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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재야의 한국인 "제임스초이스"이다.
시적 언어로서의 한국어는 비록 제1급의 거장들을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매우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는 말이다.
특이하게도 의성어, 의태어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해 있으며 색채를 통한 감정 표현도 매우 발달해 있다.
(노르스름, 누르스레, 거무죽죽 등의 접미사가 붙는 표현은 특정한 색깔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주로 색깔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과 감각을 표현한다)
그리고 어순이 굴절어에 가까울 정도로 극히 자유로운 편에 속하며, 교착어의 특성상 조사, 접미사가 극히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고, 극히 미세한 어미 변화만으로도 어감이 크게 달라진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한자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한자어+토박이말의 조합이 변화무쌍하게 발달했다.
원래 보통 중심부는 주변의 영향을 잘 안 받는 데 비해 주변부는 중심부의 영향을 항구적으로 크게 받으므로, 오히려 주변부에서 중심+주변 문화의 결정적인 융합이 일어나 중심부의 문화 다양성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문제는 시적 한국어의 이러한 잠재력을 어느 정도 활용할 줄 아는 작가조차도 요즘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언어 그 자체"로서의 시적 한국어에 대한 담론은 내 기억에 근래 문단에서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외국어로 번역되기 쉽도록 전략적으로 쓰겠다는 집필 전략이 이야기되는 판이니.....
사실 시적 한국어는 번역하기 어려운데, 한국어에서 극히 발달된 요소들이 외국어에서는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대 한국어는 번역을 통해 발달되어 왔기에, 외국 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경우에는 그만큼 손실이 일어나지는 않는 편인 것 같다.
현대 한국어 문법도 번역을 통해 충분히 정교하게 발달해 있는데, 예를 들어 러시아어와 비교하자면 러시아어에는 시제가 쿨하게 3개뿐이다.
즉 시제가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딱 3개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현재 진행형 이런 거 없다.
시제만 놓고 보면 진행형과 완료형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모든 동사들이 자체적으로 완료형, 불완료형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동사를 기본적으로 2개씩 외워야 하는 것이다. Читал(읽었다), прочитал(다 읽었다) 이런 식으로.
그럼에도 я читаю книгу(나는 책을 읽는다)만 놓고 보면,
화자가 지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인지, 책을 읽곤 한다는 것인지가 확실히 구분되지 않으므로,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주 등의 빈도부사를 삽입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문맥에 따라 눈치;;로 알아듣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럼 러시아어는 시제가 3개밖에 없어서 모든 동사를 2종류로 구분해서 쓰는 문법 구조를 가졌으므로 불명료한 언어인가?
러시아어의 예를 든 까닭은 어떤 언어가 문법 구조에 따라 더 명료하고 덜 명료하고를 판단할 수가 없으며, 언어 표현의 명료함은 문법보다는 문화적 환경이나 발화자 개인의 표현력 등에 따라 좌우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의 번역 경험에 따르면 한국어는 거의 마술과 같은 풍부함을 갖춘 언어이고, 2020년대의 시적 한국어가 밋밋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 작가들과 번역자들의 한국어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의 의미 있는 문학적 흐름은 이런 조건을 개선하려는 목적을 반드시 다소간 가져야만 하리라 생각된다.
반성하고 갑니다
내가 주로 번역서만 읽는데 최근에 한국 작가꺼 환상문학 쓴게 있더라고. 읽어보려고 사니까 노르스름 푸르죽죽 뭐 이런 우리말 쓰기 대잔치 열렸던데 왜이리 근대문학같고 촌스러운지 .. 어쩔수없이 한국인들이 외래어 없애자 우리말 되찾자 ㅇㅈㄹ 해도 지금 현대 한국인들은 외래어나 단정한 한국말에 익숙해져잇음 그 흐름을 거스르면 촌스러움 직행임 걍 ㅜㅜ
다른 나라처럼 우리 옛것 찾기 운동 이런게 불가능함 한국인의 90퍼는 과거에 트라우마가 있는 민족임 계속 있어보이는 서양애서 뭔가를 찾으려 들테고 사면이 막힌 약소국인 이상 뭘 어케 할수 없음 폴란드같은 약소국은 유럽에 잇기라도 하지
원래 한국 작가들이 순우리말 쓴다고 국어사전 뒤져서 부자연스럽게 문장에 끼워넣는 경우가 많았는데 원래 세련되게 쓰는 게 가장 어려운 것.
