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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별로 아파본 적도 없는 사람의 영혼 없는 얘기라며 힐난을 받은 지도 벌써 수 년이 지난 말이지만. 그것도 그렇고, <노르웨이의 숲>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상처를 받는다고 성장을 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하지 않았는가. 상처는 결코 아문 적 없이 기억하면 지금이라도 당신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그런데, 더 생각해 보면 애초에 아프지 않는 청춘이 가능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돈도 많고 사랑도 많은 걱정이랄 게 없는 사람들도 물론 있기야 있을 것이다. 아니, 있기나 할까?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겪은 20대의 시간은 지금껏 세상에 대해 가졌던 내 미약한 생각들을 상처입으면서 깨트리고 또 깨트리면서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에 어떻게든 그걸 주섬주섬 주워 맞추려는 미진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의심이 워낙 많은 존재이다 보니, 그게 정말로 의미있는 과정인지 허탈해지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나의 모습을 비춰보며 나는 <젊은 날의 초상>을 읽었다.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은 세 중편 소설을 엮어 만든 장편 소설이다. 1부 <하구>, 2부 <우리 기쁜 젊은 날>, 3부 <그해 겨울>. 사실 글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바로 전에 읽은 박경리 작가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비교했을 때 이문열 작가의 특징적인 면들이었다. 박경리 작가가 그야말로 사람들의 '스토리'를 너무나 맛깔나게 써서 페이지가 신명나게 넘어가는 신공을 엿보인,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면 이문열 작가는 자신의 현학적인 지식들과 입담, 다양한 상징들 그리고 스스로의 심정에 대해 고통스러울 듯이 내리치는 어떤 칼날같은 묘사들로 승부를 거는 문학광의 면모가 드러난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더 훌륭한 이야기를 고르라면 주저않고 <김약국의 딸들>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더 감정적으로 동요했던 글을 고르라면 <젊은 날의 초상>을 고를 것도 같다.

그렇기에 사실 1부 <하구>는 딱히 인상깊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왜인지 <무진기행>이 떠오르기도 하는 배경이 눈에 띄었고, 꽤나 감동적인 일화들이 눈에 띄었지만, 고작 방금 <김약국의 딸들>을 다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에이, 이 정도의 이야기는 방금 읽은 거에 비하면 잘 쓴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지.'라며 코웃음치며 넘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2부 <우리 기쁜 젊은 날>은 그 현학적인 말빨과 자학적인 태도,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대학생들의 혼란스런 삶에 대한 묘사가 시작부터 나를 휩쓸고 들어갔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 소설을 읽을 때 적어도 나는 이 많은 일화들 중 적어도 절반은 이문열 작가의 실제 경험에 근거할 것이고, 그 부끄러운 감정들은 정말로 직접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소설이니까 전부 지어냈을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게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그리고 그런 스스로를 묘사하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져서가 아니었을까.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자주 하는 생각은, 물론 이건 내가 좀 사람들을 대할 때 둔한 탓도 있겠지만, 작가들은 이토록 예민하게 생각하는구나. 혹은 다른 사람들도 누군가를 관찰할 때나 말을 할 때 이토록 예민하게 접근하나? 하는 의문이다. 나 같았다면 그토록 예민하고 복잡한 생각을 지닌 채로 참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젊은 날의 초상>에서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정말 이상하게도 다들 너무 똑똑하고 현학적인 말을 하며 허구적인 목표에 이끌려 방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생각해보면 작가도 사람인 만큼, 너무 다양한 사람을 묘사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울 거라고 변호해 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젊은 날의 초상>은 그런 면모까지도 작가가 실제로 어느 정도 이런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 주는 요소들이 되어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3부 <그해 겨울>이 되면 그런 현학적인 청년은 마치 순례라도 하듯이, 눈 덮인 산골을 지나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기쁜 젊은 날>에서 자주 등장하곤 했던 주인공 영훈의 문학들이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왠지 뭉클하기도 했다. 결국 이 여정은 영훈이, 혹은 작가 이문열이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정하기까지의 과정이었던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읽은 판본에는 작가의 또 다른 단편 대표작 <들소>가 수록되어 있다. 선사 시대 예술가의 이야기로, 예술이 실상으로는 먹고 사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괴감과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그나마 자신이 가진 이 예술의 힘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갈팡질팡하며 고뇌하다가도 다시 예술 본연으로 복귀하는, 그 순수성에 대한 탐닉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결국, 눈의 이미지가 그러하듯 영훈의 여정은 순수함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 마지막에 칼갈이 노인-이데올로기에 상처받고 복수하려 하는 그 노인과 교차하는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대를 지배하는 휘발성 지식과 암울한 이데올로기, 청춘들이 이 자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절망하게 만드는 역사의 무자비함에 맞서 문학의 순수함을 끝내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껍데기는 갔다. 향그러운 흙가슴만 모으고 모든 쇠붙이는 갔다. 거기서 그의 문학은 시작되어야만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