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여기는 어쩌면 지극히 꽝꽝하고 못 견디게 새파란 바윗속일 것이다. 날 선 쟁깃날로도 갈고 갈 수 없는 새파란 새파란 바윗속일 것이다.


  여기는 어쩌면 하눌나라일 것이다. 연한 풀밭에 베쨍이도 우는 서러운 서러운 시굴일 것이다.


  아 여기는 대체 몇만 리이냐. 산과 바다의 몇만 리이냐. 팍팍해서 못 가겠는 몇만 리이냐.


  여기는 어쩌면 꿈이다. 귀비(貴妃)의 묫등 앞에 막걸릿집도 있는, 어여뿌디어여뿐 꿈이다.


- 『귀촉도』(1948)






<무제>


  오늘 제일 기뿐 것은 고목나무에 푸르므레 봄빛이 드는 거와, 걸어가는 발뿌리에 풀잎사귀들이 희한하게도 돋아나오는 일이다. 또 두어 살쯤 되는 어린것들이 서투른 말을 배우고 이쿠는 것과, 성화(聖畵)의 애기들과 같은 그런 눈으로 우리들을 빤이 쳐다보는 일이다. 무심코 우리들을 쳐다보는 일이다.


- 『서정주시선』(1956)






<무제>


  하여간 난 무언지 잃긴 잃었다.

  약질의 체구에 맞게

  무슨 됫박이나 하나 들고

  바닷물이나 퍼내고 여기 있어 볼까.


  별에는 도망갈 구멍도 없고

  호주 말로 마구잡이 달려간대도

  끝끝내 미어지는 포장(布帳)도 없을 테니!


  여기 내 바랜 피 같은 물들

  모여 괴어 서걱이는

  이것 바닷물

  되질하는 시늉이나 하고 있을까.


  살 닿는 데 꾸려온 그런 거든가.

  네 손이 짧거든 내 손이 길거나

  내 손이 짧거든 네 손이 길 것을,

  아무리 닿으려도 닿지 않던 것인가.

  하여간 난 무엇인지 잃긴 잃었다.


- 『신라초』(1961)






<무제>


  매가

  꿩의 일로

  울던 데를 이야기할 테니,

  우리 나라 수(繡)실로

  마누라보고 베갯모에 수놓아 달래서

  베고 쉬게나.

  눈물을 아주 잘 수놓아 달래서

  베고 쉬게나.


- 『동천』(1968)






<무제>


  "솔꽃이 피었다"고

  천 리 밖 어느 친구가 전화로 말한다.

  "이 솔꽃 향기를 생각해 보라"고……

  "그 솔꽃 향기를 생각하고 있다"고

  나도 한 천 년 뒤를 향해서 속으로 말해 본다.

  "이 솔꽃 향기가 짐작되느냐"고……


- 『서정주문학전집』(1972)






<무제>


  친구여

  인제부터는

  그대 정담(情談)이니 진담(眞談)이라는 건

  에짚트식쯤으로

  새침데기 고양이나

  엉터리 당나귀에게

  노나주어 뻐려도 되지 않겠나?

  그래

  고양이는 늘 냐우웅 냐우웅 울고 다니며

  당나귀는 어허허허 건달로 웃고 다니며

  둘이서 합의해서

  이걸

  남이 알아듣게

  도란도란

  옮기게스리 말이야.


-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덧 1)


<무제: 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을 맞이하며>


  구단(九段)의 하늘 높이 향기를 피우시라

  어머니여. 구름이나 일월성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한 몸 불꽃 되어 숨이 끊어졌으니!


  어머니여. 이 넉넉함은 슬픔이 아니라

  나의 어깨에 하늘은 지금 너무나 무겁고


  꽃들도,

  살랑이는 나무 이파리들도,

  너무나 무겁구나.


  어머니여. 저곳이리라, 그대가 낳은 내 동포의 넋들이 모두 돌아올 곳은

  앗츠에서 매킨 타와라에서 또한 사이판에서

  모두 전사하여 돌아올 곳은

  저곳이리, 저곳이리 아아, 견딜 수 없는 색으로 물들어


  어머니여. 저 용맹스런 함성은 저곳이리

  푸른 혈조가 끊임없이 내려와

  커다란 목소리, 나를 부른다.


  아아, 기쁘도다 기쁘도다

  희생제물은 내가 아니면 달리 없으리,


  어머니여. 나 또한 창을 들고 일어서리

  배를 띄우리

  사이판으로!

  매킨 타와라로!

  앗츠로!


- 『국민문학』(1944년 8월호)




  내가 이 인문사 입사를 전후해서부터 쓴 일본어 시론 앞서 말한 <항공일에> 외에 또 한 개, 제목은 잊었지만 일본 군인들의 옥쇄라는 것을 다룬 게 있다. 소형 비행기에 혼자서 타고 가서 미국이나 영국의 배에 그대로 떨어져 내려 바스라져 버린다던 그것 말이다. 나는 이 옥쇄부대에는 우리 학병들도 많이 끼어 있단 말을 듣고, 그들의 그런 비행과 종말의 정신에 맞출 양으로 이걸 하나 썼었다.


  미국이나 영국에 대한 적대 감정이라는 것은 또 어떻게 해서 일어났냐 하면, 확실하다는 일본측 보도로 영, 미국인들은 일본병의 포로들을 불도저 밑에 무데기로 넣고 깔아뭉갠다는 둥, 그 시체의 뼈로 페이퍼 나이프를 깎아 만들어 그걸로 종이를 썰고 있다는 둥, 간단히 말해서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


  그 페이퍼 나이프에는 우리나라 병정의 뼈로 된 것도 더러 있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은 내 적대 감정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나는 위에 말한 두 개의 일문 시와 한 편의 일문 종군기 외에 또 한 편의 친일적인 우리말 시(<헌시>)를 매일신보에 썼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뽑혀 간 학병들의 모습이 더러운 개죽음이 아니라 의젓하다고 한 것이다. 이것도 그때 내 생각으론 이밖엔 달리 말할 길이 없어 그렇게 한 것이지만, 그것도 틀린 것이었던 건 물론이다.


- 『천지유정(나의 문학적 자서전)』(1975)






(덧 2)





<무제>를 오백 편이나 써놓고도 명작이 없는 시인이 있다?! 뿌슝빠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