한국인들도 전통 좋아하고.... 그리고 본문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국어의 수준이 당연히 번역어의 수준도 결정함. 화려하게 푸르죽죽 이렇게 도배하자는 얘기가 전혀 아니라.
웹툰, 그림이나 아이돌같은 이미지적 매체에서는 전통 힙하게 가져다쓰는게 ㄱㅊ을수도 있는데 언어란게 굉장히 인간내면에 밀접한 분야라서 난 잘 모르겠다 ㅜㅜ 하다못해 대중문화에 속하는 웹소도 서양 배경이 월등하게 인기이니.. 뭐근데 우리말 살려서 세련되게 쓰면 자기 분야 개척하는거지 그정도 인재가 나온다면 판도도 바뀔테고
아니 단순히 순우리말 살려서 쓰자 이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라, 서양 배경 소설을 쓴다고 쳐도 문학어의 어순, 어미, 조사, 어휘 수준에서 한국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얘기라니까.
순우리말 살려서 쓰자 이런 얘기는 어휘 중에서도 부분적인 주제일 뿐임.
ㄱㄹ? 국평오라 이해좀 뭔가 잃시찾 민음사꺼나 정보라 탐욕 번역서 읽을때 보니까 묘하게 읽는 감칠맛이 있긴하더라 아마 그런거 말하는거겠지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한국어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활용한 작가들인 듯 ㅋㅋ 그런 잠재력을 인식하는 게 필요하겠지
저놈의 노르스름
싯누렇다
맞춤법, 띄어쓰기 오류 심각하네... 오타가 아니라 정말 몰라서 틀린 게 너무 많음. 책 좀 더 읽어라.
틀린 부분은 아마 없을 텐데?
농담 아니고, 정말 많음. 내가 직접 알려줄 수도 있지만, 자신 있다고 하니 직접 찾아보든가, 그냥 그렇게 살든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고? 나는 맞춤법 생각 안 하고 씀. 맞춤법 생각하는 단계는 이미 지나서.
아만보
표현의 방식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임. 솔직히 기본도 안된 상태에서 시적 언어 운운하는 게 좀 웃겨서 댓글 남겨봤음.... 다른 게시글이었다면 나도 신경도 안 썼을 거임.
틀린 데 없다니까;;
다시 봐도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구만 국립국어원도 정확히 안 쓰는 띄어쓰기 가지고 시비거농
이런 애들은 맞춤법 지적이 인생의 유일한 낙인가? 문장 인용해서 지적하는 것도 아니야... 걍 맞춤법 틀렸는데 정확이 어떤 문장인지는 말 안 할래 ㅎㅎ 이거밖에 더 되나? - dc App
외국문단보면 자국어에 거의 언어학자 수준으로 천착한 작가들이 드물지 않게 보이는데 한국문단에는 그런 맥이 끊긴 느낌... 마지막이 이문구 정도인가
좀 시적 한국어에 신선함을 불어넣어 줄 강력한 충격이 필요하긴 한 듯 ㅋㅋ 어떤 기획이 가능하려나.....
번역과 쉬운 문장으로 한국문학의 대중화를 노릴것인가 시적 언어를 탐구하고 외국 독자를 포기할 것인가... 딜레마긴 한듯
뭐든지 균형을 잡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네... 분명한 건 문장력이 뛰어날수록 단순한 문장도 잘 쓰게 되더라고.
하나 생각이 나는데, 전문을 읽었던 건 아니고 발췌문을 읽었던 거라 앞뒤 맥락은 모르겠다만, 성석제 단편 중에서 한 인물이 격양된 어조로 문학에 대한 훈계 비스무리한 넋두리를 늘어놓는 중에, 의성어 의태어는 문장의 밀도를 떨어뜨리니 넣지 마라, 이런 식의 구절이 있었던 것이 생각남. 사실 영어(+대부분의 유럽 언어)에서야 의태어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의성어는 만화 효과음으로나 쓰이는 수준이니 그 말도 맞겠다만, 일상 회화에까지 의성어 의태어가 두루두루 쓰이는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무지성한 사대주의가 아닌가 싶음. 심지어 성석제는 원래 시인인데.(성석제 본인의 생각이 아니길 바랄 뿐)
한국어의 경우는 특이하게 의성어, 의태어가 동사를 보충해주므로 작가로서 최고 수준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 같음. 그리고 생략하고 빼는 건 잘 넣을 줄 알아야 잘 뺄 수도 있게 되는 거 같네 ㅋㅋ 이런 부분은 한국어의 특이성인 듯. 무조건 넣지 마라 이런 건 좀 ㅋㅋㅋ 그런 시리즈가 있는데 접속사 넣지 마라, 형용사 넣지 마라 등등.... 결국 침묵이 최고의 언어라는 결론으로?.....
