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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무사태평해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고도 고마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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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초반부는 다소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그저 한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나갈 뿐이다. 물론 이 소설은 잔잔하게 읽을 수 있는 그냥저냥한 일상물이 아니다. 인간 세상 물정과 전혀 무관한 고양이를 화자로 내세운 이 소설은, 일종의 우화라고 할 수도 있다. 고양이는 주인인 구샤미 선생과 주변의 인간상, 나아가 불가해한 인간 사회를 바라보며 그들을 비웃고 신랄하게 까내린다. 단순히 사회 풍자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통찰하고, 그 불가해한 행동에 대해 힘껏 조소를 보낸다. 이는 일상적인 분위기의 초반부와 달리 철학적 요소가 더욱 가미되는 후반부에 이를수록 강하게 느껴진다.


2. 작품에는 많은 수의 흘러간 문인들과 작가들, 고전 작품들이 인용된다. 작품은 그런 이들과는 정반대인, 다소 평범한데다가 고양이의 표현대로 하자면 '인간 구실을 좀처럼 못하는' 구샤미 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구샤미 선생은 제법 '배운 사람'이다. 문제는 제법 배운 것 치곤 인간이 영 정감 가는 성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세키 본인을 모델로 한 이 구샤미 선생은 어쩌면 고양이와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구샤미 선생은 사실 인간 세계 관점에서 보면 전형적인 인간은 아니다. 말하자면... 좀 언럭키 독붕이에 가깝다. 지식은 많지만 '공덕'은 그리 많지 않고, 인색하며 속 좁게 행동하고, 항상 염세적으로 굴고, 주변 사람들에게 기뻐할 줄 모르는 구샤미 선생은 사회와는 다소 동떨어진 '바깥 인간'이다. 그런데 이런 '바깥 인간'의 일이 또 '인간 바깥'에 위치한 고양이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이상하게도 '인간 본연'에 가까운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 구샤미 선생은 소설의 묘사와는 달리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3. 소설의 세계관은 전체적으로 염세적이다. 고양이 시선에 비친 인간 세상은 그다지 잘날 게 없어보이는 이들이 서로 잘난 체만 하고 다니는 곳이다. 인간에 대한 묘사를 보면 하나같이 '위선적이거나 아니면 바보'라는 느낌으로 적혀있는데, 이 위선과 바보 사이에서, 구샤미 선생은 사실 매우 솔직한 인물상에 가깝다. 그러니까, 구샤미의 솔직하고도 인색한, 자기 본위밖에 모르고 늘 염세주의에 빠져있는 인간상은 위선의 태도가 배제된 가장 '본위적인 인간'에 가깝다. 결국 이 소설은 사회 바깥의 인간, 구샤미 선생의 일을, 인간 바깥의 존재, 고양이가 그려내는 과정을 통해 정말 인간이란 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내내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양이의 시선이 아주 정통하고 날카롭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보기엔 너무 엉뚱하고 이상한 생각의 나열일 뿐이다. 다만 중요한 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 좋거나 좋지 않거나 옳거나 옳지 않은 일들이 이 '고양이 필터'를 거치며 괴상한 풍경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4. 중반부~후반부에 이를수록 소설이 점점 지지부진해지는 감이 있다. 특히 주인공인 고양이의 행적은 이제 구샤미 선생 노가리 까는 거 지켜보는 카메라1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모든 인물들이 모여 삶과 죽음에 대하여 토론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어쩌면 소세키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주제일 것이다. 염세적인 시선도 점점 극단적으로 바뀌어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설 비슷할 정도로 분위기가 뒤바뀔 때도 있다. 물론 소설 특유의 흐물흐물한 분위기는 변함 없지만.


그리하여 결국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구샤미 선생과 대면했던 손님들이 모두 모여 삶과 죽음에 대해서 토론하다가, 이후 피로연 때의 만남을 기약하는 장면이 지나가고 나면, 지나칠 정도로 고즈넉한 분위기 묘사와 함께, 이 소설에서 첫 문장 다음으로 유명할 문장이 등장한다.

