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은 자기보다 한 수만 높아도 승복한다. 아니면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그에 반해 문인은 절대 승복하지 않는다. 객관적 실력으로 목숨을 걸고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두고 우기는 것이 본업이기 때문이다.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치 혀로 다투기 때문에 승부가 명확하게 가려지지 않는다. 게다가 칼싸움은 한 번으로 끝나버리지만 말싸움은 끝이 없다. 져도 진 게 아니다. 두고보자며 다른 논리를 갖다대거나 제 편을 많이 끌어 모으면 승부를 뒤집을 수가 있다. 그도 안 되면 모함으로 제거하면 된다. 그 우기기 고집통을 절개니 지조니 충절이니 하는 말장난으로 미화시키고 칼 대신 붓으로 사군자를 그리면서 선비 흉내를 냈었다.


그러다보니 문인은 저보다 잘나고 똑똑한 자를 곁이나 밑에 두질 못한다. 언제 저를 밟고 제 자리를 차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해서 제 앞에서 누가 잘난 체 하는 꼴을 절대 그냥 두고 못 본다. 한 발짝이라도 저보다 앞서 내딛는 놈은 바로 아웃이다. 능력이나 재주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한테 절대 복종할 건지 아닌지로 사람을 판단한다. 해서 내편 네편 갈라치기해서 ‘우리끼리’만 벼슬을 나눠먹는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재등용에 대한 한탄이 계속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비판을 하는 그들도 막상 권력을 잡으면 똑같이 반복한다. 그게 문민정권의 한계이다.


적과 싸워 죽고 살고를 체험한 군인들은 피아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그에 반해 실제 전투를 해본 적이 없는 문사들은 그런 분별력이 떨어진다. 군인들은 적을 보고 싸우지만, 문인들은 항상 제 동료들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적이 무서운 게 아니라 제 주변 사람이 무서운 거다. 무섭다기보다는 미운 거다. 설사 전쟁이 나도 자신들이 전선에 나가 목숨 걸 일이 없다. 해서 건너편을 주시하지 않고 항상 의심과 질투로 제 주변을 살핀다.


그렇게 ‘우리끼리’ 허구한 날 멱살잡이를 하다보면 적보다 더 미운 게 제 경쟁자인 동료들이다. 해서 적의 적은 동지라는 변태적 감정이 생겨나게 된다. 세계사의 수많은 왕조와 정권이 그렇게 해서 망했다. 당장 조선이 그 표본이 되겠다. 수백 년 동안 분당질로 머리채 잡고 싸우다가 외세가 몰려오니 이놈이든 저놈이든 각자 하나씩 붙잡고 제발 저쪽 반대파 놈들 때려잡아달라고 매달렸다. 문신들은 직접 싸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친중, 친러, 친일, 친미 그러다 결국 일본을 잡은 패가 승리한 것이다. 


이완용이 매국노라고? 한국인들은 아직도 정신 제대로 못 차렸다. 이완용이 아니라 조선 왕과 그 일족, 조선 양반 선비들 모두 똑같은 매국노였다. 이완용 패들이 일본에 못 팔았으면 다른 패들이 팔아먹었을 거다. 만약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졌으면? 아마 한반도는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러시아 부자들은 모조리 한반도에 내려와 살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마이애미처럼! 어쨌든 머리 좋고 운 좋은 이완용이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것뿐이다.



도서출판 동문선 신성대 대표님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