아예 작가(대부분 현대 장르 작가였던 듯)들의 말말말을 모아놓은 시리즈도 있었던 듯 ㅇㅇ 접속사랑 부사 혐오가 제일 심했지... 예술에는 원칙이 있는 게 아니고 알잘딱깔센을 해야 하는 건데 참.
맞다 접속사랑 부사 ㅋㅋㅋ 음 그래서 융통무애의 경지를 추구해야 하고 입문자용 교리에 얽매이면 안 되는 듯 ㅇㅇ 알잘딱깔센
와 일상어에서의 의성어 의태어 사용 이건 몰랐노 ㄷㄷㄷㄷㄷ
오랜만 들렸다 오랜만의 좋은 글 읽고 간다 감사해
이건 나도 꽤 관심 있는 주제인데 한글로된 책을 많이 안 읽어봐서 어디서부터 파야할지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참고할만한 시나 책 추천 가능?
<원본 김유정 전집> 김유정 작품들이 시작하기 딱 좋은 듯!
씹떡짤 보자마자 한 줄도 안 읽고 바로 내림
독갤에서 씹덕짤이라...
씹덕짤 쓰는 애들 원래 ㅈㄴ많은데
색채 표현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건 동의하기 힘듦. Yellow, yellowish, sand, xanthous, amber, bisque, buff, chrome, maize, saffron 등등 당장 생각나는 것들만 나열해도 영어에서도 충분히 색채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존재함. 비교문학적 관잠에서도 우위를 논할 수 없는 것이,
시적표현이란 문화사, 지정학, 예술사적으로 그 지역의 구별되는 시적 감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임. 우리가 흔히 일컫는 '한국적 서정성'이 도대체 무엇이며 그 기원이 어디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한 듯.
전혀 다른 맥락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본문의 요점은 색채를 표현하는 단어가 많다는 게 아니라 색채를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표현법'이 발달했다는 것. 지금 댓글에서는 지시 대상으로서의 노란색을 모래색, 호박색 등등으로 이렇게 세분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고, 본문에서는 같은 파란색을 푸르스름, 시퍼런, 푸르스레, 푸르죽죽 등으로 '감정적, 감각적'으로,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표현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임.
다시 말해 색채를 지시하는 단어가 많냐 적냐의 문제가 아니라, 색채의 주관적 표현법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그리고 또 색채 표현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말은 쓴 적이 없는데....?
아 다시보니 의성어 의태어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네. ㅈㅅㅈㅅ 사실 이것도 다시 따져볼 여지가 있는 말이지만 잠시 제쳐놓고, 색채를 관찰자의 주관적임 감정을 표현하는.표현법이 과연 타 언어보다 발달했느냐라고 다시 물았을 때도 이견의 소지가 많음. 당장에 pink라는 단어도 pinkie, in the pink 등등과 같이 용법에 따라서
분홍이라는 색채를 의미함과 동시에 부끄러움, 호전적인, 활발한 등과 같이 감정과 상태의 표현이 됨.
요컨대 내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말하고픈 것도 과연 '문학적'으로 우수한 '언어'라는 게 정말 존재하냐는 거지. 다시 말해 시적 언어라는게 먼저 존재할 수 있느냔 거지. 정말 영국의 언어의 잠재적 서정성이 우수해서 영문학이 발달했을까? 반대로 아이티의 언어는 잠재적 서정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문학이 발달하지 못했을까?
