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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심하게 찍혀와서 교환신청하긴 했는데, 사실 책 자체는 립젠 에디션으로 읽고 있었던 것... 아직 다 읽진 못하고 절반 조금 넘게 읽었는데, 꽤나 비범한 작가인 것 같다. 포, 럽크 이후로 가장 뛰어난 공포문학 작가라는 평가가 괜히 있는 건 아닌 듯...
으스스한 분위기로 불안한 정서를 조성하는 건 여타 다른 공포문학이랑 다를 게 없다. 그런데 리고티가 보여주는 불안감은 포나 럽크와 다르게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는 느낌이다. 포가 정교하게 설계한 플롯으로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럽크가 초월적인 존재에게 고통받는 인간의 무기력한 모습을 묘사한다면, 리고티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불편한 블랙코미디를 구사한다.
리고티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조금 꺼림직하고 불편한 상상을 자극한다.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생각을 유도하는 느낌이다. 심지어 그 방식도 매우 다양한데,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비관주의적 독백은 모든 단편에 거의 디폴트로 드러나고, 우리의 기억과 정체성을 의심하는 철학적인 알레고리가 등장하는가 하면, 신랄하게 사회를 풍자하고 기분 더러운 불쾌한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독자가 작품에 몰입하면서도, 굳이 의식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현실을 되돌아 보게 한다. 허구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이지만 끝임 없이 현실을 재소환하면서 괜히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유발된 불편한 감정은 공포문학 특유의 으스스함이 뒤섞이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리고티하면 흔히들 서서히 잠식해오는, 리고티만의 특유한 공포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유한 공포란 픽션과 현실 양쪽에서 오는 효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공포문학이라는 픽션에 깊게 몰입하면서 느껴지는 허구적 공포와 작품 속의 알레고리로 자극받은 현실의 불안감이 합쳐지면서 독특한 기묘함을 느끼는 것이다. 특히나 현실의 불안감은 작품이 점점 진행되고 독자가 스스로의 상황을 더 깊게 반추해 볼수록 더 커지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점점 더 깊은 불안감에 잠식되고 만다... 바로 이러한 불안감과 기묘함이 리고티만의 독자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다만, 작품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철학적인 알레고리들 탓에 직관적이지 못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다. 대체로 서사가 조금 애매모호하고, 어떤 단편들은 마지막까지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재독을 해야 전체적인 실상을 알 수 있는 등, 난해한 감이 없잖아 있는 단편집인 것 같다. 그래도 뭐 이 정도는 읽을 수 있으니까 용서...
개별 작품에 대해서도 조금 써봐야겠다. 지금 내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고 있는 건 아니고, 평가가 좋은 것들 위주로 왔다갔다 하면서 읽고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마을 관리인>이나 <우리의 임시 감독관> 같은 사회 풍자적 단편을 고평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신나간 정책으로 깽판을 치는 정치인들이나 기계처럼 일만 하면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잊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하는 작품들인데, 아무래도 이런 내용이야 너무 널리고 널려서 나한테는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대신 작가 특유의 비관주의 철학이 짙게 드러나고, 시니컬하고 질 나쁜 농담처럼 들리기도 하는 단편들이 꽤나 인상 깊었다. 첫 단편인 <순수성>은 작가의 비관주의, 반출생주의를 집약한 소설로 보이는데, 우리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작중에서는 이것들을 "불순물"이라고 표현한다)을 모두 부정해야 비로소 인간 존재의 순수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몹시 사악한(?) 작가의 사상이 엿보이는 단편이다. 플롯이 다소 난잡한데다가 퍼즐 같은 면도 있어서 매우 난해하지만, 다시 천천히 읽어 보면 다양하게 해석할 만한 거리가 넘쳐나는 단편이었다.
또 <광대 인형>, <주유소 카니발> 같은 작품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향한 의심이 드러난다. 우리의 기억과 추억이 정말로 우리의 것이 맞는지, ‘나’라는 존재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질문하면서, 사실 우리의 기억은 어떤 마녀가 심어둔 기억은 아닐까, 나라는 사람은 사실 어떤 초월적 존재가 조종하는 광대 인형은 아닐까하는 불안한 상상을 거듭한다. <붉은 탑>이란 단편은 이런 존재에 관한 물음은 무의미하며, 인간이란 존재는 그저 고기덩어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질 나쁜 농담을 던진다. 특히 이 <붉은 탑>이라는 단편은 기괴한 묘사가 매우 인상적인 편이다. 지금까지 읽은 단편 중에선 상위권인 듯.
이상한 철학적 메시지 말고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꽤나 재밌는 편이기도 한데, 그 중에서도 표제작인 <티아트로 그로테스코> 혹은 <그로테스크 극장>이 굉장히 재밌었다. 예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습격하고 그들의 예술 감각을 말살해 버리는 비밀조직 "티아트로 그로테스코"를 추적하는 그런 이야기인데, 마치 핀천의 <49호 품목의 경매>를 공포 단편으로 다시 쓴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 음모론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꽤 마음에 들었다.
아직 한 절반 정도 읽을 게 남아 있는데, 계속 외국어를 읽고 앉아 있자니 좀 어지러워서 한 번 끊었다 가려구 독중감 씀...
존나 올드 한 느낌 강하던데 ㅋㅋㅋ
리고티 읽은 사람도 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