「무사태평해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이곳에서 소설의 분위기가 급격히 뒤바뀐다. 낮이 밤으로 뒤바뀌듯이, 거리에 사람들이 잦아들듯이, 떠들썩했던 별채에 고요함만 남듯이, 삶이 죽음을 향해 훅, 불현듯 꺼져버리듯이.

그리고 고양이가 죽음을 맞이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5. 이 고양이의 죽음이 무척 특이하다. 이전의 장면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토론하던 것이 이 장면 전체에 깊게 배어있다. 고양이는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독에 빠지는데, 처음에는 발버둥 치다가 이내 태연한 태도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고양이는 '독에서 아무리 버둥거려도 소용없다. 어차피 올라가지 못할 것을.'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앞서 구샤미 선생의 방에서 '결국 모든 게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다.' 라는 주제로 토론한 것과 맞물린다. 그러니까, 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세상에서 더 좋게 살아보기 위해(=더 좋은 죽음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양이는 더 고양이가 아니게 된다. 불릴 이름도 없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나(無我)'의 상태로 세상을 떠난다. 고양이의 죽음을 본 독자는 못내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단 1~2페이지 정도만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솔직히 급작스럽게 끝났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편으론 왠지 당연한 결말인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더 이상 '고양이'가 아니고, 이젠 그 무엇도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은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더 이어지지 않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고도 고마운지고.


6. 600페이지가 넘는, 소소하고 담백한 진술로만 이루어진 이 소설은, 고양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끝을 맞이한다. 결말 부분에는 구샤미의 죽음에 대한 암시 역시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주인은 조만간 위장병으로 죽을 것이다. 가네다 영감은 욕심 때문에 이미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 가을 나뭇잎은 거의 다 떨어졌다. 죽는 것은 만물의 정해진 운명이니, 살아 있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죽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러 선생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운명은 자살로 귀착되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이 다음 단락에서 고양이는 울적해진 기분을 타파하기 위해 술을 마시러 간다. 마치 인간이나 할 법한 행동이다. 그러니까, 자살을 결심한 인간이 할 것 같은 그런 행동이다. 고양이의 죽음은 분명히 사고였지만, 어느 정도는 자살에 가까운 느낌이 있다. 그러니까 결국 자살에 관한 이야기인가? 하고 생각해버리게 되지만, 그게 전부라면 앞선 600페이지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의 토론 장면에서 보여졌듯 좋은 삶은 결국 좋은 죽음에 관한 것이고, 그러니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삶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사실 죽은 뒤에 무엇이 있을 수 없으니, 죽음은 모두 죽음 이전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7. 그리하여 인간 세계에 2년 남짓 머물다간 고양이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물론 이 소설이 그 정도로 삶과 죽음에 깊게 침잠하는 건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 시종일관 해학적인 분위기로 진행되기 때문에, 진지하게 그 문제를 사유해냈다고 생각하기엔 다소 비약이 있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소세키의 다른 소설들과도 분명 관통하는 부분이 있다. 소세키는 실제로 위장병을 앓았고, 구샤미 선생은 소세키를 모델로 하기 때문에 저 '조만간 위장병으로 죽을 것'이라는 문장에서 소세키는 자신의 죽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소세키의 관점을 비슷하게 투영한 고양이의 죽음 역시 어쩌면 소세키가 바란 죽음관을 그려낸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소설은 소세키가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인생관을 가볍게 써내려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인생관은 이후 소세키의 다른 소설에서도 변용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결말을 읽은 뒤, 어리둥절한 채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암사 소세키 전집 앞에는 소세키의 연혁과 함께 이런저런 자료들이 첨부되어 있다. 우리는 그중 흑백으로 얼룩진 한 남자의 사진을 보면서 생각에 잠길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때 살아있던 어떤 이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러다가 어쩌면,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어느 날, 소세키의 입술이 달싹이며 되뇌었을 마지막 문장에 대한 것이라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고도 고마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