다시 말해 그 나라의 언어가 타 언어들과 빚고있는 음운학적 차이들로 인해 독자적인 문학적 감수성이 발달한 것을 두고 특정 언어가 마치 근본적으로 문학적 잠재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비판을 제시하는 것임. 예컨대 동명사와 부사격 표현이 드문 한국어는 요약적으로 우스운 상황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스탠드업 코메디에 어울리지 않음. 이것을 두고
한국어는 희극성이 빈약하고 영어는 희극성이 풍부하다고 할 수 없음. 애초에 스탠드업 코메디가 영어권에서 발달한 형식인만큼 그 언어적 특성에 맞게 정서와 표현법이 발달한 것 뿐임 ㅜ
계속 핀트를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은데, 본문에서 말하는 시적 언어는 한 언어 중에서 시적 기능을 수행하는 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거고 언어 자체는 복합적인 것이겠지. 시적 한국어는 한국어 자체가 시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어 중에서 시적 기능을 수행하는 언어를 이야기하는 거고. 그리고 색채어의 특정 '용법'들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거랑 다양한 접두, 접미사로 색채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전혀 다른 맥락임.
그리고 시적 언어로 활용할 수 있는 언어적 자원이 스탠드업 코미디의 언어처럼 '발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언어의 표현력의 발달 정도를 평가하지 못할 이유가 있음? 한글 창제 이후 한글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시적 한국어는 긴 '발달 과정'을 거쳤음. 한국어의 시적 잠재력이 이런 긴 발달 과정을 통해 '발달'한 거지 아무도 한국어가 근본적으로 시적인 언어라고 말한 적 없는데?
그니까 본문에서 지금 한국어는 시적 언어로서 그.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요소들이 풍부하다고 말하는.거 아냐. 글구 내가 두번째로 예시를 든 핑크의 경우는 색채를 접미사로서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관찰자의 주관적 감상과 관찰로서도 충분히 사용됨. 르네상스 시기 영국의 소극들을 살펴보셈.
1. 내가 영어에는 다양한 색채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나? 2. 한국어에 시적 언어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들이 풍부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쪽 반박은 무의미해지는 거 아님?
ㅋㅋㅋ 그리고 르네상스 영국 연극도 필자의 관심 분야이긴 하지만 굳이 원어로 찾아 읽을 정도는 아님
"시적 언어로서의 한국어는 비록 제1급의 거장들을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매우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는 말이다. 특이하게도 의성어, 의태어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해 있으며 색채를 통한 감정 표현도 매우 발달해 있다." 이게 한국어 자체가 이미 시적 잠재성이 우수하다고 일컫는게 아니먄 뭐임?
언어는 원래 변하는 거기 때문에 다 무한한 잠재성을 갖고 있고, 왜 단순한 수사적 표현 하나 갖고 와서 허수아비 때리는지 모르겠네.....
1. 넌 본문에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비롯해 색채의 주관적 표현법이 한국어가 갖고 있는 차별적인 표현이라고 했고, 난 그게 아니라는 예시를 들었음. 어느쪽이 충부하느냐를 논하는게 아님.
2. 너는 시적 용어로 활용될 자원이 한국어에는 풍뷰하다고 말했고 나는 그에 대해서 시적 용어라는 것은 이미 그 나라의 언어의 음운학적, 문법적 환경의 제약 아래 발달한 것이므로, 한국어에 걸맞는.한국식 시적 언어가 나온 것일뿐 한국어가 시적 언어로 활용될 자원이 풍부해서가 아니라는 예시로 스탠ㄷ.업 코메디를 든 것임.
난 의성어, 의태어, 색채 표현만 얘기한 게 아닌데? 자유로운 어순, 조사, 접미사 발달, 어미 변화의 풍부함, 표음문자 문화와 표의문자 문화의 조합 발달도 얘기했고 시적 한국어는 이 모든 것의 총합일 텐데? 이 모든 것의 총합으로서 차별점을 갖는 것이지 무슨 소리 동작 흉내 잘 내고 색깔 표현 잘한다고 시적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하겠나? ㅋㅋㅋㅋ
고로 내가 주장하는 건 우수성 논쟁이 아니고, '시적 언어의 활용 자원이 풍부한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어의 음운학적, 문법적 환경에 의해 나온 한국식의 독자적인 시적 표현'이 더 옳은 접근이 아니냐고 비판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임.
내가 언제 그것만 이야기했다고 했니.. 그냥 너가 제기한 레퍼런스 중 하나를 꼽아서 내가 의문을 제기한거지...
글구 지금 너가 말한 어순의 자유로움, 조사 접미사 발달, 어미 변화의 풍부함을 주장하기 위해선 비교대조군이 든거로 풍부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문제임. 본문에서 언급한 예시로는 불충분하지. 내가 영어권 환경에서 자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느끼는 부분이거든.
