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에 따르면 자본은 자기증식하는 화폐이다. 책은 자본주의하에서 상품이다. 여기 만원 짜리 책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만원이라는 화폐와 상품으로서의 (만원 짜리)책은 다르다. 책구매는 자기증식하는 자본의 가능성을 화폐로부터 강탈한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의 구매 자체가 언제나 죄인 것이다. 예컨대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우울증은 가능성이 상실된 상태이다. 가능성이 결여된 화폐, 그것은 벙어리와 다를 바 없다("가능성의 결여는 벙어리와 같을 것이다. 가능성이 없이는 인간은 숨을 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된 금욕주의자가 되어 구매충동을 억누르기만 하면 될까? 화폐를 그저 보관만 하고 있는 것 또한 죄이다. 자본은 (자본 자신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다시 키르케고르를 인용하자면 조현증은 필연성이 상실된 상태이며, 여기서 자본의 필연성은 자본의 운동 그 자체이다. 따라서 당신이 당신 돈을 묵혀 두기만 했다면 당신은 M-C-M이라는 자본의 변증법적 운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즉 자본이 스스로에게 복귀하는 운동을 방해했다("인간이 자기 저신에게도 되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그런 방식으로 공상적이 될 때 자기는 더욱 사라져갈 뿐이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유동성이 증가하고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당신은 실제로 죄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