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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데이비스라는 작가를 처음 안 것은 아마 5년 전쯤이다. 초단편소설과 그 밖의 다소 실험적이면서도 훌륭한 단편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찾고 있었는데, 그런 작가를 찾는다면 리디아 데이비스를 꼭 한 번 읽어봐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당시에는 번역이 없었다. 곧 번역을 낼 예정이라 풍문을 들었다는 그 사람의 말과는 달리 번역이 엎어지기라도 했는지 더 이상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이 책의 원서에 해당되는 <The Collected Stories of Lydia Davis>와 다른 단편집 <Can't and Won't>를 읽었다. 그리 좋지 못한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뜻깊은 단편들이 많았으며, 개중 하나는 번역해두기도 했다. (아래 참조) 그렇게 리디아 데이비스에 대한 관심이 점차 흐릿해져가던 차에, 번역 이야기가 처음 나온 때로부터 10년 정도 뒤인 지금 책이 나왔다.



번역에서 약간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일단 해당 단편전집의 수록작 중 절반만이 번역되었다는 것과,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쓰기에서 어쩔 수 없이 강조되는 주어의 존재감이 한국어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더 과장된다는 것이다. 리디아의 단편에서 화자 혹은 주인공의 배경은 거의 제시되지 않을 때가 잦으며, 심할 경우에는 단순히 "그", "그녀" 등의 대명사로만 처리될 때도 있다. 이것은 어떨 때는 화자와 리디아 본인 사이의 연관성을 높히며 이것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리게 만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이 뼈대만 남은 인물을 통해 보편적이지만 고독한 불안을 살며시 드러내고 빠르게 천을 내려버리는 데에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니 사실 그녀의 간결한 글쓰기와 합쳐지면, "나는 그 긴 날들이 두렵다. (...)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가 행복한 기억을 얼마나 갖게 될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와 같은 글에서 "나"를 운운하는 것은 원어와 번역어에서는 정반대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역시 번역된 글로 읽어볼 수 있어서 참 반가울 따름인데, 개인적인 신조로 내 영어 실력이 훨씬 나아지기 전까지는 영어로 쓴 문학에 대한 감상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내가 원서를 읽으며 과연 얼마나 올바른 인상을 받았는지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는 탓이다. (기실 리디아 데이비스는 영어로 읽어도 문제 없을 정도로 말끔하고 단순하게 글을 쓰는 작가인데도.) 번역된 책을 읽고 있자니, 사실 그런 불안을 갖고 그 책을 읽고 있던 것이 내가 리디아 데이비스의 정서를 느끼는 데에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 자체가 이런 번역 속에서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다루기도 하는 터라 그렇기도 하다. 어떤 언어가 선택되고 사용되는지는 정작 그 글의 전체적인 짜임새와 내용에 닿기도 전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결정하곤 하고, 그 인상과 걸맞지 않는 내용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이 내용은 틀에 맞게 변형된다. 그리고 문제는 이 변형 과정에서 버려진 내용들을 아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의적인 버려짐을 보며 버려지지 않은 나머지 모든 것들이 너무나 허무해 보인다는 데에 있다.



그러한 관계는 세계와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리디아의 글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삶이 맞춰질 전형을 세계에서 발견하곤,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아주 잠시 기대하다가, 곧 그것들에도 딱히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틀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거울과도 같아 저 너머를 바라본다고 생각하다가 지금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이 지금의 자신을 긍정하는 자족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체로 그 반대, 지금의 자신의 허무함과 그로 인해 찾아오는 불안감, 그러나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버려 사실상 짧은 한숨에 가까워 보일 그런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있다. 그런 회의가 갖고 있는 시니컬한 유머 감각이 재밌기도 하다. 개중 가장 재밌던 한 부분을 소개한다. "문제는 그녀가 그다지 교양 있지 않다는 것이다. (...) 나는 지금 더 교양이 있고, 분명 그녀보다는 더 교양이 있다고 믿지만, 물론 그렇게 말하는 건 그다지 교양 있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하고 싶다. 그래서 친구에 대해 여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더 교양 있게 되기를 기꺼이 미루고 있다."



그리고 종합해보자면, 확실히 리디아 데이비스는 좋은 뜻으로도 나쁜 뜻으로도 작가들의 작가다. 좋은 뜻으로는 그녀가 언어를 간결하면서도 깊숙하게 다루는 방식이, 나쁜 뜻으로는 그 모든 갈등들이 결국 너무 추상적인 인물들을 통해 표현됨으로서 마치 언어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 같다는 감상이. 그러나 그래서 내게는 어느 쪽으로도 참 감명 깊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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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데이비스 - 글쓰기



내가 계속 글을 써나가기엔 인생이 너무 심각하다. 


인생은 원래 더 수월했고, 보통 기분 좋았으며, 그러다보니 글쓰기도, 비록 심각하게 느껴졌더라도, 좋은 편이었다. 


이제 인생이 쉽지 않고, 매우 심각해졌다보니, 글쓰기는 이제 상대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글쓰기는 보통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고, 만약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다룬다면, 실존하는 누군가를 대체한다. 


보통 대체되어 글쓰기에 사용되는 건 인생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제 내가 그런 인물이 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류의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이딴 걸 때려치고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우는 거다. 


그리고 인생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내가 현명해질 유일한 방법은 글을 때려치는 거다. 


내가 그 대신 해야 할 일들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