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J'ai mal a l'autre


연민 Compassion 사랑의 대상이 사랑의 관계와는 무관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불행하거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거나 보고 알 때,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 대한 격렬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1. “그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그를 느낄 때 ―쇼펜하우어가 연민이라 부르는 것, 혹은 더 정확히 말해 고통 속에서의 결합, 고통의 일치라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가 자신을 미워하면 우리 또한 그를 미워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환각에 시달리거나 미칠까봐 두려워한다면, 나 또한 환각해야 하고 미치광이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사랑의 힘이 어떠하든 간에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끔찍한 일이기에 나 또한 동요하며 괴로워하나, 동시에 냉담하며 젖어들지 않는다. 나의 동일화는 불충분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이긴 하지만 (그가 내게 걱정거리를 준다.), 불충분한 어머니이다. 내가 실제로 그를 보살필 수 있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진정으로 그 사람의 불행에 동일시하는 그 순간에, 나는 그 불행에서,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이 일어났으며, 이렇듯 스스로 불행해진 그는 나를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읽기 때문이다. 나와는 무관한 이유로 해서 그 사람이 그토록 괴로워한다면 그건 내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고통이 내 밖에서 성립되는 한, 그것은 나를 취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2. 그리하여 하나의 역전이 내도한다. 그 사람이 나를 제쳐놓고 괴로워하는데, 왜 내가 그 대신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불행이 나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하는데, 왜 나는 그를 붙잡을 수도, 그와 일치될 수도 없으면서 그의 뒤를 숨 가쁘게 쫓아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조금 떨어져 있자.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하자. 타자의 죽음 뒤에 홀로 살아남는 그 순간부터 모든 주체의 입에서 나오는 저 억압된 말, 살자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3. 그러므로 나는 그를 압박하지도 내 정신을 잃지도 않으면서 그와 더불어 괴로워하리라. 아주 다정하면서도 잘 감시된. 애정에 넘쳐흐르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이 처신에, 우리는 부드러움이란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연민의 “건전한” (개화된, 예술적인) 행위이다. (아테는 미망의 여신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아테의 부드러움에 대해 말한다. 그녀의 발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 땅을 디딜 둥 말 둥 하다고.) “그 다리는 매우 부드러워라. 땅을 밟지 않고. 사람의 머리 위를 걷기 때문이다.”



만날 읽다가 완독은 못한 책인데

이 부분은 메모해두고 주기적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