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소설 속 인물은 두 종류로 나뉜다
죽음을 대면한 인간, 그렇지 못한 사람.
래리는 전쟁 중 동료 조종사의 죽음을 목격하고 독붕이가 된다
이 소설에 악인은 없다,
작가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을 들여 엘리엇이 실은 얼마나 선하고 젠틀하고 연민넘치는 사람인지 묘사한다
이사벨이야 말할것도 없다
남편 그레이도 하이틴드라마서 주인공 왕따시키는 미식축구부 주장처럼 생겨서는 엄청 착한 애처가다
그들은 다만 죽음을,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질문들을 마주하지 않았을 뿐이다
소피는 래리보다 훨씬 심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잃는다.
그것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녀는 실은 그때 죽었고
술과 아편, 섹스와 짙은 화장에 찌든 육체만 남았다
(이렇게보면 래리가 소피와 결혼하려고 한 것도 당연하다,
래리는 살아있는 시체였던 소피에게서 죽은 동료 조종사를 떠올렸을거다)
래리가 죽음과 대면하고 새롭게 태어났다면
소피는 그만 깨져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래리는 결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지 않았다면 이사벨 옆에서 그레이처럼 살았을것이고
운이 나빴다면 동료 조종사처럼 죽었을 것이다
그의 모든 깨달음과 내적 성찰도 결국 자신의 주관적 세계 안의 일이며
결코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내 생각에 몸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건
후반부에 장황하게 묘사된 윤회니 뭐니 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그는 각자의 주관적 세계에 대해 말한다
이 소설의 시작과 마지막 부분에서 따오자면
"내가 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지 마땅히 붙일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은 모두 성공담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의 결말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
시작에서 언급한것처럼 서머싯 몸은(소설의 일반적 구조를 따르지않고) 각기다른 등장인물들의 주관적 세계를 그려내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언급한것처럼 이건 일종의 성공담이다
래리 뿐만 아니라 소피, 엘리엇, 이사벨의 성공담이기도 하다
추가하자면 흥미로웠던 인물은 단연 이사벨, 삼촌 엘리엇이 끝까지 죽음을 대면하지 못하고 죽었다면 이사벨은 래리라는 선택지가 존재한다는걸 알고 있음에도 엘리엇처럼 살기를 '선택' 한 인물같음. 작중 서머싯 몸이 내면을 꿰뚫어보는 인물이기도 하고. 래리와 엘리엇 사이를 방황하는(대개는 엘리엇의 쪽으로 기울어진)우리같은 평범한 인간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굿 잘읽음
나는 래리가 친구의 죽음이 아니었어도 결국 구도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싶음. 독붕이는 타고나는 것이다.
잘 읽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