'세계 최고'라는 수사적 표현에 꽂혀서 '세계 최고 아닌데?'라고 그거 하나만 붙들고 늘어지니까 하는 말임;; 잠재력이란 표현도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지 앞으로 한국어가 세계 최고가 될 거다 이런 뜻이 전혀 아니잖나. 어떤 특정 언어와 비교해서 한국어가 더 뛰어나다 이런 맥락이 전혀 아님.
흠.. 뭔가 너가 내 크리틱을 오해하거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최종적으로 말하고픈 것은 다시 말하지만 우수성 논쟁이 아니고, 1. 한국어의 구별되는 음운학적 문법적 환경의 제약 아래서 한국적인 독특한 시적 용어가 나왔다.
2. 한국어가 시적 용어로 활용되기에 좋은 풍부한 자원을 가진 것은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다. 3. 타 언어에 비해 색채 표현, 접미사 발달, 어미 변화의풍부하진 않다. 이를 검중하기 위해선 폭넓은 비교 대조군이 필요하다.
우수성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라면서 왜 '풍부한 자원을 가진 것은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다', '타 언어에 비해 색채 표현, 접미사 발달, 어미 변화의풍부하진 않다'라고 다시 우수성 논쟁으로 되돌아가지? 솔직히 무슨 말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혹시 chatgpt임?
....? "한국어가 타 언어에 비해 접미사 다양하거 어순이 자유롭다고 주장하기 위해선 풍부한 비교 대조군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이 어떻게 우수성 논쟁이 되는거지...?
타 언어와 비교하자는 말을 아무도 한 적이 없는데 왜 타 언어와 비교를 하냐는 말임.
내가 언제 비교대조군이 빈약하므로 한국어의 타 언어에 비해 접미사, 어순의 자유롭다는 주장은 주관적이므로 한국어는 우수하지 않다!! 라고 말했니?
그럼 너가 말한 어순의 자유로윰, 접미사의 풍부함이라는 주장은 무엇에 근거한 풍부함과 자유로움이라는 뜻임? 만약 다른 언어와의 비교 대조에 의한 주장이 아니라면 '한국어'라고 특정하는.건 어폐가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최종적으로 반복하는 크리틱인 <한국어의 구별되는 음운학적 문법적 환경의 제약 아래서 한국적인 독특한 시적 용어가 나온 것이지, 한국어가 시적 용어로 활용되기에 좋은 자원을 풍부하게 지닌 것은.아니다>리는.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함?
너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시적인 한국어>에 대한 논의가.아니라 <한국어의 시어>의 논의로 진전시키는.갓이 학술적으로 객관성을 띨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너가 본문에서 이야기 한 <시적인 한국어>를 논의하기 위해선 턱도 없이 많은 비교대조군이 필요하다는 말이고.
애초에 주관적인 문화 감각을 얘기하는 글에다 왜 '풍부한 자원을 가진 것은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 '타 언어에 비해 색채 표현, 접미사 발달, 어미 변화의풍부하진 않다'라고 하는지 모르겠고, 본문에도 한국어에 발달된 요소들이 외국어에서는 미발달되었을 수도 있고, 외국어에 발달된 요소들이 한국어에서는 미발달되었었을 수도 있다고 썼잖음. 그리고 러시아어 시제가 3개라는 게 언어의 우수성을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고도 썼고. 한국어가 독특한 발달 과정을 거쳤음을 인정한다면 그 발달사를 거쳐 획득한 언어적 복합성을 '풍부하다'고 주관적으로 정의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언어의 풍부함을 객관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잖음. 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을 주관적인 관점이라고 비판함?
본문에 썼듯이 ' 언어 표현의 명료함은 문법보다는 문화적 환경이나 발화자 개인의 표현력 등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임
본문의 요지는 '현대 한국 작가들이 한국어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함'인데 지금 한국 작가들하고 60-70년대 한국 작가들의 언어를 비교하면 그 풍부함은 충분히 비교 가능하지;; 본문에서는 한국어와 다른 언어의 풍부함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현대 한국어와 60-70년대 한국어'를 비교하고 있음.
본문의 문제의식은 '시적 한국어의 이러한 잠재력을 어느 정도 활용할 줄 아는 작가조차도 요즘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결론은 '앞으로의 의미 있는 문학적 흐름은 이런 조건을 개선하려는 목적을 반드시 다소간 가져야만 하리라 생각된다.'는 것이지 한국어와 외국어 비교가 아님.
