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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공포>라는 이름의 연작 중 첫 번째 작이다. 도대체 이 "철학의 공포"란 무엇일까? 저자의 말을 적당히 빌려 오자면, "공포의 철학"에 해당되는 내용들은 이 연작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와 방향이 다르다. 예전에 읽은 <호러국가 일본>처럼 공포 장르의 다양한 매체들(소설, 영화, 게임 등)을 재료로 삼아 현대인 또는 사회를 병리학적으로 진단하려고 하는 글은 "공포의 철학"이다. 그러나 "철학의 공포"란, 이미 존재하는 공포 장르와는 거리가 멀다. 아니, 정확하게는 공포 장르 중 일부와 맞닿아 있지만, 그것이 제공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야 할 테다. "철학의 공포"는 철학이 더 나아갈 수 없는 지점, 사람이 세계를 사유하는 "우리에-대한-세계"와 "세계-자체" 사이의 "우리-없는-세계"를 다루는 철학이다. 그것은 인간 중심적인 개념들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탈인간적인 것이 불러 일으키는 불길한 공포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미 많은 공포 장르에서도 다루는 것이다. <행성>은 이것들을 다룬다.
대략적인 개괄을 잡자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사고관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인간 중심적인 비유나 개념들을 통해 이해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었다. 신화적이든, 신학적이든, 실존적이든, 이 사고 방식은 세계-자체를 어떤 인간적인 역학을 통해 우리에-대한-세계로 변환시킬 수 있게 해주었고, 이것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자체는 우리에-대한-세계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거나, 기실, 상당히 많은 경우에 돌출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세계-자체에 대해 탈인간적 정보를 쌓아가는 현대에도 마찬가지인데, 수십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하고 엄청난 계산 자원을 쏟아부으며 혁신을 거듭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기후는 우리에게 미지 속에서 예상 못한 변화나 재앙을 가져온다. 우리에게 세계-자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행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심한데, 최근의 잠수함 사고가 보여주듯 바다를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선전은 최소한 현재까지는, 그저 선전에 가까울 뿐이다. 또한 우리 개인은 세계가 이 나라는 개인에게 퍼붓는 어떠한 악의를 느끼곤 한다. 그러나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이 질문의 대답은 대답하는 방식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
이 질문이 언제 던져지는가를 생각해보면, 세계-자체가 내게 재앙의 형태로 사건들을 마구 선보일 때일 테다. 고대에 그것은 신들의 손에 정해진 운명 속에서 고통받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세계-자체는 신들의 전장이 되었다. 중세에는 이 범람하는 악의 문제를 구원과 함께 생각해보기를 권유 받으며, 이 세계 너머의 구원이라는 틀 속에 세계-자체를 넣을 수 있었다. 근대에는 더 이상 신의 자리가 없고, 대신 너무나 거대하고 촘촘해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개인의 삶을 정해주게 된 체계(과학적 세계관, 산업자본주의 등) 속에서 개인이 어떤 자리를 갖는지가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이 모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였지만, 여전히 늘 인간 중심적이다. 인간 중심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세계를 인간적인 모습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로만 하는 말은 아니다. 세계-자체가 자신에게 쏟아붓는 악의 가득한 사건들 속에서 사실 그 악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그저 인간에게 완전히 무관심한, 몰인간적인 세계-자체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에-대한-세계를 세계-자체에서 뺀 차집합 속에서, 인간적 개념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우리-없는-세계는 너무나 냉담하고도 차분하게 마저 흘러간다.
