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다!!!
[풍뎅이, 너를 잃고, 미숙한 도적, 부탁, 시골 선물] 들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다음 독회 [5차]는 7월 4일까지 [방 안에서 익어 가는 설움, 구라중화, 휴식, 거미, PLASTER] 들을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다!!!
[풍뎅이, 너를 잃고, 미숙한 도적, 부탁, 시골 선물] 들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다음 독회 [5차]는 7월 4일까지 [방 안에서 익어 가는 설움, 구라중화, 휴식, 거미, PLASTER] 들을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1.호기심 많은 아이가 쪼그려 앉아 기어다니는 풍뎅이를 보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의 상상력과 사고로 생각하는 그 무엇은 여기 이 시인이 궁금한 것과 닮을 거라고 생각한다. 풍뎅이는 넓은 등판으로 그 얼굴들을 비춰줄 뿐이다. 그 작은 생명의 소금같은 세계를 그가 아껴주지 못하며 지니고 있는 사랑-아마 풍뎅이를 보고 품은 사랑도 포함하는-을 비춰준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풍뎅이에서 사람으로… 말마따나 노래보다 더 즐거운 울림이다. 가히 백 년이건 천 년이건 권태를 이기는 힘이 있을까?
2.이별을 하고 난 뒤 감정을 정말 애절하게 추스린다. 기가막히게도, 늬는 유성처럼 온 것이 됐지만 그의 곁에는 있지는 않다. 정말로 잃은 것이다. 어째서 늬를 잃고 난 원주를 찬란하게 그려내는 것일까. 모욕을 감내하기 위한 발악 혹은 그것 마저도 늬가 있기에 아름답게 비추고 싶은 마음일까. 서로간 모욕의 선후과정은 그의 원주에 있어 무의미 하다. 빙글빙글 돌며 영원히 숨바꼭질-술래잡기의 인상도 든다-하기 때문이다. 이런식 이라도 공존을 바라는 소망 때문에 더욱 슬퍼진다. 그러나 또다른 유성의 우연을 바라는 어떤 절절함을 누구에게도 주고있는 그런 시이다. 이 순환은 과연 유쾌할 수 있을까. 잔인한 애환이다.
3.도회속 도회 사람들은 도회 것들 밖에 훔치지 못한다. 그 곳에 취해가며 서로 웃어봤자 광택의 술의 것이고 송곳니-심지어 의치-마저 빼둔다. 텅텅빈 아가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고작 음-음란할 때의 그것-시다. 지칠대로 지친다. 그렇지만 이 미숙한 도적들을 깨우는 것은 역시나 아침이다. 아침의 도적은 그들의 흔적을 훔쳐갔고 그들에게 부끄러움만 남겼다. 그들은 이제 배를 타고 해적-내가 사유하고 싶은 해적은 유치하겠지만 만화 원피스에 있는 배움이다. 혹은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일지도 모르겠다-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도회속 미숙한 도적이 될 바에 바다의 해적이 낫다. 사람의 꿈은 끝나지 않아!!
4.시골에 있는 산에 죽순을 키워 보아 이 것의 특징을 아는 바로는 굉장히 시기를 잘 맞춰야 된다. 때를 놓치면 수습할 겨를도 없이 쑥쑥자라나 버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시에서 ‘부탁’으로 나온다. 아마 죽순은 거치로운-거친-꿈에서 더욱 괴롭히나 보다. 그 곳에서 부탁을 신경쓰다 보니 현실의 출발이 늦어진 듯 싶다. 시기와 때, 유일한 시간을 연상시키는 이 것들은 시의적절함을 위해 시인이 다루어야 할 무엇인가? 벼락과 천둥은 일순간에 내리친다. 그 순간의 번쩍거림을 이제라도 놓쳐서는 안 될 그의 의무인가보다
5.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생각나는 시였다. 그의 시선을 좇다가 어느새 기억속 갈색 낙타 모자가 중심이 되어 시골로 가게 된다. 시인은 모자가 맞지 않아 딱딱하다 하면서도 소중히 다루는 듯 말해서 양가적인 인상을 남긴다. 이 박자감 때문인가, 모자를 잃어버렸지만 아깝지 않다는 말은 반어적-그의 반역성-으로 느껴졌다. 일부러 떠들썩한 찻집-도회의 소음과 광증과 속도-를 택하면서도 서글픔을 자처하는 그는, 어쩌면 이런 역설에 대한 의식을 갖고 피력하는 듯 하다. 그렇지만 모자와 남겨둔 그 마음의 모퉁이가 서럽다 한 그 이유는 단순히 도회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로는 설명 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