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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다자이를 읽었다. 인간실격, 사양, 만년을 읽은 뒤 한참 동안 다음 읽을 책을 정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읽어야지 싶다가도 다른 작가들에게 쉽게 밀렸다. 이건 『만년』이 기대에 비해 못 미친 까닭도 있을 것이지만, 어찌 되었든 다음 작품집을 고르지 못한 건 사실이다. 대표작들은 어느 정도 넘겼으니, 남은 건 도서출판b에서 전집으로 모아 출간된 단편집들이었다. 이태껏 읽었던 거에 비해 두껍지 않나. 생각하며 한참 고민하다가, 문득 『달려라 메로스』가 눈에 띄었다. 왈가왈부 할 새 없이 그냥 이걸로 읽어야겠다, 그렇게 정했다.
표제작 『달려라 메로스』를 제하면 대부분이 다자이의 사적인 일상이 강하게 가미된 소설들이다. 특히 초기에 실린 엽편들은 사실상 에세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뭔가 신기한 느낌이었다. 소설 너머에 있던, 어렴풋한 느낌의 다자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둔갑하여 다가왔다. 아니 둔갑이 아니라 둔갑이 풀렸다고 해야할까. 어쨌든 진솔함이 한껏 깃든 문장들을 통해, 사람 다자이, 그러니까 그냥 글 쓰는 아재 다자이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럴싸하면서도 묘하게 우스운, 특유의 찌질함이 돋보이는 에피소드들은 덤이다.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 시기 다자이는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려가면서 나름대로 행복한 시기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정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물론 특유의 염세적 시선과 그놈의 둔주병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전 작품에서 보이던 방황들과 비교하면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불안의 표출은 그래도 다자이는 다자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 같이 착하진 못해도, 뭔가, 안타까운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건, 『만년』 때보다 훨씬 글들이 무르익었다는 느낌이 강했다는 점이다. 가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 엉뚱한 사유 사이에서, 글의 호소력 내지는 전달력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빛을 발했다. 소위 말해 '글빨'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특히 『여치』의 첫 문장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헤어지겠습니다."로부터 이어지는 호소력 넘치는 문장의 연속. 『직소』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느꼈던 느낌을 다시 받았다. 이 사람 참 글은 잘 쓰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비교적 소소하게 읽어내려갔던 단편집이면서도, 다자이의 특유의 필치를,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 감정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으면서, 희망의 향기를 풍기는 작품의 결말들은, 당시 다자이의 생활사정을 그대로 반영한듯 싶다. 그러나 아마 다음 작품부터는 다시 힘들어지고 말 텐데.
기분 좋게 책을 반납하고 도서관을 나오니 비가 내렸다. 도서관이 자리한 언덕을 뒤집을듯, 세찬 바람이 함께였다. 나는 자그마한 우산을 손에 든 채 언덕 너머를 바라보았다. 멍하니 가방에 담긴 책들의 미래를 걱정하였다.
글쓴이 선생의 글빨이 장난이 아닙니다 마치 "나 이렇게 글 짤쓴다" 로 보입니다. 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접속사를 어떻게 연결하느냐를 유심히 보는데 매우 매우 글을 잘 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