<행성>은 어떻게 이 소름끼치는 두려움을 최대한 우리에게 친숙한 우리에-대한-세계 속의 존재자로서 변환시킬 수 있었는가를 다루는 책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어떻게 실패하였는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악마에 대한 1장은 악마적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탈인간적인 재앙에서 인간적인 적대자로 변형되며 "마녀"를 체계 속에서 잡아 해결하고자 했는지를 짚어나가면서도, 단테의 <신곡> 속에서 인간형으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악마들과는 달리 끔찍하게 불어닥치며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비인간형의 기후로서의 악마가 등장하는 것을 지적하며 악마라는 이름이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비인간적이었던 이중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또한, 현대에 "악마적"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신성모독적이지도, 이교도적이지도 않은 무언가인지를 블랙 메탈의 예시를 통해 알 수 있다. 1세대 블랙 메탈이 기독교에 대한 반대 이미지를 내세우며 교회를 불태우는 식(Burzum - <Aske>)의 행동을 보여줬다면, 그 이후의 블랙 메탈은 좀 더 다분화되며, 북유럽 신화와 같은 이교도적 요소를 도입하거나(Moonsorrow - <Voimasta ja kunniasta>), 자연 자체의 공포를 노래하며 이 탈인간적인 악마를 다루고자 한다.(Mount Eerie - <Wind's Poem>)
이것은 악의를 다루는 법일 뿐, 세계-자체를 다루고자 하는 오컬트에서는 더 이야기가 힘들어진다. 우리에-대한-세계와 세계-자체를 가르는 마법의 원 속에서, 우리-없는-세계는 우리를 딱히 공격하려 들지도 않지만, 결코 우리를 보호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리고 어느새 마법의 원은 사라져 있으며, 우리에-대한-세계는 이미 세계-자체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가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어디에서부터 끊어야 할지 모르는 연속성이 우리-없는-세계의 가장 큰 공포이기도 하다. <사이클로노피디아>나 몇몇 공포물에서 등장하는 괴생명체로서의 석유가 그 예시다. 괴물이 등장하는 수많은 매체에서 괴물은 물리칠 수 있는 뚜렷한 개체지만, 현대 사회의 일원이자 현대 산업을 유지시키는 석유를 어떻게 물리치고, 사실 어떻게 배제할 수나 있을까? 세계-자체와 우리에-대한-세계의 불일치 사이의 불길함은 그것이 우리에-대한-세계의 밖이 아닌 안에서부터 솟아오른다는 점에 있다. 가장 익숙하며 낯익어야 할 존재로부터 느껴지는 낯선 공포는 우리가 대하던 것들이 생각과는 다르게, 완전히 몰인간적인 무언가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3장에서 다루는 생물 바깥의 생명이 의미심장하다. 이 석유가 살아서 우리를 찾아냈다고 할 때, 그 '살아 있다'라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의 말일까? 생명은 단순히 생물들의 교집합만은 아니며, 죽은 이후에 여전히 "살아가는" 망령(네크로스)과 개별 개체들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꾸준히 "살아가는" 종 따위의 것들이 존재한다. 멸종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분명해지는데, 단적으로 보면 멸종은 모든 살아 있는 개체들의 죽음으로 맞이하는, 생물과 떼어놓을 수 없는 생명에 대한 개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멸종, 이런 종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한참 전에 사라져버려 그 종을 아무도 떠올릴 수도, 생각해볼 수도 없는 멸종을 간과한 생각이다. 종의 생명은 사실 개체 생물들의 생명과는 별개로 존재하며, 그러한 비인간적인 생명은 사상, 민족, 국가 등의 추상적인 것들의 생명에서부터 시작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생물과 실제 생명 사이의 간극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흥미로운 책이지만, 서두에서 말한 비인간적인 세계에 대한 공포라는 주제로부터 다소 일탈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기도 하다. 다양한 소재를 토대로 이 주제를 시도해보며 생각을 넓혀나가는 에세이집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라, 3부작 중 나머지 두 권이 나온다면 읽어볼 계획이다. 공포 장르의 한 분파인 코즈믹 호러의 반대 방향에서, 코즈믹 호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괄하는 것 같은 책이기도 해서 이 코즈믹 호러라는 것이 현대의 공포에서 상당히 조명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좀비, 뱀파이어, 괴물 등이 나오는 호러 영화를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반갑기도 하고......)
소중한 리뷰 감사^^
리고티 정발 기다리는 중입니다...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서 빨리 나와야되는데 이 추세로 가면 여름이 지나갈때까지 나오려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