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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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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 영화 감독 박찬욱이 한국문학의 정수로 관촌수필을 언급한 지면이었다. 한참 후에 박찬욱 감독의 평론집 오마주를 읽게 됐는데 그간 봐온 박감독의 영화들로부터 받은 인상과는 다르게 그의 글은 구성졌다. 표준어로 사투리를 쓰려고 하는 인상을 받았다. 의외의 찰진 문장을 보면서 나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다. 생각해보면 박감독이 이문구 작가의 문장을 감명 깊게 읽었던게 아닐까 싶다. 흉내낸 것처럼 보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문구의 작품은 내겐 좀 어렵다. 방언이 이렇게까지 난해할 수가 있구나... 혀를 내두르면서 읽었다. 표제작을 포함해서 분량이 긴 대부분의 작품들은 줄거리의 50%도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도시를 배경으로 그나마 표준말로 쓰인(여기에도 물론 고어가 빈번하다...) 짧은 분량의 미완 단편들은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이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씁쓸한 감동과 생의 아이러니를 담담하게 그려냈는데 인상 깊었다. 아마 단편 소설이라기 보다는, 자전적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다.

이문열의 작품에선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도 문맥이 쉽게 이해되는데 이문구의 작품은 전혀 그렇게 이해되지 않는다. 아쉽다. 10년이 지나도 이문구 작품을 독해할 수 없을 거란 좌절이 든다. 집에 귀한 작품이 몇 권 있지만... 한동안은 꺼내지 못할듯 하다.

고교생들이 이 작가의 작품으로 수능을 친다는데... 놀랍다. 이문구 작가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농촌 생활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있어야 읽히는데... 거기에 인생의 쓴맛을 몇 사이클 정도 담굼질을 해야 그 맛을 감미할 만한 작품인데, 과연 고교생들이...

여담인데 이문구 작가의 몇몇 사진을 보고 영화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보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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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책에서 본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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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참 어려운 책. 구성진 정도를 넘어서 난해한 말들...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도시를 배경으로 한 짧은 단편들은 재미있게 읽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에 들어서며 나오던 첫마디는 언제나 '엄마-' 하고 그냥 해보는 소리였다. 그렇게 무심히 부른 소리의 메아리도 늘 '응-' 이었다. 그 외마디짜리의 응대는, 그러나 노상 건성 대꾸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치 '행복이라는 것으 정체'에 한 번도 버금간 적이 없는 듯한 느낌을 되살려주기 마련이었다.

이문구야말로 이런 2세들의 갈등과 화해 문제에 누구보다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인물이다. 소위 좌익 아버지 때문에 그의 일가가 풍비박산 되고 형제들마저 차례로 잃게 됨으로써, 졸지에 넷째 아들이었던 그가 장남이 되어버린, 그러다가 끝내는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개인사가 그의 대표작 <관촌수필>을 통해 적나라하게 서술되고 있다. 일반 독자에겐 덜 알려지긴 했지만 악착같은 삶의 생명력과 고단한 이들의 한을 써내려간 그의 첫 장편 <장한몽>(1970.12-1971.9)에서도 이미 작가는 '구본철' 이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2세들의 해원에 관한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한 바 있다.

<오자룡>은 70년대 중반, 작가의 사회적 인식이 매섭게 날카로워질 무렵 이를 '역사소설'의 구조로 구현한 작품이다. 그런데 작품 속의 '방위세 운운' 대목으로 작가는 정권에 의해 만행, 취조 당하고 작품은 강제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작가 이문구는 이 시간으로 인하여 거의 1년간 절필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이로 인해 76년 말 <관촌수필> 연작을 재개하기 전까지 몇 편의 콩트 이외에는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마지막 그믐> 역시 큰 호흡으로 소설을 시작했으나 연재 중단의 후유증 등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말미암아 중도반단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