는 것
키시키시(kisikisi)2023-06-19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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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타자도 그런 미끄러진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관계" 즉 "타자와의 안정적인 관계"는 불가능하다는 거지. 왜? 진짜 욕망에 닿지 못하고 근처를 쭉 미끄러지니까. 라캉 철학?의 구조는 상상계-상징계-실재계의 위상학에 기반하는데 상상계(무의식에 기반한, 언어화되지 않은 욕망)와 상징계(언어화, 사회화된 욕망)를 넘어 존재하는 실재계(the real)는 상상계와 상징계의 틈새에 있는 무언가로 묘사됨. 실재계는 인간의 의식이 파악할 수 없지만 추구해야 하는,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 이데아와 접점이 조금 있는 걸로 파악해두면 됨(사실 나도 확실히 이해 못함)
키시키시(kisikisi)2023-06-19 03:30
답글
에크리(라캉의 유일한 저작)는 마지막에 '프로이트로 돌아가라', '코기토로 돌아가라'고 말하긴 하지만(= 근대적으로 로고스를 추구하라) 동시에 실재계(로고스와 유의어로 사용됨)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려고 노력하라는 말이긴 한데, 내가 봤을 땐 라캉 이 프남충쉑이 결론 못내고 뒈짖한 것 같음.
키시키시(kisikisi)2023-06-19 03:33
답글
정리하자면, 라캉에게 있어서 욕망하는 바는 인간이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지점이기 때문에, 성욕이란 일종의 욕망체계 역시 내 파트너를 욕망하는 것이 아닌 '상징화된' 파트너를 통해 '사회적으로 욕망되는 파트너를 욕망하는' 행위일 뿐, 그리고 그걸 나와 파트너 둘 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섹스(=성관계)는 없다" 그 자리에는 성행위만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임
키시키시(kisikisi)2023-06-19 03:34
성관계가 없었으면 너/나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게 아니라면
씹지랄이었을까?
坐藏之步藏之(61.77)2023-06-18 14:31
답글
바보 아냐? 당연히 처녀수태지
자마(dvg2040)2023-06-18 14:54
내가 못한게 이거때문이었네... 원래 없는데 귀신, 신 같이 있다고 사람들이 말만함. 실제로 본적은 없음
뮤슨 뜻인지 알려주라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말은 주체와 타자의 안정적인 관계형성이 불가능하다는 말임
라캉의 주체론은 코기토를 비튼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는 말로 대표되는데, 라캉에게 있어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존재임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라캉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먼저 요약해야 하는데, 라캉은 아기가 태어나 엄마에게 욕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의 이자관계를 형성하고, 그 이자관계를 훼손하는, 나보다 더 큰 페니스를 갖고(여아의 경우에는 내게 없는) 어머니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팔루스)를 가진 아버지를 질투하게 됨. 그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시작이고, 나 역시 어머니와의 이자관계에 기반한 상상계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질서(상징계)에 편입하게 됨
상징계는 그 이름처럼 상징으로 이루어진 세계인데, 보통 '사회적 규약'으로 환유되는 개념임. 상상계에서는 내가 '언어가 아닌 상태'로 무엇이든 욕망할 수 있지만, 상징계에서는 그 욕망이 구체적인 상징으로 변하게 됨. "성공"이라는 욕망이 포람페, 비싼 집, 계좌에 쌓여 있는 돈 등으로 상징화된다는 거임. 근데 라캉에게 있어서 이건 '무의식이 욕망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욕망하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임.
비싼 차를 타고, 고급 주택에 살고, 고연봉의 직업을 가진다는 게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니(= 타자의 욕망을 충족하니) 내 욕망과 다소 다르지만 그게 맞는 줄 알고 추구한다는 것. 이게 라깡이 말하는 "기표가 미끄러진다"는 이야기임. 기표의 미끄러짐은 이따 설명하고, 먼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결시키자면 가정 내에서 '규칙을 정하는 존재'인 팔루스는 아버지이지만 사회의 팔루스는 '합의?된 사회적 규약'이 되는 거임. 성공의 증명으로 표상되는 몇몇 대상들을 무작정 욕망하며 그것이 내 욕망이라 착각하게 되는 것
나도, 타자도 그런 미끄러진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관계" 즉 "타자와의 안정적인 관계"는 불가능하다는 거지. 왜? 진짜 욕망에 닿지 못하고 근처를 쭉 미끄러지니까. 라캉 철학?의 구조는 상상계-상징계-실재계의 위상학에 기반하는데 상상계(무의식에 기반한, 언어화되지 않은 욕망)와 상징계(언어화, 사회화된 욕망)를 넘어 존재하는 실재계(the real)는 상상계와 상징계의 틈새에 있는 무언가로 묘사됨. 실재계는 인간의 의식이 파악할 수 없지만 추구해야 하는,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 이데아와 접점이 조금 있는 걸로 파악해두면 됨(사실 나도 확실히 이해 못함)
에크리(라캉의 유일한 저작)는 마지막에 '프로이트로 돌아가라', '코기토로 돌아가라'고 말하긴 하지만(= 근대적으로 로고스를 추구하라) 동시에 실재계(로고스와 유의어로 사용됨)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려고 노력하라는 말이긴 한데, 내가 봤을 땐 라캉 이 프남충쉑이 결론 못내고 뒈짖한 것 같음.
정리하자면, 라캉에게 있어서 욕망하는 바는 인간이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지점이기 때문에, 성욕이란 일종의 욕망체계 역시 내 파트너를 욕망하는 것이 아닌 '상징화된' 파트너를 통해 '사회적으로 욕망되는 파트너를 욕망하는' 행위일 뿐, 그리고 그걸 나와 파트너 둘 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섹스(=성관계)는 없다" 그 자리에는 성행위만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임
성관계가 없었으면 너/나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게 아니라면 씹지랄이었을까?
바보 아냐? 당연히 처녀수태지
내가 못한게 이거때문이었네... 원래 없는데 귀신, 신 같이 있다고 사람들이 말만함. 실제로 본적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