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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손흥민 삘도 나는 이 책의 주인공 건륭제는 자그마치 60년의 재위 기간을 가진 황제였다. 사실 이 재위 기간도 61년의 재위 기간을 자랑하는 자신의 할아버지, 강희제의 기록을 차마 깰 수가 없어 양위한 것으로 1795년 양위 이후 1799년 사망할 때까지 실질적인 황제로 군림하였다. 게다가 이처럼 긴 재위 기간에도 불구하고 유년기부터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어엿한 20대 청년의 나이에 황제에 올랐기 때문에 확연한 자신만의 주체적인 관점을 보유한 채 60년 넘도록 청나라라는 제국을 다스렸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 서문에도 나오는 문구이지만 1960년에 당선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2024년까지 미국을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오랜 기간인지 상상도 채 안 가지 않는가.
건륭제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강희제의 총애를 받아왔고 아버지 옹정제 역시 일찌감치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건륭제는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에 온 힘을 쏟아야 했다. 책 첫 장의 제목대로 그는 “준비된 황제”였다. 그의 연호 건륭은 하늘의 융성 내지 우주의 번영 정도의 뜻을 지닌다. 이는 황제 자신의 통치와 하늘의 의지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책의 부제, 하늘의 아들은 이러한 연호의 의미로부터 저자가 따온 것이 아닐까 사료된다.
황위에 오른 건륭제는 아버지와는 다른 환경에서 황제 생활을 시작하였다. 옹정제가 황제에 올랐을 때는 내외적으로 닥쳐오는 문제들이 산더미와 같았다. 그러나 옹정제는 그의 재위 기간 중 그와 같은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해치워 냈다. 제국의 은 보유량이 570만 량에서 4250만 량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 옹정제는 자신이 겪은 후계자 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후계자 선정방식을 마련해 정착시켰고 당쟁을 근절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단행했고 여유량 사건을 필두로 하여 한족으로 하여금 감히 만주족에게 도전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즉 건륭제는 옹정제의 유산 덕에 비교적 수월한 환경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렇게 황제의 자리에 오른 건륭제는 즉위 한 달 후 선포한 칙서에서 할아버지의 너그러움과 아버지의 엄격함 사이에서 자신은 중도의 정치를 실시하겠다며 포부를 보여준 뒤 강희제와 옹정제가 닦아놓은 기반들을 잘 활용하면서 제국을 나름대로 잘 꾸려나갔다. 그렇다고 그가 마냥 선왕들의 훌륭한 정치를 그저 순종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부친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서슴지 않고 그러한 잘못을 수정하기도 하였고 산비탈의 경작지 정책과 관련해서도 부친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뒤집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 황제였다. 그 과정에서 간접적이나마 반대 의견을 피력한 신하에 대해 건륭제가 구금과 삭탈관직에 처한 사실은 그가 얼마나 단호하게 자신의 방식을 구축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는 새로운 젊은 군주의 판단에 의문을 품었을지 모르는 이들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기도 하였다.
건륭제가 황위에 오른 뒤 직면한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기인제도의 파탄이었다. 오랜 세월의 안락함은 본디 초원의 전사여야 할 기인들로 하여금 낭비벽에 빠져 방탕한 생활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또한 한족 사회와의 일상적인 접촉을 통한 문화적 동화현상 역시 기인제도의 근간을 파괴할 염려가 있었다. 이와 같은 이중적 위기에 직면한 건륭제는 만주족 조상의 전통, 궁술과 기마술 같은 기술, 용맹과 검소 같은 만주족의 덕목 등을 열렬히 고취시켰고 만주어의 발전, 역사자료의 수집·분석과 편집, 만주족의 발상지를 찬미한 시의 작성, 종교적 의례에 대한 체계적 정리, 만주족의 군사문화에 대한 선양 등, 개별적인 만주족의 정체성 보존을 향한 다양한 접근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했다.