너의 주관적 주장에 대한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고, 너가 본문에 언급했던 요소들(접미사, 어순 등)이 외국어에 비해 조금 더 발달된 요소들이라고 볼 수 없다거 생각하기 때뭉에 앞선 예시들을.제기했던 것이고, 너가 본문에 언급했던 외국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발달된 요소 미발달된 요소들을 비교 대조하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의 한국어'와 '과거의 한국어'의 풍부함을 비교하고 그 비교로부터 잠재적인 풍요로움을 도출해 내고 있는 것이지 본문에서는 외국어와 한국어를 비교하는 게 아님.
그렇다면 너의 글에서는 중세와 근대 그리고 동시대에 따른 한국어의 변천 과정에 따른 시적 언어의 발달이라는 요지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어야 하고 그에 따르는 예시를 제시했어야지. 러시아어에 대한 예시와 앞서 말했던 세계 최고 수준이라던지, 너가 언급했던 상기의 한국어의 특징적 요소들이 무엇으로부터의 특징적인 요소들인지에 대해서 확실히 언급하지 않았잖아
특히 "사실 시적 한국어는 번역하기 어려운데, 한국어에서 극히 발달된 요소들이 외국어에서는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와 같은 언급들은 타당성에 근거해서 충분히 비판적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표현이고, 너의 한국 시어들의 특징들의 긍정적 평가들이 과거의 한국어로부터의 비교에서 나왔다고 이해하기 힘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장임.
"2020년대의 시적 한국어가 밋밋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 작가들과 번역자들의 한국어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런 구절들에 맥락은 충분히 나타나 있다고 생각함. 2020년대의 '요즘' 한국어와 지난 시대의 한국어를 주관적으로 비교하는 글이고, 그런 면에서는 다소 고맥락의 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어쨌든 오해는 풀린 듯!
너가 만약 진정으로 한국 시어의 변천 과정과 그에 따라 파생된 다양한 시적 표현들의 발생에 주목하고자 하는 접근을 꾀했다면 그에 따른 에시들에 집중해서 제한적인 예시를 들었어야 함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라 빈틈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건 이해해 주기를..... 어쨌든 평안한 밤 보내시길!
시적 한국어의 번역 얘기도 '외국어로 번역되기 쉽도록 전략적으로 쓰겠다는 집필 전략'에 따라 현대 한국 문학어가 단순화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 맥락에서 나오는 얘기라..... 어쨌든 알겠음.
희안하게 자기가 오독해놓고 글을 이렇게 썼어야했다고 훈수두네
서방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일상 어휘가 전체적으로 퇴화되는 추세라 생경한 단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것 같음 - dc App
그런 듯..... '말을 못하는 세대'가 걱정임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맞습니다, 본문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작가들은 정확히 백석이나 김유정 같은 사람들이고...... 그런 인물들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의 문학적 한국어는 갈수록 진폭이 협소해지고 있는 듯하네요. 그런 면에서 한국어의 토속적인 다채로운 감각성과 현대적 세련미 간에 어떤 천재적인 절충이 필요할 듯하고, 이러한 절충은 결국 비평적 담론 영역에서 머리로는 할 수 없는, 정말로 거장 수준의 언어 감각이 필요한 실제적 과업일 듯합니다. 어디선가 그러한 거장들이 준비되고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하 물론 상황은 아주 좋지 않은 편이지만, 그래도 희망과 기적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이런 희망을 갖고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잠재적인 문화적 폭발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넓고 빨리 변하는 만큼, 한국어를 통해 불멸과 영원을 탐구하는 거장은 계속 필요하겠죠. 계속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누군가 가장 빛나는 감각적 언어를 계승하길 바라고, 완전히 잊혀지게 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거장이 나타나는 것을 하나의 기적으로서 바라야 하는 척박한 문화적 시대를 살고 있군요! 그래도 꾸준히 기대하려고 합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10729
그리고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10301
예전에 했던 것들인데 심심풀이로 한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ㅎㅎ
진짜 알지도 못하는데 씨부리는 병신새끼보면 같잖네. 뭔 러시아어 시제 드립치고 있냐? 본인 프랑스어 dalf b2 인데 프랑스어 시제가 한국어보다 많으니까 프랑스어가 더 위대함? 언어의 위대함을 고작 시제로만 판단하는 니 새끼 수준이 보이네.
본문에서는 정확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즉 문법 구조의 복잡성이 언어 표현의 명료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독해력 좀;;