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 전 콘서트 보러 서울에 올라갔을 때 방문한 영풍문고 본점에서 이름과 얇기에 끌려 덥석 집어왔던 책이다. 특히 쿤데라, 카프카와 같은 체코 작가라길래 어딘가 끌렸었다.
주인공인 한냐는 35년 동안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해왔다. 그렇기에 그에게 폐지 압축은 인생의 업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한냐는 폐지 압축 일을 하면서 종이를 뭉개는 데만 시간을 바치지 않는다. 그의 작업방식은 느긋하고 여유 있다. 때론 버려진 책을 주워 다 독서를 하는가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책을 압축하는 일은 그에게 직업이 될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 관계를 지탱하는 그의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런 사실을 한냐 본인도 느끼는 듯 소설 내도록 자신이 35년간 폐지 압축하는 일을 해왔다는 언급이 계속된다. 마지막 장을 제외하면 소설의 모든 장은 35년간의 폐지 압축일로 시작을 한다. 그의 직업 사랑은 은퇴 후를 생각하면서도 계속되어 자신의 압축 기계와 함께 노년을 보내는 상상을 한다.
소설은 이런 한냐를 중심으로 사회주의가 휩쓸던 체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작중 언급되는 소련의 선전물이나 폐기되는 자유주의 진영의 책들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한냐는 이렇게 폐기되는 책들을 보며 슬퍼하기도 하면서 격동적인 사회 속에서의 삶을 보여준다.
이러한 한냐의 삶은 소설 중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거대한 압축 기계와 젊은이들에게 밀려 자신의 직업을 유지할 수가 없어진 것이다. 한냐보다 더 빠르고 열정적인 기계와 젊은이들 앞에서 그는 물러날 수밖에 없다.
한냐는 자신의 삶의 일부이자 그의 인생이었던 폐지 압축이라는 직업을 잃는다. 그 직업은 그에게 모든 것이었다. 일에서 잘리면서 그는 자신의 지식을 쌓을 통로도 지식인과 관계를 유지할 끈도 빼앗긴다.
심지어 그의 직업을 앗아간 존재들은 한냐가 하던 일을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감정적인 거대한 기계와 책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한냐의 삶은 부정 당한다.
한냐는 자신의 삶을 책에서 찾았다. 그러나 책을 잃은 후 그는 도시를 떠돌며 정처 없이 거닌다. 과거의 기억을 둘러보던 그는 그의 연인의 이름을 기억해낸다.
한냐의 모습은 카프카의 그레고르 잠자처럼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랑스러워하던 우리의 삶, 그리고 그 삶이 무시당하는 사회... 많이 보던 모습 아닌가. 때론 그때부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얇아서 금방 읽을줄 알고 샀다가 반년째 안읽고 있음....
이 책 참 재밌었음. 줄거리가 어렵지도 않고, 주인공 호더 형냐가 왜 속상한지 감정도 충분히 이해가고. 환상 오가는 맥도 구분이 잘 됐고. (본인쟝은 환상과 현실이 섞인책 읽는거 좀 괴로움.) 분량도 착하고. 그나저나 올해 입갤 후 추천 보고 재밌게 읽은 소설이 얘랑, 에브리맨, 물의 가족, 벌레 이야기, 인간실격인데 권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