또 건륭제는 여행을 즐긴 역동적 군주였다. 전근대 군주들이 보통 자신의 황궁에서 거의 평생을 지닌 것과 달리 그는 60여 년의 재위 기간 중 황궁을 떠나 있는 기간이 1/4에 달할 정도였다. 건륭제는 그러한 여행을 통해 제국을 직접 살펴보는 한편 유교와 불교의 상징적 장소들을 방문해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데 이용했다. 이러한 건륭제의 여행이 재정 파탄을 불러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비록 수많은 비용이 들긴 했으나 전체적인 국고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다지 큰 비용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한편 건륭제 치하의 청 제국은 중가르를 멸망시키면서 오늘날의 중국의 영토와 비슷한, 아니 더 넓은 최대의 영토를 구사하였다. 건륭제도 자신의 군사기록을 반추하며 스스로에게 ‘십전노인’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정도로 그는 전투의 제왕이었고 그의 초상화 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역시 갑옷을 쫙 빼어 입고 군마를 탄 모습이다. 하지만 건륭제는 이러한 군사군주로서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책 7장의 제목, “르네상스인”이기도 하였다. 그는 여가시간에 그림을 관람하고 시를 짓는 등 스스로가 문화인이었고 광대한 문화재 컬렉션의 소유자이자 적극적인 후원자였다. 특히 당대까지 중국에서 나온 문학, 철학, 역사 작품의 정본을 모두 수집해서 읽고픈 소망으로 간행시킨 《사고전서》는 거의 8만 여권에 달하는 압도적인 분량을 자랑하는 당대 지성에 대한 총집합이었다(정조가 청에 보내는 사신들에게 매번 특명을 내려 어떻게든 《사고전서》를 구하길 원했으나 끝내 실패한 것은 유명하다.). 《사고전서》뿐 아니라 그의 재위 기간 수집되고 후원되어 탄생한 문화재들은 지금도 중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박물관들에 고이 모셔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위대해 보이는 황제에게도 당연히 어두운 면이 있다. 첫 번째 황후, 부찰씨가 36세에 요절한 후 여복이나 자식 복은 없었던 걸로 보인다. 또한 만주족의 역사를 조작했으며 《사고전서》의 편찬을 구실로 反만주족 정서가 담겨 있다고 보여지는 서적 2900종을 파괴했다.
특히 저자가 주목한 어두운 면은 바로 인구의 급속한 증가에 대한 미비한 대처에 있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에 비해 농경지의 확대는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건륭제는 강희제의 세금 감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였고 이는 곧 적절한 세원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어 인구 급증에 대한 대비가 어려웠다. 그 결과 농민들은 적절한 면적의 토지를 경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신흥 종교의 확산과 민란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건륭제는 화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켜줌으로써 스스로 고립에 빠지게 만들었고 상황은 악화되어만 갔다. 그렇게 그는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지 4년이 지난 여든 여덟의 나이에 백련교도의 난이 빨리 진정되기를 바라는 시를 한 수 지은 것을 마지막 시로 남긴 채 사망한다.
저자는 건륭제에 대해 온 세상의 군주로서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청의 황제이자 몽골인과 만주족의 칸이었고, 불교신자에게는 차크라바르틴이었으며, 문무를 겸비한 전사이자 학자, 시인이자 예술가, 예술품의 수집가이자 학문과 예술의 후원자, 그리고 성왕이자 효자라고 평가한다. 물론 건륭제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하지만 그것은 건륭제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과 분열이 반복되는 역학 속에서 건륭제가 아닌 어느 누구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러한 흐름을 막기란 힘들었으리라고 판단한다.
물론 이와 같은 저자의 판단 역시 일리가 있고 본인 역시 동의하는 바가 있다. 본인은 건륭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건륭제 말기의 혼란을 피하기 힘들었으리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그 원인이 어떠한 역사적 흐름에서 기인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본인은 건륭제라는 군주의 총합적인 면모는 희대의 명군까지는 아니더라도 명군 축에는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명군이라고 할지라도 그도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항시 명민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한다쳐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희대의 명군이라도 문제다. 그가 희대의 명군이라면 후계자 역시 희대의 명군이어야 적어도 제국이 현상태로 유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호부자견이라는 말도 있듯 그런 경우가 세대에 걸쳐 지속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현세의 인간”에게 “하늘의 아들”이라는 절대성을 부여한 황제체제에 있지 않을까. 황제든 왕이든 간에 전제군주체제는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에 입각한 공화정체제가 그나마 나은 길이지 않을까 싶다.
아 그리고 청 제국 관련해서 책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청이 몽골과 중가르 등 유목 민족 세계에 대한 지배와 몽골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티베트에 대한 지배, 즉 ‘중국’의 서쪽과 북쪽의 내륙 지배에 신경을 많이 쏟았기 때문에 해양 세력에 대한 관심이 더 나아가지 못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명대 이후 만주족이 아닌 한족 중심의 국가가 지속되었다면 중국도 해양 세력으로 진출하지는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ㅋㅋ묘하게 흥민이횽 닮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