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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트랜스퍼>라는 이름은 사실 내게 소설 제목보다는 아카펠라 그룹으로 더 익숙하다. 언젠가 TV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Twilight Zone/Twilight Tone>은 원곡 <환상특급Twilight Zone> 오프닝보다도 익숙하게 기억에 남아 그 긴장감 넘치는 도입부를 제외하면 갑자기 생각하려던 곡이 머릿속에서 변해 있곤 한다. 원곡의 분위기는 사실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쾌활한 곡이라 원곡을 떠올리려던 생각이 무의미해질 정도다. 그런 점이 미국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양쪽 측면을 훌륭히 보여주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동전의 양면을 한 번에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듯, 대체로 이러한 혼합 속에서 파묻히거나 떠오르는 미국인들을 조망하는 매체는 긍정성 혹은 부정성 중 하나로 결국 기울어지곤 했다.




이 책 역시 개중 한쪽, 부정적인 측면으로 훨씬 기울어진 편이다. 어느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기보다 짧막하게 매번 바뀌는 시점으로 수십 명의 뉴욕 사람들을 매번 중심으로 삼아 세월 속에서의 일들을 풀어나가는 <맨해튼 트랜스퍼>에서, 사실 행복한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는듯 보인다. 미국에서 거부당하고 착취당하며 길을 잃은 채 헤매다 죽는 하층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식으로든 꿈을 이뤄낸 것처럼 보이는 상류층조차 갈등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거나, 슬퍼하거나, 몰락하곤 한다. 그 속에서 뉴욕은 계속해서 성장하며, 이 모든 사람들의 꿈과 열망을 흡수하며 약간은 추하지만 힘을 잃지 않고 성장해 나간다. 만일 미국의 중심부로서 뉴욕이라는 도시가 <맨해튼>의 주인공으로 소환된 것이라면, 이 책은 특이하게도 그 거인-클라이브 바커가 쓴 호러 단편, <언덕에, 두 도시>처럼 사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생산력의 거인-의 세포들이 쥐어짜이다가 사그라드는 과정을 세세히 묘사하는 글이라 할 수 있을 테다.





그러나 핵심은 그 세포들이 거인의 일부임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데에 있다. 흥미롭게도 현대 문화 속에서 뉴욕에 대한 애증을 나타내는 것들이-예를 들어, LCD 사운드시스템이 뉴욕에 바치는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Bringing Me Down>-내비치는 양가적인 감정이 <맨해튼>에는 없다. 분명 <맨해튼>에서 도시와 도시, 국가와 국가 간의 이동은 상당히 자유로운 것처럼 암시되고 실제로도 많은 인물들이 들어갔다가 나가거나 하지만, 뉴욕은 그저 뉴욕이다. 딱히 뉴욕을 더 싫어하는 이는 거의 없다. 아마 이것은 <맨해튼>이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율리시스> 등 어느 한 도시와 시민들 사이의 관계를 그리는 20세기 초반의 문학들의 공통점일지도 모르겠다. 뉴욕은 그대로 있다. 그것은 공기와도 같아서, 이곳의 분위기를 싫어할 수는 있어도 이곳 자체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는 일종의 항구적인 장소 역할을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맨해튼 트랜스퍼"라는 정거장은 디즈니 월드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대도시 생활을 하면서 겪게된 대중교통 속의 생활, 그 몰려든 타인들 속에서 불편한 공존을 함께하는 순간은 기실 어트랙션을 위해 기나긴 줄을 서야 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디즈니 월드에서 기다리는 동안 <맨해튼>을 읽으며 계속 들었던 생각이지만, 아무리 기다리는 줄 속에서 테마로 장식된 소품들을 구경시켜준다고 해도 줄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이곳에 있는 남녀노소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심 느끼는 적대감은 그 어느 곳보다도 높아질 수 있을 테다. 그러나 누구도 이곳을 나갈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내심, 저 사람들만 없고 우리만 있다면 여기도 딱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저마다 동시에, 그러나 다른 꿈을 꾸며 품는다. 약간은 난잡하게나마 모여 있는 다양한 미국인들의 '꿈'이 표상된 다양한 테마파크들은, 다소 통속적이고도 직접적으로 현존하게 된 <맨해튼>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디즈니 월드 속에서 <맨해튼>을 떠올린 만큼, <맨해튼> 속에서도 디즈니 월드가 떠오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한 주인공을 붙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대부분의 소설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개인적인 친밀감이 <맨해튼>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느껴졌다. 다소 소박하고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내밀한 감정과 갈등들이 서로 얽히며 뉴욕이라는 하나의 도시를 그려내는 그 모습이 오히려 우리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짧막하게 목소리를 내며 다시 군중 속으로 묻혔다가 떠오르곤 하며 예전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실, SNS로 익숙해진 파편화된 유명인들의 모습과 다를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맨해튼>은 정말 통속적일 수 없는 구성으로 너무나 통속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디즈니 월드만큼이나 미국적인 문화의 집대성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